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4 (화)

[Science] 시험관 치킨·식물성 햄버거…푸드테크, 식탁을 바꾼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육즙이 없긴 한데, 고기 같네요."

2013년 실험실에서 만든 소고기 패티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암소 어깨에서 추출한 세포로 만든 이 신개념 버거를 맛본 음식 평론가 한니 러츨러는 "부스러질 줄 알았는데 잘 엉겨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간도 안 돼 있고 기름기도 없지만 제법 고기의 맛과 질감을 비슷하게 흉내낸 미래 식량의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의 혈관 생리학자인 마크 포스트 교수는 이 버거를 개발하고는 '청정 고기'라 이름 붙였다. 인류 역사상 축산 농가가 아닌 실험실 배양기에서 탄생한 1호 햄버거였다. 2년여의 개발 기간과 수백 개의 세포 배양 접시, 32만5000달러의 재원을 쏟아부은 이 혁신적인 식품에 시장은 흥분했다.

배양육을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소, 돼지, 닭 등 살아 있는 동물의 조직을 생체부검을 통해 확보한 뒤 줄기세포를 추출한다. 그런 다음 세포에 혈청을 넣고 배양해 근육조직을 만들고, 이 조직을 지지대에 세워 전기자극을 준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운동시켜 근육을 강화시키고 단백질을 키우는 것이다. 말 그대로 '벌크 업(bulk up)'이다. 그런 뒤 분쇄기로 갈아 작은 근육 조각으로 쪼개고 비타민, 지방, 맛, 철분 등을 첨가한 다음 너깃이나 버거 패티 같은 형태로 만들면 완성이다.

■ 진짜 고기 대체하는 미래식량

'청정 고기'로 불리는 이 인공 고기는 대체 왜 필요한 걸까. 지금까지 우리가 먹은 고기는 '깨끗하지 않다'는 것일까. 적어도 '기후변화'의 관점에서는 그렇다는 게 이 같은 식량 혁명을 선도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최근 서울 잠실에서 열린 '2018 혁신과 지속가능성 콘퍼런스'에서 뉴질랜드 국영 농축산기업 파머(Pamu)의 스티븐 카든 대표는 "온실가스 배출의 15%는 가축을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며 "인류가 과거 1만년 동안 식량을 재배할 수 있었던 것은 안정적인 기후 덕분인데 앞으로 기후가 예측불가능해질 경우 농축산업도 어려워진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과학계에서는 육류 소비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돼 왔다. 지난 7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식량의 미래'라는 이름의 리뷰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이를 발표한 영국 옥스퍼드대 식품영양학, 동물학, 공중보건학, 기후변화학, 종양학, 물리학 연구진은 "인구가 늘고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전 세계 1인당 평균 육류 소비량과 총량이 매년 증가하고 있고 21세기 중반까지 축산물 수요가 62~144% 급증할 것"이라며 "이런 육류 소비는 대장암이나 심혈관 질환 등 만성질환 위험을 높일 뿐만 아니라 토지, 용수 등 자원을 잡아먹고 환경오염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1세기 중반 무렵이면 닭고기 소비는 2배 뛰고, 소고기와 돼지고기 소비는 각각 69%, 42% 늘어나 육류 전체 생산이 76%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서구 선진국에서 내놓은 기존 연구들을 종합 분석한 결과, 고기를 많이 섭취한 사람들이 덜 섭취한 사람들보다 당뇨, 심장병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동물성 식품은 식물성 식품보다 에너지 단위당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연구진은 "육류 생산으로 인해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아산화질소, 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실가스는 인간 활동으로 인해 배출되는 총량의 최대 15%을 차지한다"며 "그 어떤 인간의 활동보다도 더 많은 담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물 공급이 충분치 않은 지역에서는 물 수급난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남미 열대우림에서 전환된 토지의 약 71%가 가축 목초지로, 14%가 사료 경작지로 쓰였다"며 "이처럼 축산업은 산림을 황폐화시켜 생물종 다양성까지도 위협한다"고 덧붙였다.

대체 육류에 대한 관심 역시 이런 환경 보호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2011년 옥스퍼드대와 암스테르담대 공동연구진 발표에 따르면 인공 고기 생산은 기존 방식에 비해 96%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에너지 소모도 45%나 줄일 수 있으며, 필요한 토지의 99%, 축산용수도 96%나 덜 쓸 수 있다. 대체 육류는 크게 식물성 고기와 배양육으로 나뉜다. 식물성 육류는 식물 세포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 인조 고기고, 배양육은 살아 있는 동물의 줄기세포를 체외에서 채취해 배양한 것이다.

배양육 시장의 문을 본격적으로 연 것은 2015년 우마 발레티라는 한 심장 전문의가 설립한 스타트업 '멤피스 미트(Memphis Meats)'였다. 이 전문의는 줄기세포 생물 학자, 조직 기술자와 의기투합해 닭, 오리 등 가금류 중심 배양육 시장에 뛰어들었고, 실제 동물의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로 근육과 살코기를 배양했다.

멤피스 미트의 데이비드 케이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콘퍼런스에서 "우리가 만든 배양육은 농업 분야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혁신적으로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고, 일반 축산업에 비해 토지와 물의 사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어 환경에 부담이 작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어떤 세포가 재생이 잘되는지, 맛이나 영양이 가장 좋은 세포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연구했다"며 "동물 몸 안에서 세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몸 밖에서) 가축에 풀을 먹이듯 아미노산, 당분을 세포에 바로 줘서 키운다"고 설명했다.

매일경제

살아 있는 동물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만든 인공고기. [사진 제공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배양육은 생산하는 데 도축이 필요 없고 박테리아 감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항생제도 안 쓴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멤피스 미트는 2016년 초반 미트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뒤 본격적으로 유명 셰프들과 레시피를 연구했다. 이후 멤피스 미트와 같은 20여 개의 벤처가 새롭게 탄생하는 등 실리콘밸리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멤피스 미트는 배양접시에서 배양하는 인공 고기 생산을 식품 공장으로 옮겨 대형화하는 시도에 나섰다.

이런 대체육은 현재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인도의 대체육 스타트업 '굿도트'의 스테퍼니 다운스 대표는 "인도에서는 양과 닭을 많이 먹는데 양고기 1㎏을 만들기 위해 물을 1만ℓ 써야 하고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며 "닭고기 역시 1㎏을 얻어내기 위해 9㎏의 곡물 사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식물성 고기로 이런 자원 낭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세포 배양을 통해 해산물을 식탁에 올리려는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카이 링 '시오크 밋' 창업자는 "생선에도 살코기가 있기 때문에 세포를 배양해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며 "가급적 자연과 유사한 환경에서 유사한 맛을 구현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간 1조달러에 육박하는 육류 시장에서 전통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대체할 미래 식량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기술적, 사회적 장벽이 높은 게 사실이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크립톤의 김선경 이사는 "우리나라는 아직 당장 눈앞의 미세먼지가 문제지 육류 소비가 우리를 괴롭히지는 않아 대체육의 필요성이 와닿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 육즙 터지고 풍미도 탁월…인공 고기의 진화

배양육 대표주자가 멤피스 미트라면 식물성 고기 대표주자는 2011년 스탠퍼드대 생화학과 교수 패트릭 브라운이 창업한 '임파서블 푸드'다. 이 업체는 스타 셰프 데이비드 장과 손잡고 감자 단백질, 밀 단백질, 코코넛 오일, 지방과 헴(Heme) 등 식물성 재료만으로 고기 패티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한 '임파서블 버거(Impossible Burger)'를 출시했다. 임파서블 버거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인체에 무해하다는 안전성 승인을 받았다.

조던 사도스키 임파서블 푸드 이사는 "우리는 축산업에서 고기를 얻는 방식이 너무 파괴적이라고 생각했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며 "임파서블 버거는 기존 고기에 비해 물은 87% 덜 사용하고, 온실가스도 95% 덜 배출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회사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에게서수백억 원대 투자를 유치하고 구글에서 3300억여 원에 인수 제안을 받은 데는 이 같은 친환경적인 면 외에 '맛'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전에도 콩버거나 베지버거 등 식물성 버거가 개발됐지만 소고기 맛과 차이가 컸다. 그런데 임파서블 푸드는 헴 분자에서 고기 맛의 해답을 찾아 소고기 맛을 구현했다. 헴 분자는 우리 몸에 산소를 공급하고 피가 붉은색을 띠도록 만드는 헤모글로빈을 구성하는 분자로 콩에서도 추출할 수 있다.

임파서블 푸드는 효모 배양 방법으로 헴 분자를 대량 생산했고 2년 전 고기처럼 붉고 육즙이 흐르는 식물성 햄버거 패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사도스키 이사는 "헴은 생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것이 고기 맛을 결정한다"며 "헴은 요리를 할 때 변형되는데 헴 때문에 생고기와 익힌 고기의 맛이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윤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