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사찰음식을 한류로 만든 천진암 정관 스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사찰음식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정관 스님이 서울 종로 템플스테이 홍보관에 마련된 사찰음식 교육장에서 발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5년 10월 '뉴욕타임스'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음식을 만들고 있는 곳은 뉴욕도 코펜하겐도 아니다. 대한민국 외진 암자에 있는 비구니 스님 한 명이 경이로운 채식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이 사람은 레스토랑을 운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미셸 브라, 알랭 파사르 등과 같은 반열에 든 세계적인 셰프다."

이 기사 주인공은 전남 장성 내장산 기슭에 있는 백양사 천진암 주지 정관 스님(62)이다. 정관 스님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오이를 요리할 때 나는 오이가 된다. 완성된 요리와 재료 사이에서 어떤 거리감도 느껴져서는 안 된다"고 말해 서구 셰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요리가 곧 수행인 정관 스님에게서 세계인들은 '요리의 미래'를 봤다고 환호했다.

이후 스님은 2017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다큐 영화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 주인공으로 또 한 번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국 정신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사찰음식으로 신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정관 스님을 서울 종로 템플스테이 교육관에서 만났다.

―최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 슬로푸드 박람회에 다녀왔는데.

▷관심이 대단했다. 현지 일간신문 '라 스탐파'에 "정관 스님이 신비한 식사법을 알려준다"는 예고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그들이 특히 관심을 보인 건 '발우공양(鉢盂供養·사찰에서 행하는 스님들 식사법)'이었다. 그릇(발우)부터 요리재료, 요리법, 먹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수행이자 드라마인 발우공양이 눈길을 끈 것 같다. 식사가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만이 아니라 음식의 기원에 대해 생각하고 음식을 제공해준 자연과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행위라는 걸 알려줬다.

―외국인들이 사찰음식에 특히 관심을 갖는 이유는.

▷스토리텔링도 한몫한 것 같다. 지난번 뉴욕행사 때는 300년 된 탱자나무에 열린 탱자를 수확해 3년 숙성시켜 담근 청을 선보였다. 그 청을 올린 국수말이와 우엉양념구이를 맛보더니 기립박수를 쳤다. 음식이 지닌 깊고 그윽한 스토리텔링에 다들 감동했다. 외국인들은 사찰음식 색채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레시피가 따로 있나.

▷레시피는 없다. 레시피는 음식을 매번 똑같이 나오게 만든다. 그건 재미없는 음식이다. 죽은 음식이다. 같은 재료라 해도 언제, 어느 날, 어느 시간에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요리했냐에 따라 다른 음식이 된다. 나와 함께 음식을 나눌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서도 요리는 달라진다. 씨앗 하나가 햇살과 바람과 비에 자라서 내 입으로 들어오는데 무슨 레시피가 있겠나. 식재료를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가. 같은 식재료라도 보름 있다가 먹을 수도 있고, 한 달 후에 먹을 수도 있다. 만드는 사람 에너지와 경험이 그날그날 다른 음식을 만든다.

―사찰음식의 정의는.

▷쉽게 말하면 사찰에서 스님들이 먹는 음식이다. 사찰음식은 전 과정이 곧 수행이다. 일단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수행을 위해서다. 수행을 하려면 육신이 있어야 하고, 육신을 움직일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수행에 필요한 의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곧 사찰음식이다. 그리고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그릇에 담고, 그것을 먹고, 사후 처리를 하는 전 과정이 곧 수행이다. 사찰음식은 정신과 육체를 연결해주는 에너지다. 단 과도한 에너지는 필요 없다. 수행에 딱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사찰음식은 필연적으로 검박하고 욕심이 없다. 사찰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은 식재료와 내가 본질적으로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사찰음식 전문가가 된 계기는.

▷시골에서 농부의 딸로 자랐다. 주변에서 나오는 것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먹는 게 좋았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먹거리'라는 것은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인연을 맺어 평생을 함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출가해서도 매일매일 먹을 것들을 채취하고 다듬고 하는 과정이 모두 좋았다. 내가 한 음식을 드시고 스님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수행을 한다면 그것 또한 수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맛있다 맛있다 하니까 좋았다. 새벽 3시에 나와 밤 9시까지 일을 한 적도 많았지만 어떤 걸림도 없었다. 내 천직이다.

―사찰음식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생각해보면 '시절 인연'이었다. 템플스테이가 일반화하면서 절집 문화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때 사찰음식도 세상에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한식·한옥·한복 등 '한(韓)' 브랜드를 살리는 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그때 대표적인 한식 중 하나로 사찰음식이 외국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베를린영화제에 나간 다큐영화 '셰프의 테이블' 이야기를 좀 해 달라.

▷뉴욕타임스에 특집기사가 나가자 넷플릭스 측에서 영화를 찍자고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다. 난 수행하는 사람이지 셰프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감독인 데이비드 겔브가 "당신 원하는 대로 만들 테니 응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만들게 됐다. 시나리오도 내가 많이 간섭하고 그랬다. "나는 셰프가 아니라 수행자"라는 멘트가 첫 장면에 나오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냥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린다는 심정으로 제작에 참여했다. 때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 있던 시기에 촬영해서 그림이 더 좋게 나왔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제 나간 이후 달라진 게 있나.

▷영화제 기간 오후에 하루 두 번씩 상영을 했는데 반응이 놀라웠다. 관객들은 사찰음식의 정성에 큰 감동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제가 끝나고 한국에 왔는데 외국인들이 내가 만든 사찰음식을 맛보기 위해 천진암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50명 정도 찾아온다. 내년 초까지 예약이 다 찼다. 천진암에 오지 않더라도 한국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 중 상당수가 사찰음식을 먹어보고 싶어한다. 음식 한류의 중심에 사찰음식이 서게 된 것이다.

―요즘 먹방·쿡방 열풍이 거세다.

▷텔레비전을 잘 안 봐서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향유하고 탐닉하는 건 좋지 않다. 음식은 육신과 정신을 조화시켜 줘야 한다. 육신만 좋은 음식을 먹으면 정신이 탁해진다. 정신이 탁해지면 장기적으로 몸 자체도 병이 든다. 그리고 음식과 유머를 섞어서 지나치게 관심을 끄는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패스트푸드에 지친 서양인들이 사찰음식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보라. 그들은 이미 먹방을 다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먹방에 찌들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세계인들이 우리 전통음식에 열광하는데, 우리는 입에 좋은 음식에 열광하고 있으니. 올바른 음식을 먹으면 생각도 올바르게 된다. 결과적으로 성격도 변화시킨다. 그리고 건강해진다. 음식의 기운은 얼굴색도 바꾼다.

―외국 음식을 잘 안 드시는 편인가.

▷외국 음식이라고 배척하지는 않는다. 안 먹어본 음식이라 외국 음식을 먹으면 몸에 안 좋아서 자제할 뿐이다. 음식은 그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 역사까지 맞물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익숙한 음식이 좋다. 커피는 좋아한다. 사찰에서 직접 숯불에 커피를 볶아 외국 손님들에게 접대한다.

―사찰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발효다. 예를 들어 장(醬)은 기본이다. 해마다 메주를 쑤고 발효시켜 간장과 된장을 만든다. 오래된 간장은 생명수다. 모든 음식의 핵심이 된다. 나물 하나도 발효시켜 저장하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나물이 나오지 않는 계절에도 나물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 바로 발효다.

―일반인에게는 술도 하나의 음식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

▷좋은 술을 마시는 것은 좋다. 여기에서 말하는 좋은 술은 내가 직접 담근 술이다. 내 정성과 내 마음이 담긴 술이 가장 좋다. 내 에너지와 자연의 에너지가 만났으니까. 내가 직접 담그지 못한다면 술을 놓고 기도라도 해야 한다. 내 기운이 들어가도록.

―무례한 질문이지만 어떻게 출가했나.

▷출가를 재미삼아 했다(웃음). 8세 때부터 관심이 있었다.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는데 그러려면 '절에서 사는 게 좋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포교당에 나갔다. 중학교 들어가서는 학교에 가고 절에 몇 달씩 들어가 있곤 했다. 부모님 속 많이 썩였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출가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부처님 공부만 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게 이유였다.

―사찰음식 전도사 하면서 어려운 점은.

▷공간이 문제다. 외국에서 오는 분이 점점 늘고 있는데 그분들이 머물 공간이 많이 부족하다. 백양사 천진암에 임시 공간이 있지만 어설프다. 외국에서 오신 손님들이 머물면서 요리 체험하고 참선할 공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요청 오는 사람들 중 극히 일부만 받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누군가의 지원을 받는다면 그 역시 내 짐이 되겠지만 어쩌겠나.

―앞으로 계획은.

▷음식 공덕을 계속 쌓을 것이다. 예전 동화사 양진암에 있을 때 일요일마다 국수를 삶아서 등산객들에게 나눠줬다. 세월이 흐르니까 그분들이 다 인연공덕이 되어서 불사할 때 기와 한 장이라도 보태더라. 음식은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 서로 마음을 나누는 데 음식만큼 좋은 것은 없다. 주어진 대로 주어진 인연에 따라 살 것이다. 그것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 정관 스님은…

1956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1975년 사미니계를, 1981년 구족계를 받았다. 대구 홍련암, 전남 망월사, 강원 신흥사 주지를 거쳐 현재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 주지로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교재 편찬위원, 풋내 사찰음식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