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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남양 갑질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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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5년 남양유업 대리점연합회와 전국편의점가맹점사업자단체협의회 소속 회원들이 불공정행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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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이 격분해 불매운동을 벌여도, 피해를 당한 대리점주가 자살을 시도해도 대기업은 변하지 않는다. 재고를 대리점에 떠넘기는 ‘밀어내기’와 직원의 폭언으로 공분을 샀던 남양유업의 경우 또다시 갑질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남양유업은 판촉 인력의 임금을 대리점주에게 떠넘기고, 대리점 수입인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깎는 등 횡포를 부린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수수료 삭감 논란에 대해 남양유업은 ‘사전에 협의된 사안’이라고 주장했지만 <주간경향> 취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남양유업의 갑질 횡포에 대해 직권조사에 나서자 대리점주에게 탄원서 작성을 강요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남양, 판촉직원 불법파견

경기도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ㄱ씨는 남양유업 제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판촉원이다. 일명 ‘1+1 행사’를 비롯해 각종 할인·시음 행사를 통해 매출을 올리는 것이 ㄱ씨의 일이다. 2016년부터 한 곳에서 남양 제품을 팔고 있는 ㄱ씨의 소속은 남양유업이 아니다. ㄱ씨는 마트 인근 남양유업 지역대리점 직원이다. 근로계약을 대리점과 맺었고 급여도 대리점주 계좌를 통해 받는다. 4대보험과 퇴직금도 ㄱ씨를 고용한 대리점주가 부담한다. 남양유업에서 판촉원 임금의 일부를 대리점에 지원한다지만 전체 임금의 60%는 대리점주 몫이다.

하지만 ㄱ씨는 대리점 외에도 남양유업 본사의 업무지시를 받는다. 행사 상품이나 새로 나온 제품의 홍보전단지 부착과 같은 소소한 업무부터 제품 진열과 행사 진행도 남양 본사의 지시에 따른다. 업무보고도 수시로 이뤄진다. 문자나 카톡을 통해 사진을 찍어 남양 본사 직원에게 보내는 방식이다. 지시대로 작업이 이뤄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요컨대 남양 본사와 대리점 두 곳에서 ㄱ씨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ㄱ씨는 “남양 본사에서 ‘물건 들어갔으니 물건 깔아라. 다 깔고 잘 깔렸는지 사진 찍어 보내라’는 것은 일상적으로 내려오는 지시”라며 “주로 전화로 업무지시를 하고 문자로도 일을 시킨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ㄱ씨와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남양유업이 하도급 관계인 대리점 소속의 ㄱ씨에게 일을 시키는 행위는 불법파견에 해당될 소지가 크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장석우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지시 내지는 지휘·감독 행위는 가장 큰 불법파견 요소”라며 “판촉직원에게 잦은 빈도로 정기적인 업무지시를 한 남양의 경우 불법파견 소지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현재 남양유업의 판촉 인력은 업무 성격에 따라 방판·시판·진열로 분류된다. 모두 ‘판촉’ 인력으로 묶여 있지만 고용 형태는 다르다. 방판과 시판 판촉 인력 290명은 남양유업 소속이다. 무기계약 형식으로 남양유업이 직접 고용했기 때문에 정식 ‘판촉사원’으로 나뉜다. 반면 진열 판촉 인력은 개별 대리점 소속이다. 구인과 채용, 퇴직 모든 과정이 대리점주 책임하에 진행된다. 남양유업은 이들을 ‘판촉사원’ 대신 ‘판촉원’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남양유업에서 근로지시를 받지만 처우나 급여는 열악하다. 마트 영업시간에 맞춰 야간에도 일하지만 연장근로수당과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은 따로 받지 못한다. 근로계약상으로는 대리점주가 고용한 1인 노동자라 처우개선을 요구할 입장도 못된다. 남양유업은 불법파견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진열 판촉원에 관한 업무지시 및 관리내용은 해당 대리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지시하지 않고 있다”며 “본사 직원은 업무지시 권한도 없고 지시를 한다 해도 판촉원들이 따라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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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으로 대리점 수수료 삭감

남양유업은 대리점의 실제 수익과 연결되는 수수료율을 대리점 몰래 일방적으로 삭감하기도 했다. 남양유업은 2013년 이른바 ‘남양 갑질 사태’가 벌어지자 “상생하겠다”며 수수료율을 12.5%에서 15%로 올렸다. 대리점이 100원의 물건을 팔면 15원은 수수료로 남기는 구조다.

남양유업은 그러나 2015년 연말쯤 수수료율을 다시 13%로 낮추기로 내부적으로 방침을 정했다. 불매운동 등으로 경영이 악화됐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2016년 1월에는 일괄적으로 수수료율을 하향 조정했다. 대부분의 대리점들은 수수료 삭감 사실조차 몰랐던 일방 조치였다. 서울지역 대리점주 ㄴ씨는 “남양 직원도, 대리점협의회도 해당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언론에서 수수료 문제를 제기하자 남양 측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수수료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아니라 대리점과 사전 협의하고 공지한 사안’이며 ‘어떤 불공정행위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주간경향>이 남양유업에서 사전 협의 대상으로 지목한 ‘남양유업 전국대리점협의회’(이하 대리점협의회)와 다수의 대리점을 통해 확인한 결과 남양 측의 해명은 사실과 달랐다. 남양유업 전국대리점협의회 관계자는 “나를 포함해 다른 대리점주, 대리점협의회에서 수수료율과 관련한 어떠한 확인서도 쓰거나 제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남양이 주장하는 ‘사전 협의’도 정식 절차를 밟았다고 보기 어렵다. 남양유업은 2015년 12월 열린 상생협의회 자리에서 수수료율 인하 문제를 처음 거론했다. 당시 협의회에는 남양 본사 임원 7명과 대리점협의회 관계자 7명이 참석했다. 당시 협의회에 참석했던 한 대리점협의회 관계자는 “당시 남양의 요구는 당초 상생협의회 정식 안건이 아닌 ‘돌발 제안’이었다”며 “모든 과정이 구두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회의록은 물론 어떤 공식적인 기록도 남기지 않았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당시 일단은 응하겠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전국의 남양 대리점주들의 의사를 반영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양유업이 협의회가 끝나자마자 즉각 수수료율을 삭감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대리점주들은 남양유업에 수수료율 원상복귀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냈다. 공정위도 불공정행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올 7월부터 직권조사에 나섰다. 그러자 남양 측은 대리점을 상대로 자신들을 옹호해줄 탄원서 작성을 요구했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탄원서에는 ‘문제가 생기면 대리점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 현명한 판단을 해달라’는 남양 측의 주문이 담겼다.

탄원서 서명은 대리점협의회 관계자들이 일반 대리점주에게 서명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서명을 거부한 대리점들은 남양 직원이 직접 나서서 서명을 받았다. 한 대리점협의회 관계자는 “당시 서명을 받으러 다니던 남양 직원이 ‘서명 안하면 물건을 빼려고 갔더니 순순히 서명하더라’고 얘기하는 걸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그만큼 탄원서를 요구하는 남양의 태도가 강압적이었다는 뜻이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과거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2015년 ‘대리점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대리점이 대리점 본사와 대등한 지위에서 협상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한 규정은 빠졌다”며 “현장에서 실질적인 개선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대리점 사업자단체 결성권 등에 관한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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