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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EU, 범죄 악용 소지 '황금여권'과의 전쟁 나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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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키프로스 등 '블랙리스트' 21개국 명단 공개

조세 회피 노린 중동이나 중·러 갑부들이 주 고객

유럽연합(EU)이 거액을 받고 시민권을 판매하는 이른바 ‘황금여권’에 대한 규제를 검토 중이라고 영국 가디언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돈만 있으면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나라의 시민권을 살 수 있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지적에 더해, 조세 회피 등 각종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EU의 이 같은 입장은 이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황금여권 블랙리스트 21개국의 명단을 공개한 가운데 나왔다.

경향신문

몰타항.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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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가 공개한 황금여권 블랙리스트에는 몰타와 키프로스 등 EU 회원국 2곳을 포함해 총 21개국이 올랐다.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연합 등을 제외하면 경제 규모가 작거나 자치령인 섬지역들이 대부분이다. 그중에서도 앤티가바부다, 바하마 등 시민권 판매에 적극적인 카리브해 국가들은 2006년부터 약 1만6000개의 시민권을 팔았다. OECD는 전체 시민권 시장을 30억달러(약 3조4000억원) 규모로 추산한다.

황금여권 제도를 운영 중인 국가는 명단에 언급된 국가들 외에도 많다. 영국이나 스페인에서도 일정 금액 이상 투자하면 시민권이나 거주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가 있다. 한국에서는 제주도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가 ‘부동산 투자 이민제’를 시행 중이다. 다만 이번 OCED 명단에는 그중에서도 조세 회피 등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 제도를 운영 중인 국가만 포함됐다. 역외금융자산에 10% 미만의 낮은 세율을 부과하거나 최소 90일 이상의 체류 의무도 부과하지 않는 나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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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 몰타가 대표적이다. 현지 몰타투데이에 따르면 몰타는 ‘개인투자자프로그램’ 제도를 통해 약 65만유로(약 8억5000만원)에 시민권을 판매한다. 이 밖에 의무적으로 사야 하는 정부 채권이나 주식을 합치면 총비용은 100만유로까지 올라간다. EU 회원국이라 다른 유럽 국가에서의 생활이 자유로운 것도 장점이다. ‘EU 시민권’을 구매하고 싶은 중동, 중국, 러시아의 ‘슈퍼리치’들이 주 고객층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가디언이 입수한 키프로스의 시민권 거래 명단에는 러시아 전직 상원의원, 우크라이나 최대 민영은행 창립자, 시리아 대통령의 사촌 등 전 세계 억만장자들이 다수 포함됐다. 당시 키프로스 재무부는 “키프로스의 영주권을 가지고 사업 기반을 확립할 진정한 투자자를 위한 제도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황금여권 제도가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현재 EU에는 이 같은 황금여권 제도를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무분별한 시민권 판매가 유럽 전체의 안보 위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다. 지금은 키프로스 시민권을 가진 영국인이 자신을 키프로스인이라고 밝힐 경우, 그가 가진 역외 자산 계좌가 영국이 아닌 키프로스 세무당국에 신고된다. 국가 간 정보 공유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세 회피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최근에는 EU의 불법 정치 자금을 추적해 온 몰타 언론인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의 피살 사건에 유명 시민권 판매 기업이 연루돼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베야 조로바 EU 사법부문 집행위원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시민권을 구매할 수 없는 이들에게 (황금여권은) 불공정하다”며 “EU에 약한 부분이 생겨 진입이 용이해지면 유럽 전역에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EU는 올해 말까지 황금여권에 대한 규제 강화를 권고하는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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