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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선고유예와 집행유예,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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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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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80] 유죄가 인정되면 그 죗값에 맞는 형을 정한다. 죗값으로 적게는 벌금 5만원에서 가장 많게는 사형까지가 있다. 이 죗값에 해당하는 형을 판결로 선고하고, 판결이 확정되면 판결로 선고한 형을 집행한다. 이게 원칙이다. '유죄자 필벌'이고 죄인에게 죗값을 묻는 게 정의 아니던가.

그런데 유죄임을 인정해 형까지 정해놓고는 선고를 유예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선고유예다. 유예(猶豫)라는 말은 뒤로 미룬다는 의미니까 나중에 미뤄뒀던 형을 선고해서 언젠가는 죗값을 묻겠다는 말일까? 그런 의미는 아니다. 2년간 지켜봤다가 2년간 대과가 없으면 아예 면소(免訴)의 효력을 부여한다.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됐거나 확정판결이 선고됐던 사건에 대해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면 내려지는 게 면소판결이다. 형사재판을 걸 수 있는 조건이 결여됐는데 공소를 제기했으니 재판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끝내겠다는 게 면소 판결이다. 선고유예 판결이 있고 유예기간 2년이 경과하면 이와 동일한 효력이 부여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법원이 유죄를 인정한 가운데 피고인에게 가장 유리한 판결이 선고유예다. 그만큼 선고유예는 이례적이고 또 형사재판에서 받아내기도 어렵다.

그나마 집행유예라는 말은 많이 듣는 말이다. 흔히 집유라고 약칭하는데 신문기사 같은 곳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집행유예는 판결에서 선고한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것이다. 앞에서 본 선고유예가 유죄를 인정하고 죗값에 상응하는 형을 정해두고 그 형을 판결로 선고하는 것을 유예하는 것과는 다르다. 집행유예는 형을 판결로 선고하기까지는 하되 다만 그 집행만을 유예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행유예에는 '피고인을 징역 4월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1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는 판결문이 나오지만, 선고유예에는 '피고인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는 판결문이 나온다. 집행유예 판결은 그 주문을 통해 피고인이 유죄라는 것과 그 유죄의 대가가 얼마다라는 것까지 분명하게 밝혀지지만 선고유예 판결은 적어도 주문에서만큼은 피고인이 유죄라는 것만 밝히고 정해진 형이 무엇인지가 나오지 않는다. 물론 그 죗값에 해당하는 형벌이 무엇인지는 판결 이유에 적어놓기는 한다.

선고유예나 집행유예나 지금 당장 피고인을 교도소로 보내기보다는 일정한 기간 사회 생활을 계속하게 하고 과연 이 사람이 충분한 반성을 통해 새 사람이 됐구나 하는 게 확인되면 혜택을 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선고유예는 2년 동안 국가가 지켜보다가 아무런 대과가 없으면 면소 효력을 부여한다. 집행유예는 그 기간이 그때그때마다 판결로 정해지는데, 이 집행유예 기간이 무사히 경과하면 형 선고의 효력이 상실된다. 선고된 형의 효력이 상실되므로 이제 더 이상은 형을 집행할 수 없게 된다. 아까 봤던 판결문을 기준으로 한다면 집행유예 기간 1년이 무사히 지나는 경우 '피고인을 징역 4월에 처한다'고 선고했던 판결의 효력이 상실된다는 의미다. 이제 교도소에서 4개월간 복역해야 할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

집행유예는 선고한 형의 집행을 잠시 보류하는 것이라서 집행유예기간 중에 사고를 치면 바로 집행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선고유예는 형의 선고가 보류된 것이므로 유예 중에 사고를 치면 법원이 형을 선고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번주에 '피고인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는 문구가 적힌 판결문을 받았다. 1심에서 요지부동이었던 판결문을 받고 망연자실했다가 2심에서 이 판결문을 받아 더욱 감개무량했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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