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고아라의 This is America] 캘리포니아 데스밸리…그 가혹한 아름다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데스밸리에서 가장 기묘한 풍경을 담고있는 재브리스키 포인트. 시간과 바람이 만든 걸작물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데스밸리(Death Valley)는 미국에서 가장 낮고, 뜨겁고, 척박한 곳이다. 그 광대한 황무지에 떨어지는 빗물은 일 년에 고작 50㎜에 불과하고, 여름이 되면 기온이 섭씨 50~60도에 육박한다.

풀 한 포기 자라나기 힘든 가혹한 환경은 세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창조했다. 바다가 마른자리에 피어난 소금꽃, 바람으로 일렁이는 모래사막, 신의 도화지가 된 각양각색의 협곡들까지. '죽음' 이란 단어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계곡, 데스밸리에 다녀왔다.

데스밸리라는 이름의 유래는 골드러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49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전역은 동에서 서쪽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시에라 산맥의 혹독한 겨울을 피해 지름길을 모색했다. 그들은 곧 애머고사 산맥(Amargosa Range)과 패너민트 산맥(Panamint Range) 사이의 거대한 계곡으로 들어섰다. 황량한 대지와 메마른 땅에 남겨진 소금 웅덩이가 전부인 사막 속의 행군은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마차를 부숴 땔감으로 쓰고, 말을 육포로 만들어 먹으며 목숨을 부지했다. 지옥 같은 날들이 지나고 기적적으로 계곡을 탈출했을 때, 무리 중 한 사람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굿바이, 데스밸리(Goodbye, Death Valley)."

캘리포니아에서 네바다주까지 뻗어 있는 데스밸리는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본토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이다. 미 서부 대부분의 땅이 그러하듯, 아주 오래전 이 지역 또한 바다였다. 몇 차례의 지각변동으로 땅이 융기하고 그사이에 물이 갇혀 호수가 형성됐다. 이후에는 이마저도 말라 없어져 거대한 소금 단층만 남았다. 그곳이 바로 '배드워터 분지(Badwater Basin)'다. 배드워터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말 그대로 이곳의 물이 '마실 수 없는 물'이어서다. 타는 듯한 사막 속에서 발견한 오아시스가 짜디짠 소금물일 때 그 참담한 심정을 생각하면 '배드워터'라는 이름이 꽤 점잖게 느껴진다.

데스밸리의 배드워터는 북미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기도 하다. 해수면보다 무려 85.5m가 낮다. 지대가 워낙 낮다 보니 비가 내리는 날에는 소금 평야 깊숙한 곳에 호수가 형성되기도 한다. 거울처럼 투명한 소금 호수 속에 담긴 데스밸리의 모습은 천국처럼 찬란하다.

데스밸리의 매스키트 플랫 샌드 듄스(Mesquite Flat Sand Dunes)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구의 풍광을 담고 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능선을 느릿느릿 오른다. 맘에 드는 언덕 하나를 골라 앉아 사방을 둘러본다. 주변은 온통 사막이다. 들리는 것은 오직 휘휘 대는 바람 소리, 보이는 것은 모래에 새겨진 바람의 흔적과 이름 모를 발자국뿐이다.

사막에는 오래된 길이 없다. 앞선 발자국은 바람이 어김없이 앗아가므로. 사막에 남는 것은 오직 현재의 발자국뿐이다. 그래서 사막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길을 걷는다. 바람을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춤을 추는 사구의 능선처럼 자유롭게 걷는다.

재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는 단연 데스밸리에서 가장 기묘한 풍경을 보유한 곳이다. 그 엄청난 풍광을 만든 것은 역시 시간과 바람이다. 500만 년 전 호수에 퇴적된 침전물이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형성했다. 산등성이에 파인 굵직한 주름 하나하나가 지구의 억겁의 세월이 담긴 나이테인 셈이다.

태양이 뉘엿뉘엿 지며 이 기괴한 도화지에 온갖 색을 덧칠하기 시작한다. 협곡은 곧 보랏빛, 빨간빛, 파란빛, 에메랄드빛 온갖 색으로 물들며 일렁인다. 누가 알았을까. 죽음의 계곡이 이토록 황홀한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지녔을 줄.

[글·사진 = 고아라 여행작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