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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내가 언제? 오해야"…뻔뻔한 직장내 성희롱 가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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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2017 인권침해 결정례집에 드러난 성희롱 사례

가해자들 모두 자신들의 행위 부인, 인정은 1건도 없어

피해자, 증언 녹음 문자메시지 등 준비 철저히 해야

아시아경제

직장내 성희롱. 이미지. 기사와 관련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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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직장내 성희롱, 성추행을 고발하면 가해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최근 서울시가 발간한 '2017 인권침해 결정례집'을 보면 그들의 행태가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자에 실려 있는 7건의 성희롱 사례 중 솔직히 고백하고 잘못을 인정한 가해자는 한 명도 없었다. 거짓말로 부인하고 심지어 은폐하려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피해자 입장에선 직장내 성희롱을 고발하려면 녹음, 문자 메시지, 통화 기록 등 증거 확보와 주변 동료들의 증언 등 가해자의 뻔뻔한 거짓말을 뒤집을 수 있도록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얘기다.

시 한 사업소에서 동료 직원의 딸인 20대 비정규직 여직원에게 "호빠에 가서 한 번 하고 와"라고 말하는 등 상습적으로 언어적 성희롱을 한 A씨가 대표적 사례다. 피해 여성은 "남자 친구가 너 가만히 안 놔두겠다. 여행은 가냐" 등 장기간 성적 언동에 괴로웠지만 비정규직 신세인 탓에 참다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후에야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A씨는 반성은 커녕 신고 다음날 피해 여성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얘기를 하지 왜 민원을 넣었냐"고 따졌다.

심지어 피해 여성과 함께 근무하는 직원에게 전화해 "그런 말 들은 적 없다고 말해 달라"며 은폐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시 시민인권보호관실의 조사 과정에서도 "농담을 한 것 같은 데 피해 여성이 잘못 받아들인 것 같다"며 성희롱 언사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은폐 시도에 대해서도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를 해달라고 말했을 뿐"이라며 부인했다. 그러나 시민인권보호관실은 피해 여성이 제출한 녹음 파일, "A씨가 평소에도 성희롱 발언을 많이 한다"는 주변 동료들의 진술 등을 근거로 A씨의 성희롱을 인정하고 인사 조치를 권고했다.

퇴근길에 "껌이 붙었다"며 같은 팀 동료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 공무원 B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가 아니라 옆에 있던 동료의 손이 피해자의 옷을 스쳤을 수도 있는 데 착각하는 것 같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B씨의 주장은 당시 옆에서 지켜봤던 다른 동료의 증언, 사건 직후 동료들에게 보냈던 카카오톡 메시지, 사건 다음달 피해 여성을 만나 사과했던 녹음 파일 등에 의해 허위로 드러났다.

같은 사업소 여직원 3명을 상습적으로 성희롱한 C씨도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는 여성들을 껴안고 뽀뽀하고, 허리와 어깨를 만지거나 쓰다듬는 등 성추행을 일삼았다. "남자친구와는 하면서 나하고는 아안 하냐"는 등 언어적 성희롱도 지속적으로 했다. 그러나 C씨는 "피해 여성이 갑자기 울어 어깨를 두드린 적이 있지만 다른 신체적 접촉을 한 적은 없다"는 등 변명으로 일관했다. 다른 피해여성을 노래방으로 불러내 강제로 부르스를 춘 것에 대해서도 "노래만 부르고 나왔다, 공무직이 되게 해주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C씨의 거짓말은 주변 동료들의 일관된 수많은 목격담,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진술과 당일 기록, 휴대폰에 저장된 문자메시지, 인터넷 다운로드 기록 등에 의해 기각됐다.

파견업체 여직원에게 "나랑 사귀자, 내 아이를 낳아주면 아파트를 한 채 주겠다"는 등 충격적 성희롱을 한 D씨도 자신의 언행을 일체 부인했다. 그러면서 "지인의 얘기에 빗대 돈 많은 사장을 만나서 살다가 임신을 하면 아파트를 하나 해달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시민인권보호관은 당시 피해 여성이 지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와 지인의 메모 등을 근거로 피해 여성의 주장을 인정했다.

같은 팀 동료 여성에게 "신랑이 밤일은 잘해"라고 말했다가 성희롱으로 인정된 사례도 마찬가지다. 가해자 E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이 사건 발생 직후 피해 여성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는 증언을 해줬고, 결국 E씨의 성희롱 발언은 인정됐다.

시민인권보호관실은 "가해자들이 자신을 변명한다며 피해자와 피해자를 돕는 이들을 비방하고 때로는 악의적인 소문을 유포하고 있다"며 "이러한 2차 피해 발생에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 철저히 규명하고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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