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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광둥성 간 시진핑, 덩샤오핑 남순강화와 '닮은 점' vs '다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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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MP "서방의 견제, 민영경제 고통, 중국 앞날 불확실 1992년 여건 비슷"
덩샤오핑의 탈집중화⋅탈이데올로기⋅도광양회와 거꾸로 가는 시진핑 노선
시진핑, 굴기 상징 세계 최대 해양대교 개통식 참석…"자력갱생 기술혁신" 강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2일 중국 남부 주하이(珠海)를 시작으로 광둥(廣東)성 시찰을 시작했다. 23일엔 주하이~홍콩~마카오를 잇는 강주아오(港珠澳) 대교 개통식에 참석해 총연장 55km의 세계 최장 해상대교의 개통을 선언했다.

시 주석은 중국 1인자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직후인 2012년 12월 첫 시찰지로 광둥성을 택한지 6년만에 다시 찾았다. 광둥성은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중국 개혁개방의 첫 실험지다.

시 주석은 6년 전 광둥성을 시찰할 때 "중국 개혁개방의 바람이 시작된 지역 현장에서 개혁개방의 역사를 회고하고 앞으로 계속 전진하기 위해 왔다"고 밝혔었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자인 덩샤오핑(鄧小平)과 자신을 오버랩시키는 선전 행보라는 지적도 나왔다.

조선일보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18년 10월22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하이의 거리전기(윗쪽)와 헝친신구 등을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


관영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개혁 개방 40주년을 맞아 광둥성을 또 다시 시찰하는 것은 신시대 중국이 흔들림 없이 개혁을 심화하고 개방을 확대하겠다는 결심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시점이 묘하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고, 공산당의 통제고삐를 키우는 당국의 경제노선 방향에 기업인들이 불안감이 커지는 때다. 최근 발표된 중국의 올해 3분기 경제 성장률은 6.5%에 그쳐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았던 2009년 1분기(6.4%) 이후 10여년만에 최저 수준이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둘러싼 환경과 지금의 여건이 비슷하다고 전했다. "중국에 적대적인 외부세계, 고통받는 민영경제, 국가의 미래에 대한 혼란"이 그렇다는 것이다.

1989년 텐안먼 사태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고, 개혁개방 반대 목소리가 당 내부에서도 잇따라 터져 나왔던 시절 덩은 남순강화로 개혁개방을 가속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남순강화 이후 개혁개방 조치가 줄을 이었고, 창업바람이 다시 일었다. 중국 유명 부동산업체 소호차이나를 세운 판스이(潘石屹)와 중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푸싱궈지의 궈광창(郭广昌) 회장도 이 때 창업했다. 1992년 창업한 세대를 일컫는 ‘92파(九二派)’라는 말까지 훗날 생겨났다.

외교적으로도 중국은 그해 8월 한국과 수교를 맺고, 10월 일본 천황의 중국 방문을 성사시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중일 평화우호조약 발효 40주년(23일)을 맞아 25일부터 사흘간 중국을 방문한다. 일본 총리의 공식 방중은 2011년 12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 이후 7년 만이다.

SCMP는 그러나 시진핑판 남순강화가 1992년 남순강화의 성공을 재연하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론을 보도했다. 시 주석의 행보가 권력분산을 기반으로 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원칙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도 시진핑판 남순강화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중국은 시 주석의 광둥성 시찰을 앞두고 중국은 증시 부양과 민영기업 및 외자기업을 우대하는 대책을 쏟아냈다. 시 주석이 주하이를 찾은 날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국무원 상무회의를 열어 외국인투자 네거티브 리스트(금지 항목)을 제외한 분야에 남아있는 외자에 대한 진입제한을 내년 3월말까지 모두 정리하겠다고 발표한 게 한 사례다.

♢ 중국 굴기 상징 찾는 시진핑, 세계 최대 빅베이 경제권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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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3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하이 홍콩 마카오를 잇는 총연장 55km의 세계 최장 해상대교 강주아오 대교 개통을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정식 개통은 24일 시작된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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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 18일부터 2월 21일까지 덩샤오핑은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광둥성 선전(深圳)과 주하이, 상하이를 시찰했다. 22일 주하이 헝친(横琴)신구 첨단기술개발구와 웨아오(粤澳,광둥 마카오)합작 중의약 과기산업원을 시찰한 시 주석은 23일 강주아오 대교 개통식에 참석하고, 선전에 있는 첸하이(前海) 자유무역구 등도 다시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6년전에도 선전 주하이 광저우 등을 찾았었다. 이번에 시 주석이 시찰한 헝친신구는 2015년 지정된 광둥 자유무역구에 속하는 지역이다. 시 주석은 자신이 10년간 4차례 헝친을 찾았다고 말했다.

중국 언론에서는 시 주석이 개통식에 참석하는 강주아오 대교를 두고 총연장 55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이고, 철골 다리 몸체가 세계 최장이라는 점 등을 내세우며 ‘교량 건설의 에베레스트’란 식으로 자화자찬한다.

시 주석의 중국의 굴기(崛起)를 상징하는 행사 참석은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24일 오전 9시(현지 시간)부터 정식 개통되는 강주아오 대교는 자동차로 4시간, 배로 1시간이 걸리던 주하이와 홍콩 간의 거리를 30분대로 줄인다. 관영 CCTV는 특집 방송을 통해 강주아오 대교 개통의 의미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강주아오 대교 개통으로 광둥성 9개도시와 홍콩 마카오를 아우르는 ‘웨강아오(粤港澳)대만구(大灣區, 빅베이)’계획도 탄력을 받게 됐다. 웨아오 합작 중의약 과기산업원을 찾은 것도 통합 경제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행보다.

시 주석이 작년 19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보고에서도 약속한 웨강아오 빅베이의 면적은 한국의 56%, 인구는 한국의 1.3배이고, 경제 규모는 한국(1조 5302억달러)의 85% 수준(1조 3000억달러)에 이른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 광둥성의 제조업과 혁신의 고향인 선전의 성장동력을 기반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빅베이를 넘어서는 세계 최대 빅베이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홍콩과의 경제 연계를 가속화하기 위해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첸하이는 광둥 자유무역구에 편입되면서 성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첸하이에는 금융과 물류 위주로 16만 5000여개 기업이 등록했으며 홍콩 젊은이들이 세운 스타트업이 주로 입주한 창업보육센터도 있다.

♢ "자력갱생으로 기술 혁신" 또 강조

신화통신은 시 주석의 2차 광둥성 시찰소식을 전하면서 새로운 시점에 다시 출발해야 한다며 앞길에는 정복해야 할 러우산관(娄山关)이 여전히 많다고 했다. 러우산관은 구이저우 쭌이(遵义)에 있는 해발 1576m의 산봉우리로 1935년 마오쩌둥의 홍군은 국민당 3개 여단을 물리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승리는 홍군이 장정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거둔 '대승’이었다. ‘오늘의 러우산관’은 미중 무역전쟁 등 중국을 견제하는 서방의 행보와 경기둔화 등이다.

시 주석은 22일 중국 최대 에어컨 제조업체인 민영기업 거리(格力)전기를 찾아 "대국에서 강국으로 가기 위해 실물경제 발전이 매우 중요하다"며 "제조업은 실물경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이어 "제조업의 핵심은 혁신으로, 이는 곧 핵심기술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모든 기업들이 자력갱생으로 분투해 혁신을 쟁취하는 방향으로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자주 혁신에 대한 기개와 패기를 가져야한다"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을 통해 시도하는 중국의 기술 굴기 억제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확인한 것이다.

♢ 시진핑판 남순강화에 대한 비관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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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부 선전에 있는 첸하이 자유무역구(윗쪽)와 개혁개방 박물관/선전=오광진 특파원


크리스토퍼 볼딩 베트남풀브라이트대 교수는 SCMP에 "중국 기업인들은 말보다 행동을 더 중시한다"며 "관영매체가 개방을 확대하고 기업인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하겠지만 현실은 이와 맞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믿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옥스퍼드대 중국센터의 연구원 조지 마그너스도 "덩샤오핑은 진정한 개혁가였지만 시진핑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비스산업에 대한 진입 장벽을 깨고, 외자와 내자기업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등 민영기업 주도 경제로 진짜 균형을 옮기려는 어떠한 시도도 볼 수 없다"며 "내가 시의 광둥성 시찰을 덩의 남순강화와 동격에 놓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레드 캐피털리즘(Red Capitalism)’의 저자 프레이저 호위도 "시는 절대로 덩샤오핑의 성공을 재연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1992년 1인당 GDP는 366달러였지만 지난해 27배 성장하는 등 경제기초가 달라졌다는 점을 들었다.

♢ 평당원 덩샤오핑, 1인 권력 시진핑

프레이저 호위는 "남순강화 당시 아무런 공식 직위가 없던 덩은 개혁을 저지한다고 비난할 대상이 중앙에 있었지만 지금 시진핑은 거대 권력을 가진 지도자로 개혁을 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그 자신일 뿐으로 비난할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덩은 막후 실력자이긴 했지만 평당원 신분으로 남순강화를 했다. 앞서 1990년 12월 17일 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사회주의가 반드시 자본주의를 대체해야 한다"는 제하의 글을 내놓는등 개혁개방 중단 목소리가 연이어 터져나오던 시점이었다.

인민일보의 자본주의 대체론은 덩의 개혁개방이 직면했던 도전을 보여준다. "1980년대말 직면한 정치경제 혼란은 모두 1980년대초 추진한 시장화 개혁 탓이다. 전통적인 사회주의로 돌아가야만 모든 정치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시장경제는 공산당의 영도를 부정하고,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덩은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 반대세력에 직격탄을 날렸다. "개혁개방은 과감히 해야 한다. 잘못되면 빨리 시정하면 된다. 계획과 시장은 모두 경제수단이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본질을 구별하는 게 아니다. 과감하게 자본주의 선진국의 선진 경영관리방식 등 인류사회가 창조한 성과를 흡수하고 배워야한다. 중국은 우(右)도 경계해야하지만 좌(左)로 가는 것을 막아야한다."

덩은 개혁개방 반대파의 견세속에 88세의 노구를 이끌고 남순강화를 단행했다. 하지만 시 주석이 광둥성 시찰에 나선 22일 중국 관영 CCTV 뉴스채널에서는 인긴 인문학 프로그램인 백가강단(百家講壇)이 만든 특집 '평어근인'(平語近人) 이 방영됐다. '평어근인'은 시 주석이 말이 겸손하고 온화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나이 지긋한 학자가 나와 설명을 하고, 젊은 청중들이 박수를 쳤다. 국가주석의 임기제를 폐지하는 등 1인권력 체제를 강화하는 시진핑 주석을 위한 개인숭배로 지적되는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 덩샤오핑 노선과 충돌하는 시진핑

시 주석의 발언에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내용중 적지 않은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평화를 지키는 견고한 역량이 되고 패권주의를 반대한다." "당(黨)의 영도를 포함한 4가지 기본원칙 견지" "유리한 기회를 잡아 스스로를 발전시켜야한다" 등은 시 주석이 반복해 언급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 클레어몬트 매케나 칼리지의 페이민신(裴敏欣) 교수는 시 주석의 통치 방향이 집단지도체제 도입, 지방으로의 권력 분산,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숨기고 참고 기다린다), 이념투쟁을 억제하는 탈정치화 등으로 특징되는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노선 원칙과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르크스주의 등 사회주의 가치 이념 학습을 강조하고, 외국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중국 서비스를 차단하는 해외 주요 사이트를 늘리는 게 대표적이다. 최근엔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 접속이 차단됐다. 인권 변호사가 잇따라 체포되고 비정부기관(NGO)와 언론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는 것도 이데올로기 강화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올들어 쏟아진 ‘사유제 소멸론’, ‘사영경제 퇴장론’, ‘민영기업 지배구조 민주화론’ 등은 민영기업인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지난달 "민영기업에 대한 지지는 한치의 흔들림 없다"고 강조했던 시 주석은 지난 21일 공개된 민영기업인에 보낸 서신에서 "민영경제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어떤 말이나 행위도 모두 틀렸다"고 밝히는 등 민영기업 달래기에 연이어 나섰다.

민영기업을 위한 지원책과 개방 확대조치를 연이어 내놓는 것도 민영기업인의 불안과 미중 무역전쟁의 불거진 외국기업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2일 국무원 상무회의는 개혁조치의 시간표를 제시하며 말뿐인 개혁이라는 비판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회자본(민간자본)의 진입제한을 더 없애기 위해 연말까지 시장 진입 네거티브리스트를 수정해 전면 시행하기로 했다. 연말까지 기업 등록절차를 고도화하는 조치도 시행하기로 했다. 내년 3월말까지는 새로운 행정허가 절차 목록을 제시하고, 목록에 있지않는 인허가는 법규 위반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인민은행은 지난 6월 금융기관의 재대출과 재할인 한도를 1500억위안(약 24조 6000억원) 늘린 데 이어 22일 1500억위안을 더 늘린다고 발표했다. 민영기업에 대한 대출비중이 높은 기관이 인민은행 지역 분행에 재대출과 재할인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 증권업협회도 이날 1000억위안(약 16조 4000억원)을 동원해 주식담보 대출로 어려움을 겪는 민영기업을 돕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사주 매입 규제를 완화한 회사법 개정안을 전인대(국회)에서 이날 심의했다는 소식도 흘러나왔다.

민영기업과 증시를 부양하는 언급과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중국 증시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4년여만에 2500선이 깨진 상하이종합지수는 19일(2.58%)과 22일(4.09%) 두 거래일 연속 급등세를 탔다가 23일 오전장을 1.37% 하락세로 마쳤다. 미래의 가치를 선반영하는 게 주가다. 시장은 중국의 앞날을 불확실하게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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