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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삼바’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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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편집장의 편지

한겨레21

2017년 2월13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금융위원회 출입기자실. 자리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다. 전자우편함을 여니 받은 편지 한 통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가 되겠다는 판단, 아니 감이 확 왔다. 그런데 외계 용어가 반이다. 분식, 합병 비율, 파생상품 부채, 감리, 회계 기준…. 기사 발제를 하기 위해서라도, 발제 뒤 경제부 데스크가 물어올 때 대답하기 위해서라도 뭔 말인지 정확히 알아야 했다. 점심 먹으러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날 때도 전화통을 붙잡고 걸었다. 묻고 또 묻고 해서 써낸 기사는 다음날치 <한겨레> 신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뜯어보니, 수상한 회계?’란 제목으로 실렸다. 기사는 참여연대가 낸 A4용지 4쪽짜리 논평이 출처였다. 첨부 자료 2개가 붙은 이 논평을 쓴 사람 가운데 한 명은 3년 전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를 탐사보도하면서 알게 된 김경율 회계사였다. 그날 그를 무지 괴롭혔다. 논평은 지금 다시 봐도 유효하다. 제기된 의혹은 진실로 드러났다. 지금은 꽤 많은 이가 어렴풋이나마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정도로 알게 된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의 분식회계가 저절로 드러났을 리 없다. 진실의 물꼬를 튼 주인공은 홍순탁 회계사다. 그는 2016년 12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공개된 국민연금공단의 ‘제일모직/삼성물산 적정가치 산출보고서’를 살펴보다 제일모직의 기업가치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 삼바의 가치가 과대평가됐다는 의문이 들었다.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일가가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의 가치가 실제보다 커지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할 때 이 부회장 쪽에 유리한 셈법이 작동한다. 홍 회계사는 곧바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에 있던 김경율·이종성 회계사와 함께 금융감독원에 공개 질의서를 보냈지만, 이듬해까지 세상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지난해 논평이 나온 지 사흘 뒤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삼성 저격수로 이름을 떨쳐온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참여연대를 지원사격 했다. 그 뒤 금융감독원은 기업이 회계 처리 규정을 위반했는지 따지는 감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올해 5월에야 삼바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후 이슈 확산 과정에서, 보이지 않게 참여연대 회계사들과 심 의원실의 류성재 비서관 등의 노력이 컸다. 그리고 7월, 이번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이 전면에 나섰다. 박 의원의 뒤에는 그동안 삼성의 온갖 편법과 불법을 파헤쳐온 김성영 보좌관이 있었다. 그는 삼바의 가치를 평가한 회계법인들이 어이없게도 증권사 보고서를 짜깁기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1월엔 삼바의 고의 분식회계가 의혹이 아닌 사실임을 보여주는 삼성의 내부 문건을 공개했다.

낯 뜨거운 얘기이나, ‘범죄 혐의’를 스스로 입증하는 이 내부 문건의 폭로엔 <한겨레> 이완 기자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그에 앞서 지난 5월부터 두 달여 동안 김경락 기자는 집요하게 삼바의 분식회계를 다뤘다. 외곽에선 전성인 홍익대 교수의 역할 또한 컸다. 나열된 이름들은 삼바의 분식회계 사건의 진실을 드러낸 주인공과 조연들이다. 여기엔 삼성 내부 문건을 제공한 ‘익명의 제보자’도 있다. 이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의혹에서 사실로 드러나기까지 2년을 끌어온 이 사건은 한마디로, 이재용 부회장이 지배력을 쥔 계열사를 중심으로 삼성 그룹의 지배구조를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주식 가치 산정과 이를 통한 합병을 꾀하다 빚어진 무리수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니 다시 본질은 이 부회장의 ‘편법 또는 불법’(재판과 수사가 진행 및 예정) 경영권 승계로 요약된다. 이는 참여연대의 첫 논평 때부터 제기된 의혹이었다. 이 때문에 삼바의 분식회계는 이 부회장이 싼값에 주식을 넘겨받아 경영권을 얻도록 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성격은 다르나 본질은 다르지 않다. 삼바는 ‘에버랜드의 시즌2’다.

삼바의 분식회계는 벌써 ‘성공한 쿠데타’란 말이 나돈다. 법적 처벌이나 행정적 처분은 받을지 모르나, 합병을 원인 무효로 할 수 없어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끊임없는 편법과 탈법의 진화와 유혹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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