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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마크롱식 일방통행에 분노한 프랑스, 노란조끼를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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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프랑스 파리 개선문에서 2일(현지시간) 복원 담당 직원이 '노란조끼는 승리할 것이다'라고 적힌 낙서 옆을 지나고 있다.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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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생존비용을 말하고 있는데 마크롱은 환경 보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장 월말까지 식비도 모자라는 사람들한테 태양열 패널과 전기차를 사라고 한다"

2일(현지시간) 프랑스의 '노란조끼'운동에 참여한 한 시위대는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이처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비난했다. 마크롱 정부의 불도저식 정책은 전날 파리에서 대규모 폭력사태로 이어졌고 파리에서만 412명이 체포됐으며 경찰 23명을 포함해 133명이 다쳤다. 시위대의 방화 등으로 불탄 건물만 6채였다. 시위에 동참한 다른 트럭 운전자는 뉴욕타임스(NYT)에 "지금 일어나는 상황은 시민들의 봉기다"고 말했다.

■마크롱 "폭력시위 용납 안 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문에 시위 당일 아르헨티나에 있었던 마크롱 대통령은 2일 귀국하자마자 시위 현장을 둘러보고 각료들과 비상사태 선포를 결정하는 회의를 시작했다. 1일 시위는 원래 샹젤리제 거리에서 평화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개선문과 루브르 박물관 등으로 번졌고 개선문에는 '마크롱 퇴진'이라는 낙서가 칠해졌다.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지며 바리케이드 차량에 불을 질렀고 경찰들은 최루탄을 쏘며 강경 진압했다. 시위현장 인근의 상점가에서는 약탈이 벌어졌으며 경찰의 총기가 도난당하기도 했다. 벤자맹 그리보 정부 대변인은 "심각한 폭력사태로 확산되는 시위"를 막기 위해 비상사태를 포함한 모든 조치를 검토중이라고 밝혔고 마크롱 대통령은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내무장관에게 불관용 원칙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G20 회의 폐막 당시 기자회견에서 "폭력에 책임 있는 자들은 변화나 개선이 아니라 혼돈을 바란다"며 "폭력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연합의 마린 르 펜 대표는 1일 인터뷰에서 "현재 모든 폭력 사태는 오만한 마크롱 정부가 보통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들을 거부했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현지 당국은 르 펜 같은 극우 세력 및 극좌 세력이 이번 시위에서 폭력행위를 부추겼다고 보고 주동자 수사에 나섰다.

■일방적인 불통 행정에 분노
1일 발생한 노란조끼 시위 참여자는 전국적으로 약 7만5000명으로 지난달 시위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들은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운전자 모임으로 시작됐으며 지난 5월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규모를 불렸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08년부터 운전자들에게 비상시를 대비해 눈에 잘 띄는 조끼를 의무적으로 가지고 다니도록 했는데 그 조끼가 시위의 상징이 됐다. 자발적으로 모인 노란조끼 시위대는 지난달 17일 1차로 행동에 나서 전국 각지에서 바리케이드를 쌓아 도로를 막았고 24일에는 파리에 모여 대규모 2차 시위를 벌였다. 1~2차 시위 사이에 프랑스 해외영토 등에서도 시위가 발생해 2명이 숨지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유류세였다. 마크롱 정부는 올해부터 화석 연로 퇴출을 위해 경유와 휘발유에 붙이는 세금을 각각 23%, 15%씩 인상했으며 내년 1월에도 추가로 올릴 계획이다. NYT는 기름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경기 침체가 심각한 지방 중산층들에게 타격을 입혔다며 상당수 노란조끼 시위대가 지방에서 상경한 이들이라고 분석했다. 마크롱 정부는 지난달 27일 발표에서 유류세 인상 폭과 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고 물러섰으나 발표 직후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4%가 유류세 추가 인상을 취소해야 한다고 답했다. 66%는 노란조끼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중산층, 극단으로 쏠리나?
노란조끼는 점차 유류세 인상뿐만 아니라 마크롱 정부의 정책 전반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 23일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26%로 전월 대비 3% 포인트 내려갔으며 취임 직후였던 지난해 6월(64%)에 비하면 거의 세토막이 났다. 시위대는 현 정부의 연금 삭감과 기타 개혁을 규탄하며 마크롱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시위가 과거 정치적 색깔이 거의 없었던 중산층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됐다는 점이다. 극우세력이 일부 참여하긴 했지만 시위 자체는 자본가와 부유층을 대표하는 우파나 노조만 신경 쓰는 좌파가 아닌 몰락한 중산층에서 불붙었다. 영국 워윅대학의 짐 실드 프랑스 정치학 교수는 "노란조끼 운동은 결국에는 약해지겠지만 그 분노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새로운 형태로 바뀔 것이며 마크롱 정부를 위협할 지도 모른다"고 평했다.

블룸버그는 노란조끼에 강력한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이들 자체가 새로운 정치 세력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위대 내부에서 8개 지역대표들이 조직 결성을 시도하긴 했지만 지난달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와 중재에 출석한 대표는 8명 중 2명에 불과했다. 블룸버그는 노란조끼가 그간 자신들을 홀대했던 기성정당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들이 극우나 극좌로 기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가 22일 공개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마크롱 대통령과 비교해서 누굴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1%는 르 펜 대표를 꼽았고 21%는 극좌 계열 정당 프랑스앵수미즈의 장 뤽 멜랑숑 대표를 선택했다. 같은 질문에서 기성 정당이자 중도 우파·좌파를 표방하는 공화당과 사회당을 선택한 비율은 각각 15%와 6%에 불과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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