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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아! 단풍이여, 단풍이여~…설악산 주전(鑄錢)골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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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뉘라서 이 붉음에 모른 척 할 수 있을 것인가.

장독대에 붉은 감잎이 날아와 떨어지자, 그 옛날 우리 누이는 ‘오메, 단풍들것네’(김영랑 시(詩))하면서 깜짝 놀라고 만다. 투박하지만 붉디붉은 감잎 한 장에 담긴 그 계절이 우리의 누이를 놀라게 하고 만 것이다.

그 붉음이 혹여 연정(戀情)은 아니었을까? 잊고 살았던 붉은 마음에 감잎 한 장이 파문을 일으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기야 뉘라서 그 붉음에 모른 척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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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이가 남설악 최고의 단풍이라는 오색(五色) 주전(鑄錢)골의 단풍을 보았더라면 뭐라 했을까? 아마도 놀라 주저앉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감잎 한 장에 놀라는 그 여리고 순수한 마음이니 골골마다에 널브러진 단풍 앞에서는 정신마저 혼미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누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그러했다. 아! 단풍이여~ 단풍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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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몇의 산행을 하는 동안 가을산은 그야말로 단풍의 사태였다. 그 곳이 산이 아닐지라도 발 닿는 곳곳마다에는 가는 계절을 아쉬워하는 단풍들이 제 몸을 살라 축제를 열었고, 그 축제에 초대된 사람들은 느닷없이 찾아온 행운에 저마다 탄성을 터트렸었다. 나 역시 적어도 올해만큼은 눈이 시릴 정도로 단풍을 만끽했노라 자부하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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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설악산을 넘어 이 땅의 최고 단풍이라는 주전골 단풍을 만나러 가면서도 단풍이야 그 단풍이 그 단풍이겠거니 했었다. 여기나 저기나, 오십 보 백 보... 그랬다. 차라리 또 단풍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언가를 말로 풀어야 하는 스스로의 처지를 먼저 생각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끄집어낼 만한 이야기도 없는데, 또 무슨 단풍 타령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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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용소폭포 탐방지원센터 앞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아! 인산인해다. 평일 낮이건만 10월 하순으로 접어드는 주전골은 사람들의 행렬을 끊임없이 받아내고 또 밀어내고 있었다. 오색약수에서 길을 시작한 무리는 용소폭포를 지나 만경대로 향하고, 우리 일행은 용소폭포 탐방센터에서 시작해 내리막으로 오색약수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불과 몇 걸음 떼지 않아, 사람들이 자지러진다. 오메, 이 단풍을 어이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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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본 단풍과는 그 규모나 결이 달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이 단풍을 능멸했더란 말인가. 단풍이야 어디에서건 볼 수도 있는 풍경이겠으나, 설악산이라는 웅장한 골골의 봉우리와 어울리는 모양새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비경이었다.

행렬의 이동은 더디고 또 더뎠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달라지는 비경 앞에서 사람들은 쉽사리 발걸음을 떼어놓지 못한다. 차례를 기다려 비경을 담고, 충분히 찍고, 찍혔을 만도 한데, 그럼에도 그들은 굼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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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은 곳에서 쏟아지는 물소리. 용소폭포다.

용소폭포를 홀린 듯 바라보다 퍼뜩 깨닫는다. 흐르는 물조차도 붉다. 단풍이 계곡물도 물들였더란 말인가. 그래서였을까. 용소폭포의 물줄기가 실로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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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면, 그 옛날 이곳에 살던 한 쌍의 이무기 중 수놈만 용이 되어 승천하고, 암놈은 승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그대로 주저앉아 바위가 되고 폭포가 되었다더니, 아직도 그 울분을 삭히지 못한 암놈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흥겹고, 그래서 또 소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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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이곳 주전골은 워낙 외지고 골이 깊어 도적들이 이곳에서 지금으로 치면 위폐, 즉 가짜 엽전을 만들던 장소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이야 가을 단풍철이면 사람들로 홍수를 이루지만, 옛날에는 도적의 소굴로 안성맞춤이었을 듯도 싶다. 운 나쁘게도 신관사또의 행차를 모르고 쇠망치질을 한 게 그들에게는 불운이라면 불운이었을 것이다. 그 쇠망치질 소리가 그들은 은거지가 드러나는 빌미가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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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수려한 비경을 품고 살았던 그들이 고작 도적질로 연명을 했었다니... 언감생심 시인묵객이 되었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정신조차 혼미해지는 이 황홀한 풍경 아래에서 고작 도적질에 가짜 엽전이나 만들고 있었다니... 그저 애석할 따름이다. 하기야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삶의 전부였을 그들에게 이 풍경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배가 고픈 그들에게는 이 풍경조차도 사치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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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이 엽전 만들던 그날처럼, 주전골에는 눈물 나게 고운 단풍이 서럽도록 붉게 산을 불사르고 있었다.

어느 시인(이상국, <단풍>)은 단풍을 보며 헤어짐의 ‘슬픔으로 몸이 뜨거워진 것’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물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었다. 아마도 그럴지도 모른다. 녹음의 계절이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가을이라니... 그 황망함이야 뉘라서 다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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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년이라는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누군가에게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아름다운 산화(散花)처럼 보인다. 서산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의 노을처럼 제 가는 마지막을 이렇게 붉게 물들이며 떠날 수 있다면, 그마저도 아름다운 퇴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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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우리 늙어 가지 말고 고운 색깔로 물들어가자’던 시인(유지나)의 바람은 어느 누구에게나 유효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늙음이 추함이 되지 않도록, 나름의 빛깔을 품은 채로 은은하게 빛나는 삶은, 어쩌면 살아가는 자의 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이런저런 객담이 다 무슨 소용이랴. 그저 바라보고 느끼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어 보인다. 자! 보시라~ 다만, 눈에 담았던 그 단풍과 풍경을 사진으로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부족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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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계곡, 그리고 고운 빛깔로 수놓은 풍경은 실로 절경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할 표현조차 어렵다. 붉고 노랗게 채색된 계곡물은 흐르다 어느 순간 둥글게 머물러 스스로의 자태에 푹 빠져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앓는다. 선녀들의 목욕탕이었다는 선녀탕이다.

청아한 달밤에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즐긴 곳이라니... 훔쳐보던 떠꺼머리총각은 오죽 했을꼬~ 기어이 날개옷을 훔친 나무꾼의 욕심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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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진 나무데크의 길이 아스라하고 어느 순간엔 단풍 못지않게 차려입은 탐방객들도, 그 길도 어느 틈엔가는 풍경이 된다.

그들도 나도, 떠밀리듯 길 위로 흘러간다. 어느 때엔 아찔한 그 붉음이 아쉬워 발걸음을 붙잡아보려 하지만,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라더니 장강(長江)의 뒷물결에 밀려나는 앞물결처럼 그렇게 밀리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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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렇게 하염없이 밀리어 갈지언정 어찌 이 아찔한 단풍을 놓칠 수야 있겠는가. 숨이 턱턱 막히는 붉음 앞에서 그저 벌어진 입은 좀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쩌자고 너는 이리도 붉었더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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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도종환,<단풍 드는 날>)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고 했었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을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고도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보는 이는 그들의 절정이 감당하기 어려워 멀미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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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의 절정은 아직도 이르지 못했음이라. 나에겐 이만큼 뜨거워지지도, 그래서 붉게 타오를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렇듯 아름다운 풍경 아래에서는 스멀스멀 안에서부터 밀려나오는 그 무엇이 있기는 하다. 누이의 가슴에 확 엉겨 붙었던 그 붉음처럼 말이다. 그래도 아직까진 죽지 않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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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독주암이 아득하다. 원래는 정상부에 한 사람이 겨우 앉을 정도로 좁다 하여 독좌(獨座)암이었다가 현재는 독주암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 뾰족함이 참으로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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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사람들이 간다. 무릉도원의 저편을 향해 나아가기라도 하는 양 모두 다 들떠 있다. 천애의 절벽을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은 그 안목도 놀라운데, 나무들은 절벽을 병풍 삼아 제 살아있음을 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 풍경 앞에서 어찌 들뜨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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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더러 ‘너의 죽음이 국민장이 되는구나’라고 읊었던 시인(박가월,<단풍1>)이 떠오른다. ‘기껏 여름 몇 푼의 그늘, 업적은 미비한데 화려한 장례식에 명산은 문상하느라 온 나라가 북새통’이라던 시인의 지적은 바로 눈앞의 현실이다.

국민장에 문상하러 온 나도, 다른 이들도 이 단풍이 훅 져버리면 어쩌나... 간절한 마음 가득이다. 저 아름다움이 스러지고 나면 이 산은, 우리는 또 오죽 가슴이 미어질 것인가. 그 허전함을 어이할까. 그래서일까. 시인(박태강,<단풍>)은 ‘빨개져도 놓지 마라. 손까지 놓으면 땅에 떨어지고 땅에 떨어져 뒹굴면 낙엽’이 된다고 안타까워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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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회자정리(會者定離)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던가. 헤어짐 없는 만남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저 욕심일 뿐이다. 갈 때는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아릿한 물빛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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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단풍의 스러짐을 걱정하느라 여정이 끝나가고 있음을 잊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계곡 길은 어느 순간 기어이 오색약수로 이끈다. 아직도 감흥이 여전한데 길은 제 맘대로 사람들을 주전골 밖으로 밀어내고 만 것이다. 회자정리를 외쳤지만, 그 일이 제 일일 때에는 쉽사리 인정할 수 없음도 인지상정이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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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왔으면 가야하고, 만났으면 헤어짐도 당연한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인다. 감흥이야 꼭 시간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어설픈 위로를 한다. 뒤돌아본 주전골은 여전히 붉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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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를 건너자 오색약수터에도 사람들이 가득이다.

주전골을 내쳐달려온 계곡물은 오색에 이르러 약수가 되었나보다. 사람들은 계곡 바닥의 약수터에서 나오지도 않는 약수를 퍼 담느라 분주하다. 하기야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목을 축이려면 물탱크에서 약수가 콸콸 쏟아져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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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중 리더의 손짓이 바쁘다. 돌아가야 할 시간인가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들에게서 붉음에 취했던 환희의 들뜸과 기약 없는 헤어짐이 주는 아쉬움을 발견한다. 어쩌랴. ‘여행이란 본디 돌아가기 위한 연습’이라 하지 않던가. 비록 알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터벅터벅... 돌아가는 발걸음에 서운함과 아쉬움이 가득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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