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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직설]별미뿐만이 아닌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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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입동(入冬)이 벌써 지나갔다. 소설(小雪)과 대설(大雪)도 휙 지나갈 테지. 전통사회의 일상 감각에서 입동은 바야흐로 겨울이 바라보이는 때다. 입동이란 ‘겨울에 들어서다’가 아니라 ‘이제 곧[立] 겨울[冬]이다’ 하는 뜻이다. 본격적인 겨울은 소설 즈음에 시작된다고 느꼈고, 대설 즈음에 한겨울을 실감했다. 이윽고 동지(冬至)가 되면 한 해가 이울었다.

경향신문

눈이 펑펑 내려 쌓이지 않을지라도 찬바람과 언 땅에 겨울이 먼저 깃들었다. 정학유(1786~1855)의 <농가월령가> ‘11월령’의 첫 구는 대설 즈음 당시 사람들이 느낀 계절 감각을 여실히 드러낸다. “십일월은 중동[仲冬, 한겨울]이라 대설동지(大雪冬至) 절기로다/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이때는 농민과 서민이 한 해의 결산을 하는 때이기도 했다. 춘궁기에 관청에서 꾼 곡식의 상환, 세금과 소작료 내기, 그리고 일꾼에게 줄 품삯과 빚에 대한 결제는 음력 11월에 반드시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아등바등 한 해 내내 지어 갈무리한 곡식이 어느새 야금야금 이 구멍 저 구멍으로 빠져나갔다. 고물가-저임금 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월급은 월급날을 스쳐지날 뿐’이라고 자조하지만 <농가월령가>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엄부렁하던 것이 남저지 바이없다.” “갈무리한 곡식이 처음에는 많아 보였지만 여기저기 갚다 보니 남은 것은 거의 없다”라는 뜻이다. 그래도 “콩나물 우거지로 조반석죽(朝飯夕粥) 다행이다”라고 읊을 여유는 있었다.

정학유와 동시대를 산 김형수(金逈洙)는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서 음력 11월을 이렇게 읊었다. “누가 알랴 낟알마다 피땀 어린 곡식(誰知粒粒辛苦穀)/꿀벌처럼 모았지만 다른 사람한테나 돌아가지(如蜂釀蜜還屬彼).” 그래도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는 춘궁기는 아니었고, 계절이 강제로 마련한 농한기에 군것질거리는 더욱 간절히 생각났다. “몸은 비록 한가해도 입은 궁금하네(身是雖閒口是累)”라는 한마디에도 그 시절 옛사람들의 또 다른 생활 감각이 드러난다.

이때 김치는 궁금한 입을 달래는 한 가지 호사, 다른 별미로 건너갈 징검다리였다. 홍석모(1781∼1857)의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메밀 사리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썰어 얹은 냉면은 이때가 제철이었다. 서울에서는 이때 새우젓국을 안치고, 무, 배추, 마늘, 생강, 고추, 청각, 전복, 소라, 굴, 조기 등 다양한 재료를 더해 김장을 했다. 조그만 무로는 동치미를 담갔다. 대설 전 음력 10월의 별미 만두로 멥쌀피만두, 꿩고기만두, 김치만두[菹菜饅頭]가 있었다. 홍석모는 “그 가운데 김치만두가 가장 무던한 이 계절의 음식”이라고 했다. 제주산 감귤도 본격적으로 유통되었다. 청어, 전복, 대구도 때를 만났다. 두부도 돼지고기도 찬바람 덕분에 더욱 맛났다. 19세기 한글 조리서 <주식방문>에 실린 ‘저육양방(猪肉良方)’을 보자. 생돼지고기를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기름에 볶다가 젓국에 끓인다. 여기다 두부를 썰어 넣고, 두부가 부풀도록 한소끔 끓여 완성한다. 돼지고기의 풍미가 젓국을 만나 강화되고, 표면이 터진 두부가 은근한 구수함을 더한다. 별소리 없어도 여름보다는 겨울 별미로 마침맞다.

오로지 먹고 노는 계절만도 아니다. <농가십이월속시>는 이때에 “어린이는 글 읽고 아이는 말 배운다(長兒讀書幼學語)”라고 했다. 또한 서민대중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베끼고 돌려 읽는 계절, 농민이 농업 기술서를 읽는 계절이라고도 했다. 동시대의 또 다른 시 <농가월령가>는 이 시기가 해가 짧아 덧없고, 밤이 길어 지루한 때라고 했다. 그런 가운데 다음해를 준비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콩을 잘 익도록 삶고, 다시 잘 찧고 띄워 두면 새봄에 다시 한 해의 반양식인 장을 마련할 수 있다. 빚이고 세금이고 다 가려 마음 홀가분하고 조용한 집안에서 언뜻 행복이 빛났다.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아이 노는 소리/여러 소리 지껄이니 실가의 재미로다.”

먹는 것만으로 다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뛰어놀며, 재잘대며 자랐다. 향촌의 서민도 이 계절을 기어코 스스로 독서의 계절로 삼았다. 겨울이 그렇게 깊어갔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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