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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보도통제 없어도 스스로 부역하는 ‘언론권력’ 여전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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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내부제보실천운동 김주언 상임대표

한겨레

“2년 전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촛불을 밝히며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갈망했던 국민의 열기는 아직 식지 않았습니다. 새 정부 들어 적폐 청산작업이 진행중이고 언론계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지만 아직도 언론이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변화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책임지는 언론을 기리는 ‘청암정신’이 더욱 필요해진 이유입니다.”

1986년 군사독재정권의 언론통제 실상이 담긴 ‘보도지침’을 폭로한 주역으로 ‘2018 송건호 언론상’ 수상자로 선정된 언론인 김주언씨를 11일 전화로 만났다.

‘2018 송건호 언론상’ 18일 시상식
1986년 기자 시절 ‘보도지침’ 첫 폭로
“송건호 의장 등 민언협 선배들 헌신”


언론개혁시민연대 창립 사무총장
2008년 언론탄압 사례기록집 펴내
“보수정권 9년간 통제사례 집필중”


보도지침은 전두환 정권 시절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이 매일 언론사에 전화로 은밀하게 지침을 내렸던 ‘보도 통제 가이드라인’이었다.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김씨는 보도지침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1985년 10월부터 1986년 8월까지 10개월 동안 시달된 584건의 비밀통신문 내용을 모아두었다. 이를 복사해 월간 시사잡지 <말>에 넘겨 보도지침의 구체적 실체를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냈다. ‘보도 불가’ 46.1%, ‘정권 홍보성 보도 요구’ 24.5%, ‘축소 보도’ 16.1%, 용어사용 불가 6.9% 등 보도 통제의 내역이 확인된 것이다.

정치 암흑기에 벌어졌던 언론 수난사를 터뜨린 이 폭로는 부도덕하고 반민주적인 정권을 고발한 한편 불의를 외면한 언론계에도 각성을 촉구했다. 송건호 언론상 선정위원회(위원장 이해동)는 12일 “개인적 고난을 각오한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국민적 공분과 저항을 일으켜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겼다”고 평가했다.

그는 “보도지침을 폭로한 지도 벌써 30년이 지났다. 보도지침은 당시 송건호 선생님이 의장으로 있던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에서 폭로한 것이었다. 송 선생님을 비롯한 민언협 활동가들의 헌신이 없었으면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건으로 김태홍 사무국장, 신홍범 실행위원 등 당시 민언협 간부들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그는 법정 최후진술을 통해 보도지침은 명백한 언론탄압의 수단이었음을 강조하며 “이 재판이 정치적 보복이 아닌지 묻고 싶다. 언론의 자유는 우리가 공기 없이 살 수 없듯이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자격정지 1년을 받고 풀려났으며 긴 법정투쟁 끝에 1995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그의 삶은 민주화와 언론개혁 운동으로 점철돼 있다. 나이 스물에 민청학련 사건으로 강제징집됐으며 서른둘에 언론탄압을 폭로하고, 마흔넷에 언론사를 떠난 뒤엔 또다른 권력으로 떠오른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언론개혁시민연대를 꾸려 첫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이어 신문발전위원회 사무총장, 한국기자협회장, 언론광장 대표, 한국방송 이사 등을 지냈다. 언론탄압 사례를 기록으로도 남기기 위해 2008년엔 <한국의 언론통제>를 펴냈다.

그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도 여전히 비관적이다. “보도지침 등 언론통제에선 자유로워진 측면은 있으나 언론개혁의 화두는 계속 존재한다. 과거엔 언론을 통제하는 정부에 부역하는 언론이 있었다면, 지금은 국민을 대변하는 공정 언론, 민주 언론이 아니라 정파나 진영논리에 휩쓸려 자사 이익을 위한 왜곡 보도가 넘친다.” 그는 이어 “여론의 다양성이나 다원성은 존중돼야 하지만 이걸 빌미로 허위보도를 남발하는 현실은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광고매출과 연동된 클릭 수를 의식해 선정적인 속보 경쟁에 몰두하는 우리 언론의 앞날이 걱정된다”며 디지털 다매체 시대에 치열한 경쟁을 하며 자본의 위력에 눌려가는 언론의 심각한 상황도 우려했다.

그는 몇몇 매체에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한 예리한 시각의 칼럼을 쓰는 일과 더불어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로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내부제보실천운동은 그를 비롯해 이문옥 감사관, 이기문 중위 등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에 맞서기 위해 내부 고발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시민단체다.

그는 요즘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의 언론통제 사례를 모아 집필 중이다. 그는 ‘보수정권 9년’에 대해 잘 훈련된 부역 언론인을 낙하산 사장으로 심어놓고 이들에게 보도지침뿐 아니라 경영지침을 노골적으로 하달한 시기라고 보고 있다. 저서 <한국의 언론통제> 후속작업으로 내년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보도지침은 독재정권 시절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지난 박근혜 정권 때도 세월호 참사 보도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신보도지침’이라고 불리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2014년 당시 김시곤 한국방송(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보도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은 그가 설득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정치권력이 기자·언론사·메시지 수용자 등 전방위에 걸쳐 언론을 어떻게 통제했는지를 규명하려고 한다. 얼마전 공개된 기무사 계엄문건을 보면서 전두환 정권의 언론사 통폐합과 언론인 강제해직 때보다도 더욱 계획이 치밀한 걸 보고 놀랐다”며 “송건호 언론상이라는 큰 상으로 격려를 받으면서 집필 작업에 더 힘을 쏟을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청암언론문화재단은 오는 18일 오후 7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송건호 언론상’ 사싱식을 연다.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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