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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이나영 “신비주의? 이미지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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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뷰티풀 데이즈’ 내일 개봉
한국일보

영화 ‘뷰티풀 데이즈’로 복귀한 이나영은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던 6년간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때로 소속사 사무실에서 회의도 하면서 분주하게 지냈다”고 근황을 들려줬다. 이든나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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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나는 사람을 대하듯 살가운 미소가 건너왔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과 포근한 검은색 스웨터 차림에선 은은한 인간미가 풍겼다. 6년 공백이 주는 낯섦은 금세 지워졌다. 신비주의, 사생활 비공개, 때때로 은둔. 그동안 배우 이나영(39)을 따라다닌 수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목소리마저 털털했다.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에요. 사람들이 ‘너는 신비스러워야 해’라는 시선으로 바라본 건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는 진짜 별 거 없거든요.”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한 이나영은 “특별한 계획이나 의도 없이 본능이 이끄는 대로 흘러왔는데 사람들이 어떠한 성향으로 규정하더라”며 “하지만 그런 인식을 굳이 신경 쓰지는 않는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하울링’ 이후 작품 활동이 잠잠했다. 하지만 삶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2015년 봄 하얀 꽃이 흐드러진 강원도 정선 밀밭에서 동료 배우 원빈과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해 말엔 아들을 얻어 엄마가 됐다. 그러는 사이 대중과는 거리감이 생겼다. “일부러 쉰 건 아니에요. 다만 작품을 잘 만나고 싶은 생각이 컸어요. 좀더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는 작품, 제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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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왼쪽)은 신예 장동윤과 모자 사이로 연기 호흡을 맞춘다. 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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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개봉하는 영화 ‘뷰티풀 데이즈’가 이나영을 6년 만에 스크린으로 불러냈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히치하이커’ ‘마담B’(2016) ‘레터스’(2017) 등으로 주목받은 윤재호 감독이 연출한 첫 번째 극영화다. 어린 나이에 낳은 아들을 중국에 남겨둔 채 한국으로 떠난 탈북민 엄마(이나영)와 14년 만에 엄마를 만나러 온 스무 살 아들 젠첸(장동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름 없이 엄마라고만 불리는 탈북 여성의 신산한 삶, 그리고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암시하는 결말이 먹먹한 여운을 안기며 분단 시대를 성찰하게 한다.

30~40대 여자 배우들이 꺼려하는 엄마 역할에 15회 만에 촬영을 마쳐야 하는 저예산 영화였지만 이나영은 거리끼지 않았다. 출연료도 받지 않았다. “평소 좋아하는 취향의 영화이기도 했고 시나리오의 느낌이 참 좋았어요. 감독님의 전작들도 찾아봤죠. 탈북민을 소재로만 삼은 게 아니라 그들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이나영은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하면 보는 사람도 편안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장면에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와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이 떠오르기도 하더라”며 “명작들만 갖다 붙이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고 유쾌하게 웃었다.

이나영은 쓸쓸한 눈빛에 수많은 사연을 담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엄마’가 겪었을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감성이 더 깊어졌기 때문일까. “경험하지 않았을 때와는 다르긴 할 것 같아요. 엄마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배워가는 중이지만 분명 어딘가엔 녹아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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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은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찍고 있다. “평소 책을 좋아하고 아날로그 감성을 즐기는데, 출판사가 배경인 드라마라서 끌린 작품”이라고 한다. 이든나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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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기 동안 무르익은 연기지만 그는 “배우의 일이 참 어렵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했다. “사실 저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바닥인 사람이에요. 모니터 화면을 보면 제 연기밖에 안 보여요. 제가 매번 아쉬워하니까 감독이 그러지 말라면서 뜯어말릴 정도죠. 자신에 대한 의심이 많은 편인가 봐요.”

의심이 많다는 건 자신을 무언가로 규정하거나 재단하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우리는 매 순간 변하기에 의심하고, 의심하기에 성장한다. 이나영은 “전체를 보면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듯 보이지만 우리는 똑같은 감정을 다시 겪지는 않는다”며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넓어지고 깊어진 사람이 되어 돌아온 이나영에게선 삶의 진실이 담긴 이야기가 샘솟았다. 한결 같은 미모의 비결을 알려달라는 짓궂은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 꼭 그랬다.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깊이감이 있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평소 잡다한 생각을 어머어마하게 많이 하는데,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으려나요(웃음).”

‘뷰티풀 데이즈’를 마치고 요즘엔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촬영하고 있다. 갑자기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 당황스러울 아이에게는 “엄마 일하고 온다”고 설명해 준다. 남편 원빈은 든든한 지원군이다. 이나영은 “같은 직업이라 현장에서 겪는 고충을 알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해 준다”며 고마워했다.

문득 부부의 평소 생활도 궁금해졌다. “저희는 대화를 굉장히 많이 해요. 영화도 많이 보고요. 가끔 우리가 함께 영화를 찍는다면 어떨까 얘기할 때도 있어요. 그때마다 ‘그걸 누가 보냐’ ‘뭘 찍어도 장르는 액션일 거다’ 그러면서 마주보고 웃곤 하죠.”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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