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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마이웨이 개혁` 佛 마크롱의 불통…정권 퇴진운동 불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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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리더십 위기 ◆

매일경제

2005년 파리 폭동사태 이후 처음으로 엘리제궁 인근 등 주요 장소에 장갑차까지 등장하게 한 프랑스 '노란조끼(Gilets Jaunes)' 시위의 직접적 원인은 유류세 인상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행정부는 지난 1년간 환경오염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경유와 휘발유에 대한 유류세를 각각 23%, 15% 올렸다. 여기에다 내년부터 유류세를 추가 인상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프랑스 시민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지난달 17일 시작된 시위는 유류세 인상에 직접적 타격을 입은 사람들인 트럭운전사와 소규모 자영업자 등이 주도했다. 노란조끼 시위가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유류세 때문에 시작됐지만 불과 한 달 만에 정권 퇴진운동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배경에는 마크롱 대통령의 현실인식 부재 탓이 컸다.

지난해 5월 프랑스 대선에서 변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 덕분에 마크롱 대통령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일방적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부유세를 낮추고 최저임금은 동결했다. 각종 복지 제도도 축소하고 노동개혁을 단행했다. 정책 방향은 대선 과정에서 국민에게 알려졌고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공약을 추진하는 과정이 너무 일방적이었고 추진된 각종 정책은 국민에게 부자를 위한 정책으로 보여졌다. 이 과정에서 중산층과 노동자들의 소외감은 커졌다. 노란조끼 시위에 참가한 마틸드 포젯은 현장에 나온 폭스뉴스 기자에게 "우리가 현대판 노예라는 인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노란조끼 시위대는 시간이 흐르면서 '유류세 인상 반대' 이슈를 넘어섰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마크롱의 개혁 중단을 요구했다. 프랑스 사회를 짓누르는 극심한 빈부격차, 높은 실업률 등 각종 문제점이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노란조끼 시위는 규모를 계속 키워가면서 일부 과격세력의 폭력시위까지 겹쳤다.

이번 시위가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졌지만 '콧대 높은' 마크롱 대통령은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다. 지난달 대국민 연설에서 그는 "시위대의 불만은 이해한다"면서도 "유류세 인상은 '가야 할 길'"이라고 밝혔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도 노란조끼 1차 시위가 일어난 다음날인 지난달 18일 프랑스2 방송에 출연해 "시민들의 분노와 고통의 목소리를 잘 들었다"면서도 "정부의 방향은 옳다. 바람이 분다고 갈 길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마이웨이'를 고집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 정책에 누적된 불만이 일시에 폭발했다. 백인 노동계층을 포함한 평범한 시민들이 시위에 대거 동참했다. 리베라시옹은 "마크롱 정부가 부유세를 감면했고, 노동법을 개혁해 직업 안정성을 악화시켰다"며 서민층의 분노가 쌓인 이유를 설명했다.

또 마크롱 대통령에게 정치적 위기를 타개할 만한 경험과 능력을 갖춘 베테랑 정치인들이 그의 곁을 떠난 점도 이번 사태 악화에 한몫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여름 대선캠프 경호원 출신 수행비서가 경찰관 행세를 하며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한 사건을 두둔하면서 여론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 와중에 주요 각료들이 대통령과 불화 끝에 줄줄이 사퇴하면서 더 고립됐다. 당시 각료 중 대중적 호감도가 높았던 니콜라 윌로 환경부 장관이 원전 감축 연기를 놓고 내각에서 갈등 끝에 사임했다. 그리고 연이어 71세로 각료 중 최연장자 제라르 콜롱 내무부 장관도 리옹 시장에 재도전하겠다면서 사퇴했다.

르몽드는 최근 분석기사에서 "의회의 여당이 과반인 데다 분열된 야권이 무력한 상황에서 마크롱의 제1의 적은 마크롱"이라며 "실패를 겪어보지 않은 대통령이 변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다가는 '국가 개조' 프로젝트가 공허한 울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대규모 노란조끼 시위가 네 번이나 일어난 후인 10일에서야 마크롱 대통령이 발표한 사과와 태도 변화 약속은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 대국민담화에 대해 시위대 사이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이 부유세 원상 복구 요구를 거부했다는 점이 향후 불씨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주말마다 시위를 여는 노란조끼 시위대는 오는 15일 추가 시위가 열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노란조끼 시위를 4주째 수습하지 못하면서 경제적 피해도 극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프랑스 소매협회는 지난 7일 집계 결과 1차 노란조끼 시위가 일어난 지난달 17일 이후 소매업계에서 10억유로(약 1조2836억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향후 정국이 불투명하지만 크리스마스 휴가 시즌을 계기로 노란조끼 시위 열기가 주춤하기를 프랑스 당국은 기대하는 눈치다. AP통신에 따르면 반세기 전 학생·노동자들의 대투쟁이었던 '68혁명' 당시에도 4∼5월 프랑스 정부를 거의 전복 직전 위기까지 내몰았던 거리시위 열기가 여름 바캉스철이 다가오자 급속도로 식어버린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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