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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中企 현장 안테나] ‘소득주도성장’ 두고 깊어질 수밖에 없는 중기부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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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소상공인 도움 되더라도

단기 ‘자영업 구조조정’ 출구전략 고민

최저임금 인상과 지원정책 상충관계에서

전직지원·업종전환 등 해결책 갈림길

“문재인 정부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위한 정부입니다. 정부가 주장하는 복지정책, 경제정책도 모두 서민경제 정책의 일환입니다. 서민경제에 돈이 돌지 않아서 경제가 어려운 것입니다. 경제성장으로 대기업은 많은 수익을 냈지만 그것이 서민경제에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양극화,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소상공인을 위한 소득주도성장이 어느 순간 왜곡된 게 참 안타깝습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8 소상공인 주간’ 행사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 기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고령층 등 힘겨운 분들도 생겼다”며 “그러나 ‘함께 잘살자’는 우리의 노력과 정책 기조는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한 다음날이었죠. 문 대통령의 연설을 두고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유지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었습니다.

이 맥락에서 이날 홍 장관의 축사는 국내 최대 소상공인 축제 중 하나인 ‘소상공인 주간’을 계기로 ‘중기부 역시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 기조에 발 맞춰 나아가겠다’는 메시지를 제시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특히 소상공인은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기조에 가장 크게 반대했던 집단이란 점에서, 이날 홍 장관의 발언은 더욱 의미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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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으로 구매력 높이고, 골목상권 보호로 부담 경감

홍 장관이 “문재인 정부는 소상공인·중소기업을 위한 정부”라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8월 28일 서울 문래동에서 소공인과 간담회를 가졌을 때 나온 발언입니다. 당시 홍 장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근 서민경제의 어려움을 최저임금 인상과 연계하려는 주장이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그동안 우리 경제가 의존해왔던 대기업 낙수효과가 예전만큼 못하고 대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서민 경제가 좋지 않은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내수 진작을 통해 경기를 부양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민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소상공인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주장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철학에도 맞지 않고 실제로 경제를 운영하는 방식과도 동떨어진 비약이다.”

당시는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결정된 지 얼마 안 돼, 소상공인 업계 사이에서 대대적인 반발이 일었던 시기였습니다. 간담회 다음 날엔 소상공인 단체들이 광화문에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촉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죠. 이날 홍 장관의 발언이 ‘소득주도성장 방어’로 읽혔던 이유입니다.

홍 장관이 현 정부를 ‘소상공인을 위한 정부’라고 강조할 수 있는 논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최저임금 인상이 장기적으로 구매력 향상으로 이어져 소상공인 경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단기적으론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올라가 소상공인의 비용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장기적으론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구매력이 올라가 자영업자에 대한 수요도 증가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소위 말하는 ‘J커브 효과’입니다. 원래 환율이 경상수지에 영향을 끼치는 데에 시차가 걸린다는 뜻을 담은 이 개념은, 최근 최저임금 인상이 경기 회복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로 종종 쓰입니다. 지난 2일 홍 장관이 “서민경제에 돈이 돌지 않아서 경제가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 데엔,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진작을 통해 서민들의 지갑을 두껍게 해야 소상공인이 살아난다’는 메시지가 행간에 깔려 있습니다.

또 하나는 각종 보호 정책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공정경제 기조에서 비롯된 ‘골목상권 보호’입니다. 한 축에선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소비를 증진하고, 다른 한 축에선 대기업과 금융자본의 골목상권 침탈을 막아 소상공인을 육성할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맥락에서 2일 홍 장관은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침투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해 대기업-골목상권 간 자율 상생협약이 전국에 확산되고 있으며, 영세 1인 소상공인에 대해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혜택을 넓혀 안전망을 강화했다”며 “아울러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이 12월 시행되면, 골목상권을 더 견고히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그 외에도 중기부는 △카드수수료 인하정책과 ‘제로페이’ 도입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일자리안정자금 확대 등을 통해 소상공인 비용 부담을 줄이는 정책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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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의 양면성···어쩔 수 없는 구조조정

문제는 최저임금의 ‘단기 효과’입니다. 최저임금이 장기적으로 구매력을 높일 수 있을지라도, 단기적으론 ‘구조조정 정책’입니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매출이 인건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점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을 닫지 않더라도 자영업자 입장에선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죠. 특히 최근 내수시장이 불경기로 얼어붙고 있어, 최저임금 인상이 촉발하는 구조조정 효과는 더 증폭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의 전년동월대비 증감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꾸준히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으며, 자영업자수도 지난 6월 이후 계속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물론 현재 ‘자영업 과밀화’가 심각하다는 게 정설입니다. 지난 6월 전인우 중소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발표한 ‘소상공인 과밀, 어느 수준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서울시 숙박·음식점업 소상공인(종업원 5인 미만 사업장)의 평균 소득은 연 1,800만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서울 내 모든 숙박·음식점업주 중 67.99%가 동종업계 근로자보다 수입이 적은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자영업을 하는 ‘사장님’들 중 68% 가량이 ‘직원’보다 수입이 적다는 건, 그만큼 기회비용이 더 높은 상황에서 영업을 이어가는 분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과당경쟁이 심각하다는 의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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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보니 한 편으론 최저임금 인상 등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카드수수료 인하나 생계형 적합업종 제정 등 ‘현상유지’ 정책이 이뤄지는, 모호한 모양새가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단 자영업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면,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거나 전직지원을 강화하는 ‘연착륙’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뚜렷한 시그널이 없이, ‘보호·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구조조정을 미루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중기부도 지난 8월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내면서 △전직장려수당을 75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하고 △폐업 영세자영업자에게 3개월간 월 30만원씩 지원하는 구직촉진수당을 신설하며 △기존에 500명의 자영업자에게 100만원씩 지원하던 근로자 전환 시 사업장 폐업·정리 지원금을 2,000명에게 각 200만원씩 지급하는 걸로 확대하는 정책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단기적인 현금보조에 머물러있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목소리가 제기됩니다. 소상공인 업계 관계자는 “8월에 나왔던 지원대책의 방향성이 뭔지 모르겠다”며 “폐업지원을 추진할 것이었으면 폐업지원에 집중하고, 육성책에 힘을 쏟을 거였으면 육성책에 방점을 찍었어야 했는데, 너무 백화점식 정책으로 나왔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단기 효과로 보면 이 대목이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기조가 서로 충돌하는 ‘약한 고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단기 보호정책은 시장원리와 다소 충돌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실제로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은 카드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죠.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데엔 이 이유도 있습니다. 카드수수료나 현금보조처럼 인건비 증가분을 ‘외곽’에서 상쇄해주는 게 아닌, 최저임금에 정면돌파를 시도해 구조조정을 완만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제전문가는 “단기적으론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통해 시장질서를 왜곡하지 않고 자영업계의 연착륙을 유도하되, 장기적으론 노동 유연화를 도모해 폐업 자영업자들이 다른 기업에 쉽게 취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소상공인은 문재인 정부의 ‘아픈 손가락’입니다. 골목상권 보호정책이나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공정경제’ 기조를 지지하면서도,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선 가장 크게 반발해온 계층입니다. 홍 장관은 2일 발언을 계기로 ‘소상공인을 위한 정부’라는 약속을 지키면서도 소득주도성장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 앞으로 홍 장관이 자영업 구조조정의 딜레마를 해결해나가고 ‘J커브’를 그려낼 수 있을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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