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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김대리, 52시간 지켜" 위치 추적하는 회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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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 설치해 영업직 사원 초과근무 관리… 감시인가 감독인가

위생관리업체 세스코는 지난달 말부터 직원 3000명의 위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업무용 휴대전화와 업무용 차량의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를 이용한다. 회사 측은 "일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직원들이 초과 근무하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취지"라고 했다. 직원들로부터 동의도 받았다.

외근 직원들은 고객의 집이나 사무실을 방문한 다음 휴대전화의 업무용 앱(응용프로그램)을 켜고 '시작' 버튼을 누른다. 상담이나 소독을 마치고 나온 후 '종료' 버튼을 눌러야 한다.

한 직원은 "이동할 때마다 매번 이런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족쇄를 차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세스코 노조는 "직원 감시용"이라고 비판했다. "위치 정보 수집에 동의하지 않으면 차량 배치 등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며 회사가 직원들에게 동의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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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의 위치 정보를 수집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주 52시간제를 도입하고 외근 직원이 많은 기업체부터 다른 기업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지 않으면 사업주가 처벌받는 만큼 직원 근태(勤怠) 관리를 엄격하게 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운다.

중소 제약회사의 영업직 이모(38)씨는 업무용 태블릿PC에 깔린 앱을 통해 거래처에 방문했는지 실시간으로 보고한다. 이씨 상사와 인사팀 관계자는 이씨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일을 하려면 업무용 앱을 켜야 하고, 그때마다 위치 정보가 전송되는 식이다. 위치 정보를 이용해 근로시간 관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한 업체 관계자는 "올 들어 기업체들의 문의가 예년보다 3~4배 이상 늘었다"며 "직원들의 실시간 위치 정보뿐만 아니라 과거 일정 기간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데이터베이스 기능을 추가해달라고 요구하는 기업들도 있다"고 했다.

위치 정보를 수집하려는 기업이 늘면서 노사(勞使)가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다. 기업들은 주 52시간 준수뿐만 아니라 "회사가 지급한 휴대전화·차량 등이 도난됐을 경우 위치 정보를 이용해 찾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상당수 근로자는 "지나친 노동 감시이자 사생활 침해"라며 거부감을 보인다.

경기도의 서비스 교육 업체는 주 52시간 도입을 앞두고 직원들 업무용 휴대전화에 실시간 위치 추적이 가능한 앱을 설치하려다 내부 반발에 부딪혀 포기했다. 이 회사 인사 관리자 선모(43)씨는 "직원 감시라는 항의가 빗발쳐 휴대전화 대신 업무용 차량에만 GPS 장치를 부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직원의 동의를 받지 못한 기업이 몰래 직원의 위치를 추적하다 문제가 되기도 한다. 기술 유출 방지 등 보안 문제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동의를 받지 않았다면 불법이다. 한 IT 기업에서 기술 업무를 맡고 있는 박모 차장은 직장 상사가 자신의 동선(動線)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수상하게 여겼다. 박씨는 지난달 한 GPS 장비 탐지 업체에 개인 차량에 대한 검사를 의뢰했다. 수색 결과 뒷좌석 문에서 GPS 장치가 발견됐다.

당사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위치 정보를 수집·이용하거나 제공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위치 정보법 위반 사범은 2015년 53명에서 2017년 206명으로 2년 사이 네 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노총 이상혁 노무사는 "현행법상 사무실 내부에 방범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노사 협의 사항이지만 휴대전화나 태블릿PC 등을 이용해 노동자의 위치정보 등을 감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견제 장치가 없다"며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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