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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수)

"팩트체킹 안하고 논란과 혐오 증폭"… 뒤돌아서 웃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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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파시즘-혐오 조장하는 언론①] 혐오를 먹고사는 언론

“논란은 기자가 만드는 듯.”

각종 ‘논란’이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에 단골처럼 달리는 댓글 가운데 하나이다. 언론이 기사 노출 빈도와 조회수 앞에 사회 문제 해결과 통합을 도모하기는 커녕 갈등과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언론이 눈앞의 이익을 좇아 갈등을 일으킬 것이 아니라 언론윤리에 맞는 보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확인 없이 혐오 확대 재생산...기자들 “어쩔 수 없었다”

‘성대결’ ‘난민’ ‘세대 갈등’ ‘보수-진보 이념대립’ 등은 ‘선정성’과 함께 온라인 기자에게 흥행보증수표로 취급된다. 기사 조회수가 광고수익으로 직결되는 언론사의 수익 구조상 자극적인 주제는 기자들에겐 치명적인 유혹이다. ‘좋은 기사를 써서 아무도 안 보느니, 나쁜 기사로 논란이라도 일으키는 게 낫다’는 말이 업계에 횡행하는 이유다.

세계일보

3년차 온라인 기자 이모(30)씨는 10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사간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 (갈등을 조장하는 기사를) 쓰기 싫어도 써야 할 때가 있다”고 한숨지었다. 그는 “입사 초기엔 ‘좋은 기사’로 평가받고 싶다는 마음이 컸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더라”며 “낮은 조회수 앞에 좌절하고, 위에서는 깨지고, 결국 ‘남혐’ ‘여혐’ ‘맘충’ 이런 기사들로 폭발적 반응을 몇 번 받고 나면 계속 그것만 쓰게 된다”고 씁쓸해했다.

2년 차 온라인 기자 김모(28)씨도 “기사를 쓸 때 온라인 커뮤니티와 ‘실검(실시간 검색어)’을 주로 본다”며 “잘하면 검색에 걸려 ‘대박’날 수 있다. 물론 익명의 네티즌이 올린 것이기 때문에 사실 확인은 어렵다. 그렇다고 안 쓰면 위에서 ‘대응 안하고 뭐했냐’고 깨진다. 그래서 일단 쓰고 본다”고 고백했다.

온라인매체의 한 부장도 후배 기자들에게 간접적으로 ‘많이 읽히는 기사’를 주문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후배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러는 게 맞나 싶지만, 일단 하루하루 PV(페이지뷰)가 바로 압박으로 다가오는데, 안 그러기가 쉽지 않다”며 “조금만 조회수가 떨어지면 위에서 불호령이 떨어진다. 남녀 갈등이니, 종북이니 이런 것들은 사람들이 욕하면서도 보고 댓글도 많이 달려 상부 보고용으로도 체면이 서니 자꾸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조롱 확산 도구’ 언론을 역이용하는 일베, 워마드

일각에서 ‘혐오 조장 세력과 언론이 한통속’이란 주장도 나온다. 실제 일베, 워마드 등 급진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언론을 ‘조롱을 확산하는 도구’로 악용하기도 한다.

지난 7월 초 소위 ‘사생놀이’라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포르노 합성 사진이 워마드에 대거 올라왔다. 당시 워마드 측은 “(합성물 시상식) 대상을 제일 먼저 기사에 나오는 회원에게 주겠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내려받은 이미지로 자신이 ‘살인’ ‘강간’ 등 혐오 범죄를 저질렀다고 거짓으로 자백한 후 기사화되면 의기양양해 하는 경우도 있다.

일베 회원들은 오래전부터 언론을 대상으로 소위 ‘어그로’를 끌어왔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합성한 사진이 기사나 방송에 나가게 하고 ‘민주화했다’고 자축하거나, 세월호 사태 후 어묵 사진을 올리며 “기자야 내 댓글도 뉴스 좀 띄워줘라” “‘기레기’야 떡밥이다”라고 하는 식이다.

세계일보

김성철 고려대(언론정보학)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언론의 기본은 팩트 체킹이다. 상식적인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사실 확인은) 기사를 쓰기 전에 해야 하고, 데스크에서 걸러줘야 하는 것”이라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이런 기본을 무시하는 측면에서 전체적인 저널리즘의 수준이 저하된 부분이 있다. 실제 팩트 체킹 시스템을 갖추고 이걸 돌리는 언론사가 많지 않다. 언론사 측면에서도 팩트 체크 전문 인력을 키운다거나 투자하는 측면에서 소극적”이라며 “결국 이는 언론사의 뉴스 가치와 신뢰를 떨어트린다. 언론사의 지나친 수익추구가 저널리즘의 위기를 스스로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익 앞에 혐오 부채질... 전문가 “언론이 차별 조장”

전문가들은 “언론이 자율성을 무기로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수역 폭행사건’ 등을 남녀 대립 구도에서 기사화하고, ‘강서 PC방 살인사건’ 을 보도할 땐 조선족 혐오를 촉발하는 등 사회 갈등을 조장했다는 주장이다.

2016년 6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20대 여성들 여성혐오적 조장 언론보도 비판'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언론의 '~녀' 식의 가해자 중심적인 언론보도를 비판하며 언론중재위원회의 성평등 관련 시정권고 심의기준 마련을 촉구했다. 당시 해당 단체는 ‘트렁크녀’ ‘염산녀’ 등 언론이 피해 여성을 축약해 부르는 행태를 비판했지만 2년이 흐른 지금도 바뀐 것은 없다.

세계일보

그런가 하면 난민인권단체들은 ‘세계 난민의 날’인 6월2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난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정부와 언론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신영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당시 “(부적절한 언론 보도로) 제주도에 온 난민들에 대한 첫인상은 ‘가짜 난민’과 ‘잠재적인 테러리스트인 이슬람 국가 예멘 출신’으로 굳어졌다”며 “한 방송에서 예멘 난민 문제를 다루면서 ‘케냐 젓가락 살인 사건’과 연결했다. 이 기사는 제목부터 내용까지 일관되게 난민들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는 것에 기여를 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한규섭 서울대(언론정보학)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에) 언론사가 너무 많아져 경쟁이 치열해졌다. 실시간으로 기사의 조회수나 독자들의 관심이라든지 드러나다 보니 그런 문제 때문에 언론이 혐오를 이용하는 현상이 생긴 것”이라며 “언론사 스스로 기사를 자극적으로 몰아가는 식으로 쓰는 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언론 규제 미흡... 시민 10명 중 6명 “혐오 해결에 언론 역할 중요”

시민들은 사회 혐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언론도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지난 7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성-남성 혐오 인식 조사를 한 결과 혐오 문제 해결 방안으로 “언론의 적극적이고 철저한 팩트체크로 혐오에 대한 허위정보를 걸러내야 한다”고 밝힌 응답자가 34.6%였다. 이어 “신문·방송 등 언론에서 성별 관련 혐오를 부추길 수 있는 표현이나 보도를 자제한다”를 고른 응답자가 25.0%였다. 전체 응답자 10명 중 6명은 혐오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기관의 언론 규제는 민감한 사안이다. 자칫 언론의 자율성을 그르쳐 언론 탄압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업체에서 ‘어뷰징’ 기사나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내는 언론사에 벌점을 부과해 기사 노출을 막는 정도가 실질적인 제한이다. 하지만 이는 사후적 제재에 불과하며, 언론사의 도덕성을 답보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언론사 스스로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김성철 교수는 “언론의 자유가 있으니 정부가 언론을 규제할 수는 없다. 언론사 스스로 자정하는 자율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또한 독자들이 감시자로 오류를 잡아내고 공유하고 해당 언론사를 안 찾게 되면 질 낮은 기사를 쓰는 분위기는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 내다봤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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