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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과학을읽다]영수증에 환경호르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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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영수증으로 사용되는 감열지에 코팅된 화학물질 '비스페놀A'는 인체에 유해한 환경호르몬입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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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신용카드로 결제한 뒤 영수증을 받을지 말지 고민해보신 적이 있으시죠?

어떤 점포는 물어보지 않고 당연하게 고객에게 영수증과 신용카드를 함께 내주고, 다른 점포에서는 영수증을 받을 것인지 물어보고 고객의 의사에 따라 영수증을 주거나 폐기하기도 합니다.

영수증을 받는 사람들은 영수증에 기재된 개인정보가 노출돼 악용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반면, 영수증을 챙기지 않는 사람들은 두 종류입니다. 그냥 귀찮아서 챙기지 않는 사람과 영수증을 통해 환경호르몬이 인체에 흡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지요.

영수증 뿐만 아니라 주차권이나 영화티켓, 은행 순번대기표 등 일상에서 늘 접하는 종이 조각에 '비스페놀A(BPA)'라는 화학물질이 함유돼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지요? BPA는 가전제품이나 카메라, 휴대폰, 의료용품 등을 만드는 폴리카보네이트와 도료나 접착제 등을 만드는 에폭시수지 등에 첨가물로 사용됩니다.

보통 식품이나 음료를 담는 그릇과 통조림·종이컵 등의 내부를 코팅할 때 씁니다. 인체에 흡수돼 내분비계를 교란하면서 기형아 출산, 무정자증, 성조숙증, 행동장애 등을 유발하는 환경호르몬입니다.

영수증의 환경호르몬 유발 물질은 용지에 있습니다. 요즘 영수증 용지는 '감열지'입니다. 종이에 열을 가하면 그 지점에 색깔이 나타나는 방식을 이용해 글자를 새기는 종이입니다. 열을 감지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용어인 듯 합니다. 감열지를 쓰면 잉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이어서 거의 대부분의 점포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BPA는 이 감열지의 발색촉매제로 사용되는데 감열지 표면에 코팅된 화학물질입니다. 이처럼 BPA는 각종 플라스틱 용기와 영수증 등의 제조에 두루 사용되다보니 연간 제조량과 수입량도 엄청납니다. 환경부 등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기준 국내 BPA 제조량은 약 85만1000톤, 수입량은 9만3000톤 정도입니다. 국내서 제조한 BPA는 중국 등으로 수출되기도 합니다.

BPA는 액체 형태로 용해돼 인체에 흡수됩니다.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면 뜨겁고 기름진 음식에 BPA가 녹아 액체화 될 수 있습니다. 젖병도 가열되면 분유에 녹아들 수 있어 위험합니다. 영수증의 경우 섭취가 아닌 피부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름이 묻거나 땀이난 손으로 오래 접촉하면 식품을 통한 흡수율보다 10배나 높고, 피부로 흡수된 BPA는 인체에 잔류하는 시간도 더 길다고 합니다.

지난 5월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팀은 영수증을 맨손으로 만지는 것만으로도 BPA 체내 농도가 2배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최 교수팀은 마트에서 일한 지 평균 11년 된 중년 여성 계산원 54명을 대상으로 이틀 연속 맨손으로 영수증을 만졌을 때와 장갑을 끼고 만졌을 때 소변의 BPA 농도를 각각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맨손으로 영수증을 취급했을 때는 업무를 시작하기 이전보다 비스페놀이 2배가량 상승했습니다. 업무 전 소변에는 BPA가 0.45ng/㎖ 검출됐지만, 업무 후에는 0.92ng/㎖가 검출됐습니다. 장갑을 끼고 일했을 때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다 보니 주요 국가들은 BPA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9월 플라스틱 식품용기 내 BPA 함유량을 제한하는 규정을 채택했습니다. 최대 허용량을 기존의 10분의 1 이하로 줄이고, 3세 이하 영유아용 플라스틱 물병과 컵 등에는 사용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EU가 규정을 마련하기 전부터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더 강력한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었습니 덴마크와 벨기에, 스웨덴은 2013년부터 3세 이하 어린이들을 위한 식품 접촉물질에 BPA 사용을 금지시켰고, 프랑스는 2015년부터 모든 식품용기에 BPA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젖병에 대한 BPA 사용금지는 더 이전부터 시행돼 왔습니다. 캐나다는 2008년, 프랑스는 2010년, EU는 2011년, 미국은 2012년부터 이를 시행해왔습니다. 우리나라도 늦었지만 지난 8월 영유아용 제품에는 이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한다고 행정예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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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전송된 전자영수증. 전자영수증 사용은 환경도 보호하고 유해물질도 만지지 않는 방법입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BPA의 유해성의 정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인체에 들어간 BPA는 99% 정도가 소변 등으로 배출됩니다. 태아나 영유아 등에 미치는 유해성은 분명하지만 근로환경에서 일반적으로 접촉하는 정도로는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주장도 있지요. 어쨌든 마트의 계산원처럼 늘 영수증을 접촉해야 하는 사람은 장갑을 꼭 끼고 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요즘은 '전자영수증'을 발급하는 곳이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영수증 이미지를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발송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전자영수증에는 결제 정보, 사업장 정보 등 종이 영수증에 담긴 내용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불필요한 종이 낭비, 폐기물 처리 부담이 없어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되고, 환경호르몬이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걱정도 줄일 수 있는 것이지요.

또 전자영수증은 발급받은 이미지를 스마트폰에 저장해 구매내역을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도 있습니다. 환경보호와 환경호르몬 예방, 개인정보 유출 방지, 영수증 보관 등 전자영수증 사용이야말로 '스마트라이프'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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