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2008, 2010년에 이어 그제 치러진 수능도 불수능 대열에 합류했다. 국어·수학·영어 세 과목 모두가 어려웠다고 한다. 특히 동·서양의 우주론과 만유인력의 법칙, 질점(質點) 등을 버무려 낸 국어 31번이 '킬러(killer) 문제'였다. 주변에 '질점' 개념을 아는 이가 별로 없었다. 백과사전에는 '물체의 질량이 총집결한 것으로 간주되는 점'이라는데 여전히 아리송했다. 작년 수능 국어에서도 거시경제 전반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환율 오버슈팅' 문제가 나와 수험생들을 당황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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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문항을 묻는 수능 국어 문제지는 16쪽이다. 5분 안에 한쪽을 풀어야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지문을 읽기에도 바쁜 시간이다. 과거 수능 국어 문제를 풀어봤다는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문제를 배배 꼬아놓았다. 분노가 치민다"고 했었다. 그러나 현행 입시제도에서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뽑으려면 변별력이 높은 '킬러 문제' 출제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어렵기로 둘째 가라면 서럽다는 게 일본 도쿄대 입시다. 본고사가 있던 1980년대 이전 서울대 준비생 상당수가 도쿄대 기출 문제를 구해 공부했지만 "너무 어렵다"며 두 손 드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도쿄대 입시는 지금도 거의 전 문항이 '킬러' 수준이라고 한다.
▶올해 프랑스 바칼로레아에선 '모든 진리는 결정적인가' '정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불의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한가' 같은 문제가 출제됐다. 독일 대학 시험에선 시와 소설 등에서 제시문을 발췌해 '분석하고 당신의 생각을 써라'는 주관식 문제를 출제한다. 그런데 우리는 교사가 교실에서 지문을 읽어가며 일일이 해석해주고, 학생들은 고사장에서 정답 찍기를 한다. AI 혁명 시대에 갖춰야 할 창의성 키우기 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다. 이래서야 우리 젊은이들이 나중에 다른 나라 인재들과 겨룰 수 있겠는지 걱정이다.
[박은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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