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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강의실서도, 전철역서도 '김정은 환영'…대학가 곳곳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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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님의 서울 방문, 평양에서 보다 더 큰 환대를 보여줘야 합니다."

지난 5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의 한 강의실에 학생 3명이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서울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나타났다. ‘꽃물결 대학생 실천단’이라고 소개한 이들은 "지난 두 정권 아래서 남과 북은 단절돼 있었고, 잘못된 정보로 인해 북에 대한 편견이 짙어졌다"며 "북한 최고지도자의 최초 서울 방문은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켜 레드 콤플렉스, 종북몰이, 국가보안법 등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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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방문을 환영한다는 백두칭송위원회 소속 대학생 꽃물결 실천단이 성균관대 강의실을 찾아 환영엽서 제작을 독려하는 모습. /대학생 꽃물결 실천단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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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지난 5일 꽃물결 대학생 실천단이 자신들의 홍보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에 담겼다. 꽃물결 대학생 실천단은 ‘김정은 찬양 논란’이 일고 있는 '백두칭송위원회'에 참여한 좌파 성향 대학생 단체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이 지난달 21일 결성했다. 실천단은 성균관대를 비롯해 이화여대, 홍익대, 서울시립대 등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동영상을 보면 학생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체 소속 한 남학생이 강의실을 돌며 학생들에게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 환영엽서를 만들기 위해 환영 문구를 한 번만 적어달라"고 요청했지만, 학생들은 대부분 거절했다. 일부 학생은 자리를 뜨는 모습도 보였다.

최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환영하자는 종북 성향 대학생 단체들이 본격적인 ‘홍보 활동’에 나서면서 대학가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들 단체는 김정은 답방 가능성이 높아지자 ‘김정은 환영 분위기 띄우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대학생 사이에선 "학문의 공간인 학교에서 이념적인 활동을 펼치는 것이 불쾌하다" "마치 학교를 대표하는 것처럼 학교 이름을 빌려 독재자를 미화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 ‘김정은 이화여대 환영위원회’에 발끈한 이대생들…"학교 이름 팔지마라"
이화여대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방문 이화여대 환영위원회’라는 단체의 활동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왜 ‘이화여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냐"는 반발이 나오면서 ‘대자보 논쟁’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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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방문 이화여대 환영위원회가 교내에 부착한 대자보의 모습(위), 이에 반박하는 추가 대자보(아래)의 모습 /박성은 학생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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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환영위’는 지난달 27일엔 학내 동아리가 모여있는 학문관에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 오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발언을 정리한 장문의 대자보를 붙였다.

그러자 곧바로 이를 비판하는 반박 대자보가 붙었다. 이 학교 재학생 박성은(23)씨가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 독재를 비판하지는 못할망정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당신들이 부끄럽다"는 대자보를 게시한 것이다. 박씨는 "이화여대는 여성 인권을 지지하는 학교"라며 "그런 학교의 학생들이 어떻게 기쁨조를 선발하고 강제 임신·낙태를 시키는 나라의 대표를 옹호할 수 있느냐"고 했다.

‘이화여대 환영위’는 지난달 29일 학내 강의실을 찾아 학생들에게 환영위를 소개하는 ‘강의실 방문’ 시간을 가졌고, 지난 3일엔 서울 서대문구 신촌 명물거리에서는 ‘백두 한라 만나 평화’라는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상당수 이대생들은 ‘이화여대 환영위’의 활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환영위의 포스터를 보면 ‘엑스’(X)를 표시하거나 포스터를 찢는 ‘인증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자"고 제안했다. 또 환영위 소속 학생들의 신상을 공개하고 퇴학 등 징계를 요구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이대생은 "‘이화여대 환영위’라는 명칭을 사용해 마치 학교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 매우 불쾌하다"며 "소셜미디어 등에서 ‘김정은 기쁨조’라는 등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는데 학교 측에서는 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너무나 수치스럽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면서 10일 현재 환영위가 작성한 대자보는 철거된 상황이다. ‘이화여대 환영위’의 페이스북 계정도 사라졌다.

이화여대 측은 "이화여대·이대 등 학교 명칭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학교에 공식적으로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환영위는 그런 절차를 밟지 않았다"며 "상표법 위반에 따른 법률적인 문제와 다른 학생들의 항의에 대한 의견을 (환영위에) 전달했다"고 했다.

◇ 길거리·사이버 공간에서도 ‘김정은 환영’ 논란
‘대학생실천단 꽃물결’의 ‘김정은 홍보 활동’이 학내에만 그치지 않고 주요 지하철역 주변 길거리로 확장되면서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최근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가 몰린 2호선 신촌역을 비롯해 고려대 주변인 6호선 안암역, 한양대 근처인 2·5호선 왕십리역 등에는 ‘환영! 김정은 국무위원장님 서울방문’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고려대 커뮤니티는 안암역에 붙여진 현수막 때문에 설전이 오갔다. 한 학생은 "적화통일 당한 줄 알았다. 백두칭송위원회라니 진짜 간첩도 이렇게 대놓고는 활동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국가정보원은 뭐 하나? 독재에 맞서싸운 고려대에 저런 게 달려있다니 참 개탄스럽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글엔 100여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학생들은 "저거 찢으면 형사처벌 당하나요? 길 가다 보이면 찢어버리고 싶네요" "북한으로 보내버려야 한다" "멋대로 달아놓은 게 우리 학교랑 무슨 상관? 엮지마요. 기분 나쁘니까" "정말 미쳤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일부에서는 "너무 감정적인 것 같다. 더 나은 미래로 가는 방법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 "더 이상 북한과 원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의견도 나왔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김정은 환영 단체의 활동을 둘러산 논쟁이 붙고 있다. '서강대 겨레 하나’라고 밝힌 단체는 지난 4일 서강대 졸업생과 재학생들만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서강대 페이스북 그룹’에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환영 엽서에 환영 문구를 받는 행사를 열겠다"고 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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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안암역 등 서울 시내 주요 대학가 곳곳에 붙어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님 서울방문 환영’ 현수막의 모습 /대학생 꽃물결 실천단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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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선 사이버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한 학생은 "세계 최악의 독재자, 살인마의 서울 방문을 대한민국 국민의 손으로 환영이라, 그렇게 않은 국민이 대다수일 거라 생각한다"고 적었다. 또 다른 학생은 "김정은 환영이라니… 나라가 미쳐 돌아가는 듯"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 단체를 옹호하는 학생은 "전 세계가 반기는 남북화해 국면을 비꼬는 사람들의 뇌구조가 더 궁금하다. 국가보안법으로 가득 차 있으신가"라고 응수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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