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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알쓸신세] 마약 대신 토마토에 손···'동네양아치' 다 된 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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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가 직접 굴삭기에 타서 마피아 주택 철거에 참여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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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가 굴삭기에 올라타 한 주택을 부쉈습니다. 로마 남동부에 위치한 이 집은 마피아 조직 ‘카사모니카’(Casamonica)가 불법으로 지은 건물입니다. 이탈리아 정부가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상징적 의미로 살비니 부총리가 직접 이 집을 부순 거지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달 들어서만 벌써 자국 최대 마피아 ‘은드랑게타’(Ndrangheta) 조직원 90여명을 체포했고, 시칠리아에 기반을 둔 ‘코사 노스트라’(Cosa Nostra) 우두머리 세티모 미네오와 조직원 45명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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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 코사 노스트라(Cosa Nostra) 우두머리 세티모 미네오(80)가 경찰에 붙잡혔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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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마피아의 본고장’으로 익히 알려졌는데요. 은드랑게타의 한 해 수입만 약 600억 달러(67조6000억원)로 크로아티아나 불가리아의 국내총생산(GDP)에 맞먹습니다. 통상 마피아들은 세계적으로 마약 카르텔을 만들고 고리대금업으로 막대한 부를 불린다고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요즘 마피아들은 농사, 쓰레기 처리, 난민 사업에까지 손을 뻗쳐 서민들 등골을 휘게한다고 합니다. 보다못해 이탈리아 정부가 '마피아와의 전쟁'에 나선 이유기도 하지요.

[고 보면 모 있는 기한 계뉴스, 알쓸신세]가 서민들의 일상까지 파고 들어온 이탈리아 마피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마약대신 토마토 수확하는 ‘농피아’ 등장
마피아하면 마약이 떠오르지만, 올리브와 토마토에 손을 대는 마피아가 있습니다. 바로, 농업과 마피아의 합성어인 ‘아그로마피아’(agromafia)입니다. 우리말로 굳이 옮기면 ‘농피아’정도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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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한 농장 모습. 이탈리아 마피아들이 농업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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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경찰은 지난달 “3대 마피아 조직인 카모라(Camorra), 코사 노스트라, 은드랑게타 모두 농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한 수입은 2011년부터 매년 약 10%씩 올라 올해는 220억 유로(28조3000억원)나 됐습니다. 이들 3대 조직 전체 수입의 약 15%를 차지할 정도라는군요. 마피아들이 이탈리아의 오랜 경기침체로 가격이 떨어진 농장과 가축들을 사들여 농장을 임대하거나 노동자를 고용해 농작물을 수확하고 유통해 돈을 버는 겁니다. 한 예로 헐값의 토지를 사들여 임대료로만 약 2000%의 수익률을 올렸다고 합니다.

스테마노 마지니 교수(농업·식품 범죄감시원 법학과)는 “수익성이 좋고, 마약 유통보다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마피아들이 농업에 뛰어 든다”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마피아들이 수준 이하 품질의 농식품을 고품질로 둔갑시켜 유통하는가 하면 농장 노동자에게 저임금·장시간 불법 노동을 시킨다는 겁니다. 마피아에게 고용된 농부들은 하루에 8~14시간 일하고 일당 20~30유로를 받고, 최악의 경우 시급 1유로를 받았다고 이탈리아 경찰은 밝혔습니다. 마피아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역사학자 움베르토 산티노는 “마피아의 농업 진출은 인신매매·돈세탁·유독성 쓰레기 매립 등을 가능케하는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에게 쓰레기는 금이다”


이탈리아 마피아는 쓰레기에도 손을 댄다고 합니다. 쓰레기로 어떻게 돈을 버는 걸까요.

대표적인 ‘쓰피아’는 이탈리아 남부도시 나폴리를 근거지로 하는 카모라입니다. 카모라의 한 조직원은 “우리에게 쓰레기는 금이다”라고 말했다는데요. 카모라는 1994년 직접 쓰레기 처리업체를 설립해 나폴리시(市)와 계약을 맺고 쓰레기 수거를 독점해왔습니다. 쓰레기를 수거해 시(市)로부터 돈도 받고, 그 쓰레기를 아무데나 매립하거나 불법 소각해 처리비용을 아껴 또 돈을 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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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인근 도시에 소각된 쓰레기가 그대로 방치된 모습.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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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부지역 기업들도 카모라의 돈벌이에 한 몫 보탰습니다. 이들은 산업폐기물을 좀 더 싼 값에 처분하려고 정식 쓰레기 수거업체 대신 카모라를 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피아들은 지역주민을 협박해 헐값에 토지를 사들여 매립지로 이용했다는군요. 주민들 피해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불법 매립과 소각으로 중금속과 염소화합물 등이 인근 마을 캄파니아주 카세르타를 뒤덮어 주민들의 건강까지 나빠지고 있습니다. 캄파니아주 쓰레기 소각장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다른 지역 거주자보다 간암 발생률이 3배나 높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에서 ‘에코 마피아’(ecomafia)라고도 불립니다. 지난 6월 세르지오 코스타 환경부 장관은 “에코 마피아 척결을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밝혔고,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노베르토 사비아노는 카모라의 이같은 범죄를 고발하는 책 『고모라(Gomorrah)』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난민센터까지 마피아 손아귀 안
마피아는 난민센터 운영에도 개입했습니다.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주에 위치한 ‘산타나 카라 난민센터’가 바로 그곳인데요, 은드랑게타의 산하 조직인 아레나가 손을 뻗은 겁니다. 이곳은 약 1500명을 수용 가능한 이탈리아 최대 난민센터인데요. 난민들에게 제공되는 식사와 세탁을 마피아가 담당하면서 자금을 횡령했습니다. 이 난민센터는 2006~2015년 10년 동안 정부로부터 약 1억300만 유로(1320억원)를 지원받았고, 그중 3분의 1가량인 3600만 유로(460억원)를 가로챈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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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넘어온 리비야 난민들. 마피아들은 이탈리아 난민센터 운영에 개입하고, 난민을 이용해 마약 밀수시도까지 한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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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 검찰은 “난민에게 제공되는 음식은 매우 적었을 뿐 아니라 돼지에게 먹일만한 음식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지난해 이 범죄에 가담한 68명은 국가지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로지 빈디 반마피아위원회 위원장은 “난민센터가 범죄조직의 돈 창구로 전락했다”며 “우리의 약점을 활용하는 마피아의 기생 능력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라파엘 캔톤 치안판사는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말했는데요. 추가 수사결과 리비아 해안에 가까운 람페두사섬의 난민센터에서도 공적자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또 마피아들은 난민들에게 마약 밀매를 강요하기까지 했습니다.

“마피아는 카멜레온이다”…변화하는 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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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가 굴삭기에서 내려와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마테오 살비니 트위터]


유럽연합 검찰인 유로저스트와 경찰 유로폴까지 나서 마피아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 정부가 일상으로 교묘하게 파고든 마피아를 뿌리 뽑을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마피아 소탕에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마피아 탐사보도로 저명한 저널리스트 세실리아 애네시는 “정부가 소탕에 일부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마피아들은 끊임없이 재조직돼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피아 관련 서적을 집필해온 안토니오 니카소는 “정부의 이번 마피아 체포는 그들의 거대한 조직 표면에 조그만 스크래치를 낸 것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각 지역 정치인과 마피아가 결탁해있기 때문입니다. CNN은 “마피아들은 지역 정치를 관통하고 있고, 지방 선거를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도 있다”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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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경찰이 지난해 4월 마피아를 체포하고 있는 모습. 이탈리아 경찰은 마피아 동료들의 보복을 우려해 검은 복면을 쓰곤 한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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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피아가 오랜 세월 사라지지 않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그들이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적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피아, 쓰피아처럼 말이죠. 텔레그래프는 “마피아는 21세기 새로운 시나리오에 적응할 능력이 있고, 경제위기를 기회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고 전합니다. 한 이탈리아 경찰은 마피아를 ‘카멜레온’에 비유하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시대 변화에 잘 적응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일본 야쿠자처럼요. 최근 보도에 따르면 야쿠자들도 기존 방식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지자 이탈리아 마피아처럼 농업·수산업에 뛰어들며 변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야쿠자들이 해삼을 잡아 각성제 성분을 추출해 가공업체에 넘기고, 멜론·망고 서리까지 한다고 전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21세기 갱단에 맞서 각국 정부의 대처 능력도 진화해야 할텐데요, 불도저로 집 부수기 쇼를 하는 이탈리아의 '마피아와의 전쟁'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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