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부작용 대비 부족에, 민심과 동떨어진 메시지까지
영남ㆍ20대ㆍ자영업자 이탈… 포용국가 수혜 기대 저소득층 돌아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추세. 강준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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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이 최근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며 50% 초반대로 추락했다. 3년차를 앞둔 역대 정권의 지지율과 단순 비교하면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닐 수 있다. 허니문 기간이 끝나가는, 정권 출범 이후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50% 지지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실제 한국갤럽의 분기별 집계로 보면 지금 지지율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의 지지율에 맞먹는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높은 81%로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18개월 만에 지지율이 53%(갤럽 11월 넷째 주 조사)까지 속절없이 밀리는 과정과 내용을 전문가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촛불정부’라는 성격상 역대 어느 정권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대를 받고 탄생했다. 연초부터 경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경고가 쏟아졌지만, 정부ㆍ여당이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지지율 추락 상황을 맞았다는 것부터 좋지 않다. 위기를 해결할 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여론을 귀담아 듣지 않는 ‘불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에도 정작 개혁을 제도화 하는 성과가 미진한 점도 핵심 지지층 이탈의 원인으로 꼽힌다.
◇“경제 문제에서 보이지 않는 대통령... 돌아서는 민심”
전문가들은 경제를 중심으로 민생이 흔들리면서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정철학의 핵심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예견된 부작용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진단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25일 “시민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FGI)를 해보면, 새해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우리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캄캄하다고 답하는 사람이 많다”며 “결국은 경제 문제”라고 여론을 전했다.
지역별로 조선ㆍ자동차 산업 위기로 직격탄을 맞게 된 부산ㆍ울산ㆍ경남(PK)을 중심으로 한 영남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빠지는 현상이 전체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직업별로는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 세대별로는 아직 안정된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취업준비생ㆍ비정규직으로 머물고 있는 20대층의 이탈이 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틀로 하는 ‘포용국가 전략’을 앞세우고 있음에도 정작 포용국가의 최대 수혜자로 기대된 계층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야말로 뼈아픈 대목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문 대통령 지지율은 주부나 은퇴자 등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을 것으로 추산되는 층에서 40%대로 저조한 것으로 나타난다”며 “결국 민생고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지율 추락속도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북 정책과 경제 정책의 불균형도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경제 문제와 관련해선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국민들은 북한 문제를 다루는 것 이상으로 경제에 관심을 둬 달라고 하는데 오히려 경제는 소홀히 하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며 “문 대통령은 유독 경제 문제와 관련해 부정적 이미지가 더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인상보다, 부작용 예견하고도 대비 못한 게 잘못”
전문가들은 지금의 경제 상황 못지 않게, 향후 경제 상황에 ‘희망’이 사라져가는 분위기가 지지율 하락에 반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정책 능력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이 같은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자영업 계층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자 청와대에 자영업비서관직을 신설한 것이 역설적으로 소득주도 정책을 끌어갈 정책적 역량이 부족함을 드러낸 대목으로 비춰졌다. 구체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리기에 앞서 경영계로부터는 프랜차이즈ㆍ대기업이 자영업자를 상대로 독점 이윤을 누리는 구조를 깨도록 동의를 구하고, 노동계로부터는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양보를 얻어 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을 본격화하기에 앞서 공정경제와 혁신성장이라는 디딤판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배 본부장은 “최저임금을 올리는 과정에서 우리경제가 버팀목이 돼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조율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게 여론”이라고 밝혔다. 홍 소장도 “소득주도성장은 국정운영의 철학이지 정책이 아닌데, 정작 구호만 요란하고 정책의 구체성은 떨어졌다”며 “정부가 ‘레토릭(수사학) 경제’의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나쁜 경제 못지않게, 대통령의 메시지가 번지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치평론가 이종훈 박사는 “문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제조업 실적이 개선됐다며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라’라고 민심과는 한참 동떨어진, 공감하기 힘들 발언을 했다”며 “참모들에게 겹겹이 쌓여 세상과 멀어지는 게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경질하는 과정도 오히려 정책적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내용을 놓고 보면 ‘경질’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공식 반응은 경질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나오면서 혼선만 부추겼단 것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경제라인 교체는 일반회사로 보면 내부승진으로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겠다는 것 아니겠냐”며 “문제는 여론을 반영해 교체했으니 앞으로는 이렇게 저렇게 좀 더 하겠다는 내용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대북 정책과 관련한 대통령의 메시지는 일관되면서도 구체적인 반면 경제와 관련해서는 방향성도 없고 단일하지도 않다”며 “국민들 입장에서는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해결할 의지와 능력 모두 없는 것처럼 보여질 경우 부정적 여론을 겉잡을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 철학을 지켜가는 것도 성과, 실리에 쫓기기보다 균형 필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 개혁 의제가 실종된 것도 지지율 하락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정치개혁, 경제민주화 등에서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면서 전통적 지지층에서도 결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개혁을 위한 선거제도 개편이나 재벌개혁을 위한 경제민주화 법에 대해서도 앞장서야 할 여당이 소극적인 데는 “지금 이대로만 가면 21대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부터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밝혀왔는데, 이와 관련해 정부가 내세우는 개혁 과제가 뭔지는 분명치 않은 상황이 되면서 동력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 중반기로 접어드는 만큼 큰 폭의 지지율 반등을 끌어내긴 쉽지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다만 안정적인 국정운영 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지지율이 안정세를 찾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정운영의 균형을 되찾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배 본부장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집권 초 하나회 척결 등 개혁을 주도했지만, 경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개혁 동력을 상실한 반면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적절히 속도조절을 하며 국정개혁의 모멘텀으로 삼으면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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