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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매경이 만난 사람] 최장수 주미대사 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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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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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작년에만 한 번의 핵실험(6차)과 16번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고 큰소리를 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 핵버튼이 더 크고 강력하다"고 맞받았다. 연일 살벌한 말이 오갔고 모두가 불안에 떨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던 이 시기, 주미대사로 한미 관계의 최전선을 돌파했던 인물이 있다. 올 9월부터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한 안호영 전 주미대사(62)다. 안 총장은 2013년 6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무려 4년5개월 동안 주미대사를 역임했다. 이는 박정희정부 시절 김동조 주미대사가 6년(1967~1973년)가량 직을 수행한 이래 최장 기록이다.

북한은 그가 주미대사직에 취임하기 넉 달 전인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퇴임 한 달 전인 지난해 9월까지 총 네 차례 핵실험을 했다. 그러나 올해에는 극적인 분위기 반전이 이뤄졌다. 일련의 과정 속에는 상당 부분 안 총장의 보이지 않는 공로가 있다. 안 총장은 한미 관계를 다른 종류의 케이크가 층층이 겹쳐진 '멀티 레이어 케이크'에 비유했다. 안보·통상 등 여러 측면에서 밀접한 연관성을 유지해야 동맹관계가 더 든든해진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이미 정례화된 고위급 협의채널을 정기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안 총장은 '걸어다니는 바른생활'이라는 별명처럼 끝까지 흔들림 없는 자세로 인터뷰를 마쳤다.

―근래 들어 최장기간 주미대사를 지냈다. 주미대사란 어떤 자리인가.

▷미국 정가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끌어야 하는 자리다. 대사 재임 시 북한이 핵실험을 세 번이나 했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명목하에 개입을 자제했다. 대통령, 국무·국방장관, 상·하원 정치인 등 워싱턴 지도부가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게 관건이라는 생각을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최대한 많은 한미정상회담(총 10회)을 열어 정상 간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했다. 2015년 봄에 토니 블링컨 국무부 부장관이 새로 임명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상원의원이던 시절 외교보좌관을 하던 인물이다. 처음 만나러 갔더니 그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문제에 신경 좀 써라"라고 했다며 "앞으로 한반도 문제는 나에게 맡겨라"라고 말하더라. 그 뒤로 한국을 많이 찾았다. 회담을 자주 연 성과가 있었던 셈이다.

미국과의 관계는 항상 '멀티레이어 케이크'가 돼야 한다. 1978년 처음 외교부 북미국으로 배치받았을 당시 외교관 선배들이 한미 관계는 '싱글 이슈 디플로머시(single issue diplomacy)'라고 얘기했다. 안보 이슈에만 목을 매니까 관계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는 경제관계가 이에 못지않게 중요해졌다. 대사 시절 이러한 '멀티 레이어'를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자주 얘기했었다. 이를 위해선 다양한 분야의 상설 협의체를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 대사로 있던 2017년 6월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그간 비정례로 해오던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를 정례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협의체를 활용해 계속 의견을 공유하고 협력하며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주미대사를 지내던 시기는 미·북 관계가 가장 험악하던 시기였다. 지금의 대화 국면을 보며 드는 생각은.

▷지금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를 하고 있는 스티븐 비건이 포드 대외관계 담당 부사장이던 시절 연을 맺었다. 지난달 비건 대표가 방한했을 때 다시 만났다. 그런데 비건 대표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비롯한 한국 측 카운터파트들의 전문성과 헌신에 대해 대단히 높이 평가하더라. 개인적으로 흐뭇했다. 후배 외교관들이 국면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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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 결과 하원이 민주당 손에 넘어가게 됐다.

▷한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외교위·군사위원장 후보로 엘리엇 엥겔(뉴욕)과 애덤 스미스(워싱턴) 등 여러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엥겔 의원은 일단 한국계가 많이 살고 있는 뉴욕을 지역구로 하고 있다. 한국을 잘 알고 한국에 애정이 있다. 엥겔 의원 외교보좌관이 한국을 굉장히 자주 드나든다. 대사 시절이던 2016년 한 번 한국을 들어왔는데 우연찮게 서울에서 그 보좌관을 마주쳤을 정도다. 스미스 의원도 서부 워싱턴주 의원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아시아에 관심이 많다. 민주당으로 하원이 바뀐다고 해서 대외 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공화당이 수성한 상원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에 열린 샹그릴라 대화(제17차 아시아안보회의)에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3명이 참석했다. 코리 가드너(콜로라도)·댄 설리번(알래스카)·데이비드 퍼듀(조지아)다. 3명을 같이 만났는데 "우리가 앞으로 미국의 '신(新)동아시아 삼총사'다"라고 농담을 던지더라. 원래 샹그릴라 대화에 '원조 삼총사'로 참석하던 고(故) 존 매케인·린지 그레이엄·조 리버먼 상원의원의 의지를 자신들이 계승했다는 뜻이다. 새로 온 세 의원도 앞선 원로들 못지않게 한국을 잘 알고 좋아한다.

―김창준 전 공화당 하원의원이 퇴임한 이후 20년 만에 한인 2세인 앤디 김이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는데.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북한담당관을 지내고 힐러리 캠프에서 외교보좌관을 맡았던 로라 로젠버그라는 인물이 있다. 과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앤디 김과 같이 근무했던 분이다. 당시 앤디 김이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능한 모습을 보여 자기가 굉장히 인상 깊게 봤다는 평가를 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 참모 중 개인적 인연이 깊은 사람이 있다면.

▷2017년 2월 워싱턴DC 한 레스토랑에 들렀다. 근데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옆자리에서 저녁을 먹고 있더라. 만나 보면 매우 사려가 깊어 철학자 같은 면모가 있다. 뉴욕타임스(NYT)의 인물평에 그가 어딜 가나 로마제국의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들고 다닌다고 쓰여 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때 매티스 장관이 방한을 앞두고 있어서 "이번에도 명상록을 들고 갈 거냐"라고 물으니 파안대소하던 기억이 난다.

―최근 인생의 낙이 있나. 추후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퇴직 후 틈틈이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다 보니 내가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지 못했다 싶은 게 북한 관계였다. 스스로 메워야 할 공백이라는 생각으로 총장직 제안을 받아들였다. 평생 근무하던 외교부를 떠나며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하루하루 충실히 사는 것도 중요하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계획하고, 계획대로 보람 있게 하루를 지냈다고 생각하면 그게 가장 행복한 일이더라. 정부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런 분야에서 기여할 수 있는 길을 계속 찾아가고 싶다. 어쩌다 보니 재미없는 답변이 돼버렸다.

■ 40년 외교관 외길…안보·번영·국민 '3P'만 보고 걸었죠
北에 대해 더 공부할 필요 느껴…총장직 수락…외교경험 살릴것

직업 외교관 외길 40년을 지낸 안호영 총장에게 '외교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그는 '3P'를 추구하는 것이 외교라고 답했다. 안 총장이 말한 첫 번째 P는 안보(Peace)다. 한국의 첨예한 안보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P는 번영(Prosperity)이다. 한국은 번영하기 위해 대외 관계를 대단히 잘 관리해야 하는 나라라고 설명했다. 그가 지적한 마지막 P는 국격(Prestige)이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로서 갖춰야 할 품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 총장은 "요즘에는 마지막 P가 국격이 아니라 사람(People)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외교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에 한국인 보호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거주자와 관광객이 많이 늘어나면서 외국에 있는 한국 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점점 중요한 외교 과제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대학생 때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기왕이면 보람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며 "보람 있는 일 중에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외교관이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자리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그는 "퇴직을 앞두고 다시 한번 뭘 해야 보람이 있을지 생각하게 됐다"며 "주미대사를 지냈던 경력을 활용하자는 생각으로 총장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외교관 선배로서 훌륭한 외교관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그는 "앞서 3P를 얘기했다. 이를 추구하기 위해선 전문가(Professional)가 돼야 한다"며 네 번째 'P'를 거론했다. 안 총장은 "외교관은 돈을 벌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선택하는 직업이 아니다"라며 "보람을 위해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세 가지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가 말한 목표는 첫째, 자기 분야를 하나 정하라는 것이다. 그는 "지역도 좋고, 통상·국제법 같은 특정 분야도 좋다"고 했다.

둘째, 적어도 커리어의 반을 그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셋째는 선배 외교관 중 롤모델을 정할 것을 권했다. 그는 "처음엔 롤모델을 따라가겠지만 나중에는 넘어서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해야 한다"고 했다.

▶▶ 안호영 총장은…

외무고시 11회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통상 3과장, 통상법률지원팀장, 다자통상국장, 통상교섭조정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통상 전문가다.

△1956년 부산 출생 △경기고, 서울대 외교학과 △미국 조지타운대 대학원 △1977년 외무고시 합격(11회) △1993년 외무부 국제협약과장 △2004년 재정경제부 경제협력국장 △2010년 외교통상부 G20 대사 △2012~2013년 외교통상부 제1차관 △2013~2017년 주미 한국대사 △2018년~현재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안정훈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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