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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 이종욱 평전까지 칼질해 ‘유신’ 지운 MB·박근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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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8 국정감사]

이종욱 전 사무총장 ‘평전’ 번역본서 ‘유신독재’ 통째 들어내

신동근 의원 “‘아시아의 슈바이처’ 생애마저 정치논리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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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고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평전’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대한 내용을 통째로 들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한겨레>에 보건복지부 산하 정부출연기관인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재단)에서 제출받은 ‘이종욱 총장 전기 발간 관련 자료’ 등을 공개하며 “<이종욱 평전>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영문판 원본에 있는 ‘유신독재’ 내용이 빠져 있다”고 밝혔다. 2012년 6월 출간된 영문판에는 유신독재를 서술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11월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될 때는 관련 내용 8문장이 삭제돼 출간됐다. 빠진 내용의 주요 부분은 “(유신헌법은) 정치적 활동과 시민의 자유를 엄격하게 통제할 근거가 됐고, 대통령에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시도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권한을 줬다. 박정희 체제가 시작되면서부터 학생들 사이에서 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다. ‘반체제’는 그 당시 학생들의 삶 내내 지속되는 특징이 됐다”이다. <이종욱 평전>은 이 전 총장이 WHO 사무총장으로 일할 때 연설문을 작성했던 영국인 데스먼드 애버리가 집필을 했고,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이종욱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WHO와 협약을 맺고 평전 출간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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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3월16일 재단 관계자들과 보건복지부 국제협력담당관실 서기관 등은 한국어 번역본 발간 관련 회의에서 ‘유신독재’ 부분 삭제를 논의했다. 이 회의 결과를 정리한 같은해 4월2일치 문서 ‘이종욱 전기 국문판 발간 자문회의 결과 보고’를 보면, “70년대 정치·사회 상황과 관련된 내용은 고 이종욱 박사와 크게 관련이 없고 동 전기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 아니므로 삭제하거나 보완하는 것이 좋겠음”이라며 “2012년 3월16일 WHO 담당자에 해당 부분(3군데) 삭제 요청 이메일 발송”이라고 돼 있다. 3군데는 “①(영문본) 23쪽 1970년대 박정희 정권 관련 부분 ②80쪽 필리핀 독재정권에 대한 기술 ③181쪽 사무총장 재직 시 직원 파업에 대한 대처와 관련된 부분”이다. 그러나 이 세 부분중 유일하게 ‘①박정희 정권 관련 부분’만 삭제됐다.

또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8월7일 보건복지부 국장과 사무관, 재단 관계자들이 모여 ‘이종욱 전기 국문번역본 검토회의’를 한 결과보고 문건을 보면, 이 전 총장의 유가족 대표는 “정치적 내용은 표현을 부드럽게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했고, 재단관계자는 “출판사와 상의해 70년대 체제 관련 내용을 가치중립적으로 기술하는 식으로 조율해보겠다”고 했다. 최종적으로는 유신독재 부분이 송두리째 삭제됐다.

복지부와 재단관계자들은 출판사에 대해 ‘정치적 판단’을 하며 배제하기도 했다. 2012년 ‘자문회의 결과보고’ 문서에는 <이종욱 평전> 한국어 번역본 출간을 위해 재단이 2011년에 출간 의뢰한 4군데 출판사 중 실천문학사만 최종적으로 수락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복지부와 재단관계자들은 실천문학사에 대해 “정치색 때문에 공공기관인 재단에 부적합”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이종욱 평전>은 애초 4군데 출판사와 관계없는 ‘나무와숲’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신동근 의원은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은 ‘아시아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세계적인 인물인 고 이종욱 총장의 생애마저도 정치논리로 재단했다”며 “이제라도 한국어 번역본에서 ‘유신독재’ 부분을 원본대로 복원해서 재출간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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