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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美, 한국 탓에 대북 ‘최악 시나리오’ 우려 이유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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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북한과 미국 간 핵 협상이 장기 교착 상태에 빠졌다. 지난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거의 6개월이 흘렀지만, 양측 간에 실질적인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간 고위급 회담이 지난 8일(현지시간)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북한이 최후의 순간에 전격적으로 취소했고, 아직 회담 재개 여부가 불확실하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 실무급 회담은 아직 첫발도 떼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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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남북 도로 연결 사업에 참여한 남북 군인들이 지난주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국방부 제공


한국과 북한은 그러나 남북 도로·철도 연결 사업 등 남북 화해와 협력을 위한 평화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에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 조사에 필요한 대북 제재 예외 인정을 요구했고, 미국 정부가 이를 사실상 수용했다. 미국은 다만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 관계 개선이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함께 굴러가야 한다며 한국에 속도 조절을 요구하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한·미 공조 문제에 대해 “상대방을 놀라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미국은 한국이 너무 앞서 나가지 못하도록 한·미 워킹 그룹 가동을 제안해 이를 관철했다.

◆최악의 시나리오

미국에서는 이제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고,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남북 경협을 통해 한국 측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P)는 22일(현지시간) ‘미국은 한국이 속도를 늦추도록 분투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한국에서 선물만 챙기려들 것으로 미국이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P는 “미국이 북한과 외교의 문을 열려는 노력은 지난 몇 달간 교착 상태에 빠져 있으나 한국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고, 외교적 화해 노력에는 북한에 대한 대규모 경제 투자 가능성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경제지도에는 남북한 경제 통합 비전이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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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대북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20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한국의 발목을 잡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의 비핵화가 남북 관계 증진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확실하게 통보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가 이제 앞으로의 진행 과정을 공식화하려고 (한·미) 워킹 그룹을 출범시켰다”면서 “이것은 우리가 서로 다른 소리를 하지 않고, 우리나 한국이 서로 다른 쪽이 알지 못하거나 의견 표명 또는 생각을 제시할 기회를 갖지 못한 조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린 폴리시는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트럼프 정부에서 점증하는 북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북한이 진정으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해체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은 채 미국과의 해빙에 따른 과실을 이미 챙기고 있는 점을 미국이 우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 공조 균열

포린 폴리시는 “현재까지 한국과 미국의 외교적 이니셔티브는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가 없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담 준비를 위한 양측간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FP는 “북·미 간에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에도 한국이 북한과 다방면에 걸쳐 관계 개선을 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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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남북철도점검단이 경의선 철도의 북측 연결구간 중 사천강 철도 교량을 점검하는 모습. 연합뉴스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북한을 경유해 한국으로 들여오려는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고, 남북한 철도 연결을 통해 한국의 상품이 육로를 이용해 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려고 한다고 이 매체가 강조했다. 남북한은 철도 연결 착공식을 연내에 개최할 예정이고, 이는 남북한 경제 통합의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포린 폴리시가 지적했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로 인해 북한과 비즈니스 딜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한국 기업에 북한과 거래하지 말라고 분명한 경고를 보냈다. 포린 폴리시는 “한국은 대북 경제 제재에 구애받지 않고, 다른 분야에서 대북 포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북한 군사 분야 긴장 완화 조처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이 매체는 “한국의 대북 제안으로 미국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FP는 “미국에서 많은 관리는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킬지 회의적으로 보고 있으나 한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남북 관계 개선이 긴장 완화의 유일한 수단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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