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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한유총, ‘자의적 호봉표’ 만들어 교사들 임금 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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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2년 국공립교사 임금 대폭 인상 뒤

한유총 ‘사립호봉표’ 매년 따로 만들어

시간외 수당 ‘0원’…출산·육아휴직 없어

대체강사 구인비 등 교사가 감당하기도

“대학 동기 7명 중 1명만 현장에 남아”

블랙리스트 오를까 쉬쉬 문제제기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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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대책을 놓고 정부와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의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유총이 사립유치원 교사들의 임금을 깎기 위해 자의적으로 만든 ‘사립호봉표’를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 사립유치원 교사들은 교재 부풀리기와 유령 원아 등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를 고발하려 하지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원장들의 블랙리스트가 무서워 문제 제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2005년부터 13년째 사립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봐온 김성혜(가명)씨는 지난해 유치원 교육 현장을 떠났다. ‘선생님이 때렸다’는 아이의 말을 들은 학부모가 유치원에 찾아와 다짜고짜 김씨를 폭행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유치원에 나가지 못하고 일주일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아야했다. 하지만 학부모의 폭행보다 김씨를 더 좌절하게 만든 건 유치원의 대응이었다. 원장은 김씨에게 빨리 출근하라고 채근했다. “일주일 치료받고 나갔더니 사직서를 쓰라고 하더군요. 심지어 병가는 인정하지 않고 일주일 전 날짜로 사직서를 쓰라고 했어요.”

김씨는 지난 3년 동안 일한 ㅅ유치원에서 근무하며 수당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첫 월급도 자신의 호봉보다 낮았다. 김씨는 “사립 12호봉을 받아야 하는데, 면접 때 원장이 돈이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원래 호봉보다 낮은) 사립 7호봉으로 시작했다”며 “뒤늦게 알았지만 원장은 의정부와 포천에 유치원이 2개나 더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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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총의 임금 담합 ‘사립호봉표’…그마저도 깎아

국공립 유치원 교사는 매년 나라에서 책정하는 호봉표를 바탕으로 임금이 정해진다. 그런데 한유총이 국공립 유치원과 별도로 자의적인 호봉표를 만들어 사실상 담합에 가까운 교사 임금 기준을 현장에 적용하기 시작한 건 2012년부터다. 2011년 행정안전부는 공무원 보수를 5.1% 인상하면서 그동안 호봉 외에 지급하던 교통비와 가계지원비를 호봉 안으로 넣었다. 그 결과 실질 인상률은 27%를 기록했다. 한유총은 이 인상률을 거부하고 기존 호봉표에 5.1%만을 인상한 사립호봉표를 별도로 만들었고, 이를 근거로 매년 3% 내외의 임금을 인상한 사립호봉표를 자의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립호봉표 기준 임금은 국공립호봉표보다 30만원가량 낮다. 사립유치원 해고자 출신인 양민주 전교조 전북지부 총무조직국장은 “그 결과 사립유치원 선생님들의 급여가 딱 최저임금 수준”이라며 “정부가 2013년부터 교사 처우개선비를 지원하자, 일부 유치원은 처우개선비의 일부를 원장이 현금으로 되돌려받는 ‘페이백’을 일삼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립유치원은 교육공무원에 준하는 호봉을 받는 게 맞다고 입을 모은다. 교원의지위향상및교육활동보호를위한특별법 3조는 ‘학교법인과 사립학교 경영자는 그가 설치·경영하는 학교 교원의 보수를 국공립학교 교원의 보수 수준으로 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립호봉표를 기준으로 한 사립유치원 교사들의 임금 문제는 그동안 시·도교육청의 관리·감독에서 벗어나 있었다. 한 유치원 선생님은 “교육청에 전화해 봐도 사립유치원 자율 권한이라 방법이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고 밝혔다.

관리·감독에서 벗어나 국공립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사립유치원 교사들의 호봉은 실제 현실에서 그마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0년 경력의 한 유치원 교사는 “구직사이트에 급여를 ‘협의’라고 올려놓고는 면접에 가면 유치원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호봉을 낮추자고 제안한다”며 “나중에 보니 원장은 유령 교사를 1명 만들어 놓고 그 교사의 월급까지 자신이 가져갔다”고 말했다. 실제 구인·구직 사이트의 채용공고에는 상당수가 ‘급여는 면접 시에 안내한다’고 적혀 있었다.

기본임금이 이런 실정이니 잦은 야근에 따른 수당을 받는 것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유치원 교사 ㄱ씨는 “일지·유아관찰평가·전화상담기록부·주간 월간계획안 등 기본적으로 써야 하는 서류도 많고, 수업이나 행사 준비로 잡무가 많다. 교회 부설 유치원은 주일 교회 봉사활동까지 요구한다“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하지만 시간 외 수당을 받아본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 ㄴ씨는 “어제도 집에 가니 자정을 넘겼다”며 “다음 날 아침 아이들에게 웃어줄 힘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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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유치원에서 죽어야…대체교사도 교사 돈으로

사립유치원 교사들은 몸이 아파도 쉬거나 병원에 갈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병가를 낼 때는 ‘대체강사’를 구해야 하는데, 일부 유치원은 대체강사 비용을 교사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대체강사비는 1회에 6만원가량이다. 이를 막기 위해 시도교육청이 단기대체강사비 예산을 확보해놓고 있지만 올해는 그 예산마저 바닥이 났다. 출산을 앞두고 몸이 좋지 않아 병가를 알아보던 유치원 교사 ㄷ씨는 “시도교육청에서 예산이 없어 올해는 더 이상 지원해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어떻게 할지 원장과 상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올해 2억4400만원의 예산을 확보했지만, 이미 예산이 모두 소진된 상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사들이 연가를 매해 정해진 대로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 수요를 예측하는 게 어렵다”며 “올해는 더 이상 대체강사비를 지원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ㄷ씨는 “교사들의 연차와 휴가가 보장하려면 유치원이 애초에 대체강사비를 감안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라며 “일부 유치원은 대체강사비를 구하는 벼룩시장 광고비까지 교사에게 내라고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러니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4년 차 유치원 교사 박아무개씨는 “결혼을 해서 임신을 하면 아이를 낳기 전에 퇴직하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라며 “12월에서 2월 사이에 새 학기를 준비하면서 임신을 했거나 쉬어야 할 거 같은 사람들은 싹 정리가 된다”고 말했다. 10년 차 유치원 교사는 “출산·육아 등을 이유로 중간에 그만뒀다가 다시 일을 구하려면 고경력자가 되어 있어 월급을 많이 줘야 하니 원장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며 “대학 동기 중에 현장에 남아있는 사람은 7명 중 1명뿐이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오를까 문제제기도 못해

유치원 교사들의 최대 커뮤니티인 고가네 이야기방에는 사립유치원 비리와 관련해 많은 글들이 올라온다. <한겨레>에 제보 메일을 보내온 교사들 역시 △교재 부풀리기 △유령 원아 △유령 교사 △부실 급식 등 다양한 문제 제기를 했다. 유치원 교사 ㄹ씨는 “같은 특별활동 교재인데 ㅁ유치원은 교재비 9만원을 받고, ㅂ유치원은 90만원을 받더라”라며 “불합리한 가격임에도 학부모는 선택권 없이 특별활동 수업에 참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4살 아이는 유치원에 다닐 수 없지만, ㅅ유치원은 4살 아이를 받고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유령 교사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유치원 교사는 “유치원 원장 딸을 서류상 (교사로) 올려놓고 반을 3개 개설한 뒤에 이를 2개로 쪼개서 운영한다”며 “교사 2명은 죽으라 일하고, 원장 딸은 교사 경력만 가져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유치원 교사들은 ‘블랙리스트’가 두려워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을 중심으로 유치원 원장들이 ‘교사 정보’를 공유하는데, 한 번 ‘문제 교사’로 낙인 찍히면 재취업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유치원을 그만두고 어린이집에서 근무 중이라는 한 교사는 “아이들을 차량에 태우고 도는 시간에 이직하려는 유치원의 원장이 근무하던 유치원 원장에게 전화해 제 뒷조사를 했다”며 “결국 재취업에 실패해 지금은 어린이집에 근무 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사립유치원 원장들과 교육 당국의 갈등으로 인한 불똥도 교사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충북도교육청이 온라인 입학관리 시스템 ‘처음학교로’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월 59만원가량인 교원 기본급 보조비를 50% 삭감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부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폐업’ 으름장으로 맞대응하면서 교사들의 고용까지 불안한 상태다. 사립유치원 교사들은 ‘뉴스를 봐도 유치원 교사에 대한 내용은 온데간데없다’며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유아 교사의 인권과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존중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교사들은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어떤 유치원을 보낼지 고민하는 학부모들에게 ‘교사가 행복한 유치원’을 선택하라고 입을 모은다.

“교사 대 유아 비율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보여주기 행사를 많이 하진 않는지 살펴보세요. 밤늦게 불이 켜져 야근을 많은 유치원은 꼭 피하셔야 합니다. 교사도 충분히 잘 쉬고,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이재훈 선담은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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