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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성폭행 무죄 항소심에 ‘성인지 감수성 결여’ 지적한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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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 부부 자살사건

대법서 판결 뒤집혀 눈길

“원심이 성폭행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성인지 감수성을 결여했다는 의심이 든다.”

남편의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법원에서 무죄가 나오자 피해자 부부가 함께 목숨을 끊은 사건의 결론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가해자의 강간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며 원심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모(38)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강간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박 씨는 지난해 4월 충남 계룡시 한 모텔에서 친구의 부인인 A(사건 당시 32세)씨를 상대로 남편과 자녀에게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하고 강제로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 씨는 논산 지역 조직폭력단체의 조직원이었다. 강간 혐의를 무죄로 본 1심 판결을 비관해 A씨 부부가 지난 3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에야 박 씨는 죗값을 받게 됐다. 항소심 재판서 박 씨의 형량은 소폭 높아졌지만 강간 혐의는 역시 무죄였다.

대법원은 고인이 된 피해자 진술을 근거로 항소심 결론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A씨의 진술은 수사기관에서부터 1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될 뿐만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라고 봤다. 오히려 박 씨의 진술이 모순되고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등으로 인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 가해자와의 관계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성범죄 사건을 재판할 때 성인지 감수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피해자가 현장을 미리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강간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해선 안된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협박 이후 A씨가 박 씨에게 가정사를 털어놓은 사실, 범행 현장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박 씨의 강간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박 씨가 조폭 후배를 폭행한 혐의 등은 유죄로 보고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검찰은 강간 무죄 판단이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유은수 기자/ye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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