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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매경춘추] 반말과 존댓말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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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최근 장강명 작가가 출연한 한 동영상에서 장 작가는 반말은 쉽게 욕설이 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개인의 존엄을 훼손하고 모멸감을 안긴다고 하면서 '한쪽은 반말, 한쪽은 존댓말 쓰는 상황을 몰아내자'고 주장한다. 이에 적극 동의한다. 필자는 장 작가 말처럼 반말은 욕설이 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는 혐오 표현(hate speech)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존비어 체계가 있어 반말과 존댓말이 구분되어 쓰인다. 반말은 보통 상하구조가 매우 분명하여 명령이 하달될 필요가 있는 조직 또는 가족이나 친구 사이 등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만 쓰인다. 그런데 나이가 많다고 해서,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돈이 많다고 해서 또는 관계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때 열세에 있는 사람은 상황적인 이유로 단지 참고 있을 뿐이며 그러한 행동은 권력이 일방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비민주적인 처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반말을 쓰는 행위를 친밀감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반말이 인간을 비하하는 욕설로 이어지고 욕설은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는 혐오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원적인 사회에 진입한 지 오래되었다. 구호로만 다문화를 외치기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에 와 있다.

전술한 동영상에서 장 작가는 학생과 선생 사이에도 반말을 쓰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만 이 또한 변해야 하는데 적어도 공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강의실에서는 반말을 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반말은 궁극적으로 우리 언론이 지향하는 '바른 말 고운 말' 정책에서도 벗어나 있다. 정녕 서로 존댓말을 쓰면서도 친해질 수는 없는가? 공적 공간에서 한쪽은 반말, 한쪽은 존댓말 쓰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politically incorrect)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재진 한국언론학회장·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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