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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현장에선] ‘제로페이’에 혁신·공정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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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규제는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수준까지 갔다.”

며칠 전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작심 발언이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기업의 크고 작음을 떠나 허락해주는 것만 하라는 현재의 규제 방식은 ‘기본권의 문제란 걸 아느냐’는 취지다. 일주일 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답했다. “기업 애로에 대해 끝장을 본다는 자세로 임하겠다.” 한쪽은 비극, 다른 쪽은 희극처럼 느껴지는 이 간극은 좁혀질 수 있을까.

세계일보

조현일 산업부 차장


2기 경제팀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란 3대 경제정책 기조에 대해 “한 패키지”라며 변함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좋다. 그런데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정책이 대한민국 수도에서 내달 17일 시행된다.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는 ‘제로페이’ 사업 얘기다. 이른바 ‘○○페이’라는 건 QR(Quick Response) 코드, 바 코드를 활용해 계좌이체를 구현하는 모바일 중심의 간편결제 서비스를 말한다. 카카오페이가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6·13 지방선거가 끝나자 “수수료 제로(0)를 목표로 새로운 결제시스템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후 중기부가 합류하면서 명칭도 ‘서울페이’에서 ‘제로페이’가 됐다. 어쨌든 ‘수수료 0’으로 소상공인 부담을 덜겠다는 거다. 취지는 좋은데 방법이 엉터리다.

간편결제에서 돈은 이렇게 흐른다. 소비자→결제사업자(이체요청)→은행(처리통보)→결제사업자→판매자. 가게는 결제사업자에게 결제 수수료를, 결제사업자는 은행에 계좌이체 수수료를 낸다. 서울시·중기부는 “이들 수수료를 받지 말자”고 은행 및 결제 사업자와 합의했다. 11개 시중은행이 포기할 수수료 수입은 연 760억원이라고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영속성에 한계가 있다”고 에둘러 말했는데, “사기에 가깝다”(이경전 경희대 교수·경영학)는 말이 더 와닿는다.

가맹점 계약·운영을 맡을 ‘비영리법인’도 놀랍다. 세계일보가 확인한 ‘중기부 SPC 운영계획’에 따르면 시스템 구축비는 50억원 이상, 플랫폼 운영비는 5년간 600억원이 잡혔다. 연간 125억원이다. 이 중 인건비 25억원은 ‘결제원 25명×1억원(평균 보수)’이다. 결제원 업무가 뭔지는 알고 싶지도 않다. 궁금한 건 박원순 서울시장이 왜 이런 사업을 밀어붙이는지다.

제로페이에서 우리는 어떤 혁신, 어떤 공정을 기대할 수 있는가. 박 시장은 “민간과의 협력 아래 이뤄지는 사회적 협치의 자랑스러운 사례”라고 했다. 정부가 특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업은 사업 참여와 수익 포기로 협력하는 게 이 정부가 주장하는 혁신성장, 공정경제인가. 미국 정부가 공공 클라우드 같은 걸 만들어 구글, 아마존 같은 기업을 끌어들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러니 박용만 회장이 기본권 얘기를 하는 것 아닌가. 예전엔 사업자만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소유했다. 지금은 모든 소비자 손 안에 스마트폰과 4G망이 있다(곧 5G).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 ‘소비자-사업자’ 결제 직거래는 상상 밖 개념인가. 우체국이 혁신기업과 손잡고 두 달 전 그런 서비스를 오픈한 건 아는가. 내달 시행 전에 ‘포스트페이’, ‘유비페이’부터 검색해보길 바란다.

조현일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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