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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배문규의 에코와치]필리핀의 ‘한국산’ 쓰레기 5100톤, 중국 플라스틱 수입 금지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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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필리핀 환경단체 ‘에코웨이스트 콜리션’ 활동가들이 지난 15일 마닐라 한국 대사관 앞에서 필리핀으로 수출된 ‘한국산 쓰레기’를 되가져가라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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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도로 가져가라.” “필리핀은 부유한 나라의 쓰레기장이 아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의 한국대사관 앞에서 현지 환경운동가들이 한국을 향해 자국에 ‘수출’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가져가라고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필리핀 관세청은 지난 11일 민다나오 항구의 화물 야적장에서 쓰레기로 가득찬 컨테이너를 확인했다. 발송지는 한국이고, 지난 7월 민다나오에 도착했다. 5100t이나 되는 화물은 ‘합성 플라스틱 조각’으로 신고됐지만 내용물에는 배터리, 전구, 빨대, 전자제품, 기저귀 같은 쓰레기가 섞여 있었다.

현지 환경단체 에코웨이스트콜리션은 “당신네 나라에서 처리하기 힘든 쓰레기를 필리핀처럼 소득이 낮은 나라에 ‘재활용품’으로 위장해 보내는 데 대해 우려한다”는 항의서한을 한국대사관에 전달했다. 지난해 세부에서도 한국발 불법 쓰레기 5000t이 발견돼 반송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국제적인 이슈가 돼버렸다.

정부가 사태 파악에 나섰다. 이병화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장은 16일 “외교부에서 연락이 와 환경부와 국세청에서 사안을 살펴보고 있다”면서 “수출 업체의 사기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소각하는 비용이 더 쌀텐데 비싼 뱃삯을 들여 다른 나라로 보낸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라며 “국가적 망신이 될 수 있어 서둘러 수습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량이 워낙 많은데다 처리가 곤란한 물품들이라 필리핀으로 보낸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지난 1월 중국이 플라스틱 등 폐기물 수입을 중단한 것을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봤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펴낸 ‘전세계 폐플라스틱 수입규제 강화와 영향’ 보고서를 보면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한 뒤 세계의 폐플라스틱이 동남아로 몰리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까지 전 세계 물량의 46%인 500만t 이상을 수입했지만, 올해는 9월까지 6만7000t을 수입하는데 그쳤다.

그 대신 태국·말레이시아·베트남·인도·필리핀·인도네시아 등으로 향하는 부국들의 폐플라스틱이 지난해 1분기 14만8000t에서 올해 같은 기간 54만3000t으로 급증했다. 태국과 베트남 등까지 규제에 나서자 필리핀 쪽으로 가는 쓰레기가 더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수입금지 조치는 한국에도 영향을 줬다. 올봄 재활용품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산업용 수출입에도 변화가 생겼다. 섬유제조 등에 재활용되는 페트병 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자 업체들은 해외에서 폐플라스틱을 사들이고 있다. 올 1~8월 수입한 폐플라스틱은 4043만달러어치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1배다. 특히 미국에서 수입하는 물량이 20배로 뛰었다.

반면 색깔이 들어가 있거나 복합재질로 돼 재활용하기 힘든 플라스틱 폐기물 수출은 줄었다. 폴리에틸렌(PE)이나 폴리프로필렌(PP)을 잘게 쪼갠 펠릿은 지금도 중국으로 수출되지만, 중국이 받지 않는 폐플라스틱은 동남아로 이동하고 있다. 태국으로 가는 한국산 폐플라스틱은 올 1~8월 전년 같은 기간의 29배로 늘었고, 필리핀으로 향하는 분량도 9.8배로 뛰었다. 민다나오의 한국산 쓰레기는 이 과정에서 빚어진 사기사건으로, 중국 조치가 부른 일종의 ‘나비효과’였던 셈이다.

서수정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캠페이너는 “한국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플라스틱을 만든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고, 장현숙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플라스틱을 대체할 친환경 원료와 포장재를 개발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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