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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가격은 빠지고, 중국은 칼빼고… 반도체 '시련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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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양대(兩大)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 상황에 처했다. 주력 반도체 제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올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하강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독과점 규제 움직임까지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D램 가격(PC용 제품 고정 거래가 기준)은 지난달 7.31달러로 9월보다 10.74%나 폭락해 본격적인 하강 국면에 돌입했다. D램의 고정 거래가가 떨어진 것은 2016년 5월 이후 2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반독점 당국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의 메모리 반도체 가격 담합 조사와 관련한 증거 자료를 다량 확보해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고 발표하면서 한국 반도체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시장조사업체와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8일 보고서를 통해 "내년 반도체 시장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ICT(정보통신기술) 산업 전체가 후퇴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며 "세계 경제의 위축과 중국발(發) 리스크로 인해 반도체 수요 둔화가 시작되고 성장세도 정체될 것"이라고 밝혔다.

◇4분기 들어 본격적인 가격 하강

대만의 반도체 시장조사업체인 D램익스체인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D램의 가격 하락세는 10월부터 시작됐다"며 "이 같은 추세는 4분기 이후에도 지속되고 하락폭도 가팔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D램익스체인지는 또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는 줄어드는 가운데 기업들의 생산량은 계속 늘어나 공급 과잉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조선비즈

그래픽=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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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가격 하락은 전(全) 제품군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우선 고가(高價)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주도해왔던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서버 업체들은 하반기 들어 추가 주문량 규모를 대폭 줄이고 있다. 이미 메모리 재고를 충분히 확보했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대규모 계약으로 반도체를 쓸어담아왔던 서버 업체들이 4분기부터 필요할 때마다 반도체를 확보하는 소량 계약으로 전략을 바꿨다"고 말했다.

여기에 모바일용 반도체 수요도 줄어드는 분위기다. 미국 애플의 아이폰 신제품 판매량이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의 신제품인 아이폰X(텐)S 시리즈와 아이폰XR은 성능 대비 지나치게 높은 가격 탓에 시장에서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이에 따라 애플의 아이폰 생산량 감소가 핵심 부품인 메모리 수요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폰 업계 관계자는 "이미 판매량 감소세가 시작된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이어 애플까지 생산량을 줄이면서 모바일 반도체 수요가 정체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시황 악화 시점에 칼끝 겨눈 중국 정부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를 겨냥한 독과점 조사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당국자가 '반도체 조사에서 중요한 진전'을 언급한 것은 메이저 3사의 가격 담합을 입증할 자료를 충분히 확보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중국 반독점 당국은 약 6개월 동안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으로부터 PC·모바일·서버용 반도체 제품 관련 자료부터 가격 변동 추이, 고객사들과의 계약 내용 같은 자료들을 대거 수집·분석해왔다.

이에 대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기업들 간의 기술력이 서로 차이가 나는데 가격을 담합할 이유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메모리 3사를 압박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D램 시장의 경우 메모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이 95% 이상일 정도로 공고한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데다, 이들 3사의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의 비중)이 50%를 넘어서 중국의 PC·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미국 법무부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마이크론·인피니온 등에 1조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을 때에도, HP 등 미국 PC 제조업체들은 죽을 쑤는데 반도체 기업들이 너무 많은 이익을 취한다는 게 빌미가 됐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당국이 과징금 부과에 이어 특정 제품에 대한 판매 중단까지 내릴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들에도 상당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는 중국 당국이 어느 쪽으로 튈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것도 미래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고 말했다.

☞고정 거래가(contract price)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화웨이와 애플 등 대형 거래처에 반도체를 판매할 때 기준이 되는 가격. 현물 거래가는 전자상가나 중소 제조업체들이 소량을 주문할 때 기준이 되는 가격으로 거래 상황에 따라 가격이 매일 바뀐다. 현물 거래 가격이 고정 거래가의 선행 지표 역할을 한다.





강동철 기자(charle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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