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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정태명의 사이버펀치]<87>국가연구소의 신선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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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시상하실 분을 모십니다.” 마술사의 외침과 함께 '펑'하고 나타난 시상자의 코믹한 모습에 해킹 대회는 지루하고 엄숙하다는 통념에서 탈출했다. 사이버공격방어대회를 주관한 국가보안기술연구소가 새롭게 변신한 징표라고 우겨 댈 만한 참신한 시상식 모습이다.

지난주 제주도 제주시에서 개최된 사이버공격방어대회는 신선했다. 실제 정부기관과 동일한 전산 환경을 구축하고 자체 개발한 기반 시설 플랫폼, 훈련장에서 예산을 통과한 10개 공격팀과 16개 방어팀이 '창과 방패의 전쟁'으로 순위를 가리는 경기였다. 사무실에 침입해 비밀자료를 빼내고, 내부 직원 실수로 생긴 취약점을 찾아 공격하는 등 현실과 유사한 환경을 구현하느라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해킹대회라기보다 폐쇄된 연구소 분위기를 탈피하려는 몸부림으로 비쳐졌다. 국가연구소가 기존 연구 환경에서 탈피하고 변신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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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연구소로 변신해야 한다. 국가 보안이라는 이유로 '나 홀로 연구', '결과물 독식' 등을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연구 과정, 결과를 민간과 교류하는 열린 연구 체계가 필요하다. 국가연구소는 특히 보안과 공유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묘책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민간과 함께 국방 연구를 시행하고 있다. '비밀유지 서약서'라는 한 통의 서류에 의존할 수 없는 민감한 연구물을 보안하기 위한 연구 결과 클리닝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 인터넷인 알파넷을 민간연구소(BBN)가 개발하고 밀넷(Milnet)이라는 이름으로 국방에 활용한 것이 한 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절실한 연구 결과 공유, 연구 활동 협력, 연구소 간 융합 등 함께하는 연구는 이사회 통합이나 조직 결합으로 불가능하다. 연구원이 공동 연구 필요성을 느끼고 함께하는 체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요원한 일이다. 이유 불문하고 각종 연구소 구성원 간 교류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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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나는 연구소를 지향해야 한다. 연구원이 자유롭고 신나는 분위기에서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연구원이 원하는 주제가 정부 요구 주제보다 우선돼야 한다. 밤 12시에 복도에 모여 피자를 나누는 미국연구소 모습은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하는 즐거움의 표현이다. 월급쟁이 연구원이 많을수록 부족한 자원보다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 미래는 암울하다. 무한정 자원과 인력을 투자하고 큰 결과를 위해 작은 부작용을 감수하는 지혜가 미래 먹거리의 원천이다.

실력 없는 연구소는 존재 가치가 없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각 분야 연구소가 기여한 공적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연구소는 한 번의 결과보다 결과를 지속 창출할 수 있는 힘, 즉 실력이 필요하다. 연구소 중심이 사람인 이유다. 평생 한 번 정도 세상을 뒤바꿀 만한 연구 결과를 창출하는 연구원이 외면당하고, 해마다 받은 월급만큼 결과를 내야 하는 연구원으로 전락하는 실적주의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매년 평가에 연연하는 연구 환경에서 실력을 배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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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공격방어대회에서 보여 준 변신과 신선함이 실질 연구 환경으로 전이돼 국가연구소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평화 전성 시대에 역할이 증대될 국가보안기술연구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가연구소 모두가 연구 환경 혁신으로 경제 성장 지렛대가 되기를 바란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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