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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승자독식 양당제는 어떻게 약자들을 배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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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칼럼] 비례대표제, 합의민주주의, 포용의 정치를 향하여

선거제도는 정당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선거 방식이 다수대표제냐 비례대표제냐에 따라 정당의 구조가 달라진다. 민주주의의 초기 단계에서 미국과 영국의 국회의원은 토지를 기반으로 한 선거구에서 선출되었다. 이 경우 최다득표를 얻은 승자가 대표로 선출된다. 이러한 소선거구제는 산업사회 초기 단계에 자연스럽게 수용되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 노동 분업이 발생하여 직업별 조직이 결성되면서 선거제도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발생했다.

비례대표제는 강력한 노동운동의 산물

비례대표는 유럽에서 산업사회의 다양한 요소, 특히 소수집단을 포용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다. 1883년 덴마크가 쉴레지히의 독일 출신 이민자들을 위해 처음으로 비례대표제를 시행하였다. 핀란드에서도 스웨덴 출신 이민자들을 위해 도입하였다. 그 후 1899년 벨기에가 입법부를 위한 비례대표를 선출했다.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토지에 긴박당한 사람들이 계층과 직업별로 편성되면서 노동조합 등 직능을 대표하는 비례대표제가 확산되었다.

유럽의 역사에서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자연적 진화 과정이라기보다 노동조합과 같은 취약계층이 집회, 시위, 폭력적 저항의 압력에 의해 불가피하게 도입된 경우가 많았다. 2007년 쿠삭, 아이버센, 사스키스 등 정치학자와 사회학자는 미국정치학회지 논문에서 노동시장과 기업 특수적 기술의 중요성이 큰 국가의 우파 정부가 비례대표제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렇듯 비례대표제는 단순하게 강력한 좌파 정당의 등장이나 분열된 우파 정부가 만든 어쩔 수 없는 결과만이 아니라 좌우 정당의 타협의 산물이다.

선거제도의 사회경제적 효과

선거제도는 정당 뿐 아니라 국가의 운명도 크게 좌우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가 극단적으로 분리된 다원적 사회에서 소선구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만약 정당이 지역구만 대표한다면 소득, 재산, 성별, 연령을 둘러싼 계층의 균열을 제대로 대표할 수 없다. 미국처럼 다수대표제 선거제도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부자나 기업이 사회의 약자나 노동자보다 지나치게 커다란 권력을 가지는 경향이 크다.

미국 정치학자 폴 피어슨이 <승자독식 정치>에서 분석한대로 미국에서 정당의 역할은 미미한 한편, 하원의원은 오로지 지역구 이익만 우선시한다. 1등만 당선되는 치열한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정치광고 비용 등 선거자금이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천문학적 선거 비용을 후원하는 대기업, 이익집단, 로비 회사의 입김에 따라 정치가 좌우된다.

반면에 정당의 정체성에 따라 공천을 결정하는 유럽의 유권자들은 이념과 정책에 관심이 많다. 선거 경쟁은 주로 전국적 차원의 조세와 복지를 둘러싼 재분배와 삶의 질을 둘러싼 정책 논쟁으로 결정된다.

왜 미국이 유럽보다 빈곤과 불평등이 심한가?

일반적으로 미국과 영국과 같은 다수제 민주주의 국가는 비례대표제를 선택한 유럽 국가들보다 빈곤과 불평등의 수준이 높다. 왜 그럴까? 아이버센 교수와 사스키스 교수는 단순다수제 선거제도를 선택한 국가에서 중도우파 정부가 주로 등장하는 이유로 중위투표자들이 중도좌파 정당의 집권 후 좌경화를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중간계급은 중도좌파 정부가 들어서면 복지국가를 급격히 강화하여 지나친 조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간계급이 반드시 복지국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간계급의 대다수는 복지국가를 지지한다. 중간계급은 복지국가의 확대가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기 바란다. 우선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가 먼저 실행한 다음, 중간계급에 대한 과세가 점차 증대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념이 양극화된 양당제에서 중간계급은 자신들의 선호가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중도좌파 정부는 조세 부담을 급격히 늘릴 가능성이 크고, 중도우파 정부는 복지국가에 관심을 갖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결국 중위투표자들은 당장 조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보수정당을 선택한다. 중간계급의 투표성향을 인해 단순다수제 선거제도에서는 복지 공약을 내건 중도좌파 정당이 집권하기 어렵고, 집권하더라도 권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승자독식정치와 배제의 정치

미국과 영국과 같은 다수제 민주주의는 주로 양당제를 가지고 있으며,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정부를 장악하고 권력을 독점한다. 반면 선거에서 패한 정당과 지지자들은 정치과정에서 배제된다. 결국 정권 교체의 시기마다 정당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정치 양극화가 발생한다.

양당제는 승자독식정치(winner-take-all politics)를 만들고 패자를 철저하게 소외시키는 배제의 정치를 유지한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대표하는 정당이 정책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가능성은 낮다. 결과적으로 다수제 민주주의를 선택하는 양당제 국가에서 재분배 정치가 발전할 가능성은 낮으며, 정부가 재분배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도 적다. 한국의 다수대표제 선거방식도 미국과 유사한 효과를 만들었다.

합의민주주의와 포용의 정치

반면에 유럽 국가와 같이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는 정치체제는 합의 민주주의의 특성을 가진다. 합의제 민주주의는 대부분 의회제, 비례대표제, 대선구제, 다당제, 연합정부의 특성을 가진다. 합의 민주주의에서는 국가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결정과정에서 모든 주요 정당과 지배적 정치세력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경제적 소수집단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효과적으로 참여한다.

결과적으로 시장 경쟁에서 뒤처진 사회적 약자들을 지원하는 복지제도가 발전되고 빈곤과 실업의 위험을 줄이는 국가의 개입이 활발한 편이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 장치의 발전은 민주적 정치체제의 핵심이 되고 포용의 정치가 발전한다.

한국 비례대표제의 전망

최근 한국에서도 정당명부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비례대표제 확대를 권고했고, 2017년 대선에서도 모든 정당 후보가 동의했다. 국민 여론도 비례대표제 확대에 대한 여론이 과반수가 넘었다.

그런데 지역구 국회의원의 이해관계로 쉽게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특히 민주당의 소극적 태도로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단식으로 비례대표제가 정치 의제로 부상했지만, 아직도 앞날은 불투명하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대표성과 비례성의 원칙을 살릴 수 있는 비례대표제가 강화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선거제도 개혁이야말로 국회의원의 운명만이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2016년 촛불시민혁명의 국민적 요구인 사회경제적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도 선거제도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기자 : 김윤태 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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