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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보크사이트의 땅 기니에 내린 ‘자원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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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 원료 세계 3번째 생산국

정부 광산개발 부지 매입과정

토지 등록 못한 주민들 헐값에 넘겨

우물-공기 오염 등 환경파괴 피해

참다못한 주민들 작년 두 차례 폭동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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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국가 기니는 지난해 4500만 t의 보크사이트를 생산했다. 호주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생산량이다. 보크사이트는 자동차 비행기 음료수캔 제조에 쓰이는 알루미늄의 원료여서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 기니 주민들에겐 좋은 일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니의 보크사이트 채굴 현장을 찾은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조사단에 한 주민은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게 뭔가?”

HRW는 기니의 보크사이트 채굴 지역 30개 마을 주민과 정부, 기업 관계자 300여 명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를 4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무분별한 보크사이트 채굴로 신음하는 기니 주민들의 실태가 담겼다.

기니 정부는 2015년부터 보크사이트 수출 성장을 위해 힘써 왔다. 다국적 광산 개발 및 생산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보크사이트 수출에 필요한 철도와 항구도 만들었다. 이런 노력으로 2015년 당시 약 1700만 t이던 보크사이트 수출량이 2017년엔 4500만 t으로 크게 늘었다. 수출량 세계 5, 6위 수준에서 3위까지 올라온 기니 정부는 보크사이트 최대 수출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출 증가가 채굴 지역 주민들에겐 달갑지 않다. 광산업은 주민들의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기니 정부는 토지법에 따라 광산 개발에 필요한 땅을 주민들로부터 사들였다. 그러나 기니에는 주인이 명확한 땅보다 소유권이 제대로 등록돼 있지 않은 땅이 훨씬 많다. 정부가 2001년 토지법을 만들며 토지 소유권을 등록하게 했지만 정책이 잘 알려지지 않아 실제 등록한 주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법적 토지 소유권이 없는 주민들은 물려받아온 토지를 헐값에 정부에 넘겨야 했다. 농사를 지어 먹고살던 땅이 대부분이어서 이들은 땅과 일자리를 동시에 잃었다.

다국적 광산 개발기업이 들어서며 전기도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알루미늄은 보크사이트를 전기로 분해해야 얻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채굴에 필요한 시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물이 오염됐고, 맹그로브숲은 철길이 갈라놨다.

결국 참다못한 주민들은 지난해 4월과 9월 폭동을 일으켰다. 지역 주민들의 권리를 보호할 법적인 토대를 마련하지 않은 채 광산 개발에만 몰두하는 정부를 상대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수천 명의 청년이 정부기관에 난입해 시위를 벌였다. 광산개발 회사의 작업을 막겠다며 검문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HWR 보고서에 나타난 기니 정부의 입장은 “정부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광산 개발) 기업의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광산정책 고위 관계자는 “기업 투자가 늘고 세수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도 주민들이 얻는 것은 더러운 공기뿐이다. 그들의 분노가 쌓이면 무엇이든 촉발제가 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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