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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단독] 6월 항쟁의 명소 향린교회당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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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87년 6월항쟁 주도했던 ‘국본’ 결성된 역사적 장소

지난 5월 교인들 공동의회 열어 철거 이전 결정

80년대 이래 재야 민주화·통일운동 메카로 명성

건물 남겨 민주화기념관 조성해야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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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성소인 서울 명동성당 언덕에서 옛 ‘판넬골목’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 대형 빌딩군 사이로 섬처럼 갇힌 교회당이 나타난다. 올해로 창립 65돌을 맞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의 향린교회(담임목사 김희헌)다. 행정구역은 서울 을지로2가 164-11. 세간에서는 명동 향린교회라고 부르는 이 교회당은 명동성당과 더불어 1987년 6월 항쟁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명소다. 87년 5월27일 항쟁을 주도한 연대기구인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바로 여기서 꾸려졌다. 지난해 말 흥행한 영화 <1987>에서도 주요 무대로 등장해 세간의 주목을 다시 받기도 했다.

80년대 이래 숱한 시국 관련 집회와 회의가 열리면서 재야·교계 민주화·통일운동의 메카로 꼽혀온 향린교회 건물이 도심 재개발에 밀려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됐다. 교회 쪽은 최근 <한겨레> 취재진과 만나 현 건물을 재개발 시행사에 매각하고, 사대문 안 다른 곳에 새 교회 건물을 세워 옮기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현 교회의 철거와 이전은 을지로 명동 지구의 대단위 재개발이 본격화한 10년 전부터 논의되었던 것으로, 이번 결정은 지난 5월 목회자와 신도들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공동의회를 열어 논의한 끝에 내린 것이라고 한다. 교회 쪽은 이어 최근 재개발 시행사와 매각을 위한 가계약을 맺은 상태다.

이전할 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신도와 목회자 등 교회 내부 의견을 모아 내년께 확정하기로 했다. 이성환 부목사는 “교회 일대가 을지로 명동 재개발 구역에 포함돼 대규모 빌딩과 도시공원이 들어서게 된다”며 “중구청 사업승인이 나오는 내후년 상반기(5월께까지)를 기점으로 건물 철거와 주변 정비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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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2월 완공된 지금의 향린교회는 지상 4층, 지하 1층의 콘크리트 골조 건물이다. 외벽 일부에 적벽돌과 화강석을 두른 60년대 국내 사무용 건물의 외관을 띤다. 93년 교회에서 펴낸 <향린 40년>을 보면, 신축 당시 교회 관계자들은 교회 티가 나지 않는 건물을 만드는 데 관심을 쏟았다. ‘향기나는 이웃’이란 뜻의 향린교회는 1953년 서울 남산 중턱 고아원 건물에서 신학자 안병무를 비롯한 당시 교계 지식인들의 평신도 신앙공동체로 출발했다. 이런 진보적 전통을 살려 예배자들을 압도하는 전통 교회 스타일을 벗어나 친근하고 일상적인 공간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67년 당시 교회당 건립의 원칙이 됐다. 교회 종탑이나 십자가를 건물 바깥에 일체 세우지 않았고 예배실 천정을 낮추고 고딕창 등의 장식적 요소를 쓰지 않은 것도 이런 원칙에 따른 것이다.

향린교회 쪽은 철거 뒤 과거 교회 공간에서 진행된 민주화운동의 흔적들을 담은 기념공원을 만들기로 재개발업체 쪽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부목사는 “벽체 등 교회 건물 일부분을 보존해 전시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교계나 학계에서는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향린교회가 지닌 상징성을 생각할 때 전면 철거가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건축사연구자 김란기씨는 “건물 본체는 남겨 민주화기념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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