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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임무 방기” “정치 휘말려” 격론 끝 탄핵 의결…‘신뢰’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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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53명·반대 43명…‘탄핵 개시 촉구’→‘검토’ 변경

“국회에 전달 계획 없다”…권순일 대법관 등 6명 거론

경향신문

판사 대표들 만난 김명수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이 19일 법관회의를 마친 판사 대표들과 저녁식사를 한 뒤 사법연수원 구내식당을 나가고 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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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연루 판사들에 대해 국회의 탄핵소추가 검토돼야 한다는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이하 법관회의) 의결엔 법원 스스로 책임을 묻지 않으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다수 판사들의 생각이 깔려 있다. 법원 밖에서 탄핵 주장이 처음 불거진 뒤 동료 법관에 대한 탄핵을 요구하는 게 가당하냐는 법원 일각의 주장에도 이날 의결을 이룬 것도 신뢰 회복에 대한 여러 판사들의 강렬한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보수적인 법원 분위기를 감안하면 강도 높은 수준의 결론이 나온 이유도 여기 있다. 법관에 대한 탄핵 결의는 사법부 역사상 처음이다.

법관회의는 19일 ‘재판 독립 침해 등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내고 사법농단 의혹 연루 판사들에 대해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는 데 대해 인식을 같이 한다”고 의결했다.



법관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두 가지 행위를 헌법 위반이라고 지목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해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해준 행위’와 ‘일선 재판부에 연락해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절차 진행에 관해 의견을 제시한 행위’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민사소송의 심리 지연 등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는 3시간에 걸쳐 찬성과 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토론이 이뤄졌다. 찬성 측 판사들은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탄핵소추 촉구를 하지 않는 것은 법관회의의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등 근거를 댔다. 반대 측 판사들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탄핵소추는 국회 권한이어서 법원이 촉구하는 게 부적절하다’ 등의 주장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105명이 투표에 참여한 끝에 찬성 53명, 반대 43명, 기권 9명으로 의결이 이뤄졌다.

최한돈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 13명의 법관 대표들이 당초 낸 의안에 들어 있던 ‘탄핵소추 절차 개시 촉구’라는 표현은 이날 논의 과정에서 ‘탄핵소추 절차가 검토돼야 한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법원이 국회에 대해 직접 탄핵소추를 촉구하는 게 삼권분립 원칙상 부적절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반영했다.

토론 과정에서 일부 판사들은 탄핵사유가 존재한다고 인정하더라도 과연 법원이 국회에 대해 탄핵소추의 개시를 촉구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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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들이 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제2차 전국법관대표회의 중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법관에 대한 탄핵 안건을 논의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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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회의 공보간사인 송승용 수원지법 부장판사도 “대법원장에게는 의결사항을 전달하지만 제3의 기관인 국회에 전달할 계획은 없다”며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어 법관회의는 (선언문에서) ‘촉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법관회의의 탄핵 논의는 권형관·박노을·박찬석·이영제·이인경·차경환 판사 등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 6명이 지난 12일 법관회의에 안건으로 제안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서기호 변호사는 “법관회의는 일선 법원에서 묵묵히 재판에 전념하는 다수 판사들의 정서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법관회의는 탄핵소추 대상을 선언문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지난달 30일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가 국회에 제시한 권순일 대법관과 이규진·이민걸·김민수·박상언·정다주 판사 등 6명이 우선 거론된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을 보면 직간접적으로 사법농단 의혹에 관여한 전·현직 판사는 65명에 달한다.

탄핵 소추 대상을 추리는 것은 국회 몫이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해 헌법재판소에 탄핵소추의결서를 제출하면 헌재가 파면할 만한 사유가 있는지 구체적인 심리에 들어가게 된다. 다만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인물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 임 전 차장은 이미 퇴직했다. 이규진 부장판사(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는 내년 2월 임기 만료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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