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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왜 그 많은 사람이 죽었소' 유족 질문에 연구 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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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CBS 박사라 기자

노컷뉴스

여순사건 70주년을 맞아 만난 여순사건 역사학자 주철희 박사는 "여순은 당당한 시민들의 저항정신이었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사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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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월 19일 여수에서 발생해 순천 광양 구례 보성 등 전남지역 대부분으로 확산된 여순항쟁 70주년을 맞았지만 정확한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 특별법 제정, 추모식 대통령 참석 등은 계속 요원한 실정이다.

전남CBS는 여순항쟁 70주년을 맞아 연속 특집기획보도를 마련했다.

마지막으로, 20년 간 여순사건 역사에 대해 연구해 온 여순사건 역사학자 주철희(53)박사를 취재했다.

▲'여순사건' 정체성 찾는 연구 매진

"여순은 당당한 시민들의 저항정신이었으며 현대 민주주의의 토대입니다."

10.19 여순사건 70주년을 맞아 만난 주철희(53) 박사는 여순사건의 정체성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여순사건 역사학자인 주철희 박사는 가해자 중심으로 기록된 여순사건을 봉기한 군인들, 피해 입은 지역민의 입장에서 새롭게 해석하면서 여순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매진해왔다.

여수가 고향인 주 박사는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여순사건 구례지역 피해자 조사를 책임지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대한민국 근현대사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만큼 여순사건을 심도 있게 다룬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차 찾은 구례의 한 산골 마을에서 60대 유족 한 분을 만난 것이 연구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 유족이 '이런 조사를 안했으면 좋겠다. 매번 피해자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조사하지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울림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던 이유가 뭐냐'는 유족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내가 공부가 안 된 상태에서 조사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에 인터뷰를 중단하고 내려왔다"고 덧붙였다.

그날 이후 주철희 박사는 조사를 중단하고 4일 동안 그 질문을 곰곰이 생각했고 다시 유족을 찾아갔다.

그는 "여순사건은 교과서에 기록될 만큼 사건이 아닌 '역사'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당신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공부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말을 전하고 마을을 내려왔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그날 이후 모든 강의를 접고 전북대 사학과 석·박사과정에 입학해 오롯이 여순사건 연구에만 매진했다.

여순사건에 대한 언론자료와 미국 보고서, 당시 증인들의 기록을 남긴 일기, 그 시대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을 모으기 위해 방방곡곡을 찾아다녔다.

▲'여순항쟁' 명명 당위성 밝혀

이 시기에 그가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은 여순사건이 국가에 의해 왜곡됐다는 것이었다. 그는 2013년에 출간된 저서 '불량국민들'을 통해 왜곡 사실을 낱낱이 공개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국민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국민정신을 개조하기 위해 행해진 '민심작흥운동'이 여순사건 때도 일어났다는 것에 집중했다.

주철희 박사는 이러한 문화 행태를 '반공문화'로 정의하고 반공문화가 탄생된 배경과 우리 삶에 어떤 방식으로 깊숙이 개입했는지를 연구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 논문은 미국의 저명한 인문사회 학회지에서 올해 가장 같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차지했고 학회지에서 편집위원으로 원하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 업적 중 여순사건이 '여순항쟁'으로 명명돼야 하는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건, 학살, 항쟁, 운동, 혁명의 개념을 우리나라 최초로 정리한 일을 보람된 성과로 꼽았다.

주철희 박사는 "여순사건은 부당한 명령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점에서 당연히 여순항쟁이란 명칭으로 정립돼야 한다"면서 "모든 역사의 명칭에는 사건의 성격이 들어 있다으며 여순사건도 역사적 재조명고 함께 역사적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중 인식 변화 위해 소설 창작

주 박사는 역사는 대중의 인식에 따라 흘러간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이유로 여순사건을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여순사건을 주제로 한 소설 세 편을 완성했다.

이 소설 중 한편은 '나의 침묵 너의 기억'란 제목의 소설인데 실제로 존재했던 유족 두 가족의 이야기를 실은 것으로 완성까지 무려 8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 같은 소설을 통해서 대중들이 여순사건의 역사에 대해 쉽게 접근하는 게 그의 목표 중 하나다.

주 박사는 50대의 젊은 나이이지만 지병을 앓고있고, 지금까지 무려 네 번의 큰 수술을 받았다.

가족들이 여순사건을 연구하는 그의 열정에 응원하면서도 악화된 건강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철희 박사는 마지막으로 사건이라고만 하지 말고 연구를 토대로 입증되고 있는 '항쟁'이란 용어를 제대로 써야 할 것을 강조했다.

"정부나 군의 입장이 아닌, (봉기한) 군인들이나 지역민 입장에서 합당한 정명이 돼야 합니다. 70주년을 맞아 지역민이 여순항쟁을 제대로 기억해주고, 정확한 이름으로 불러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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