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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허위조작정보, 고소·고발 없어도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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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법무 “초기 엄정 대응”

재판 없이 정부 ‘선제적 삭제’ 조치…학계 “위험한 생각”

피해자가 원해야 처벌하는 명예훼손죄 ‘인지 수사’ 우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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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법무부 장관(66·사진)이 16일 이른바 ‘가짜뉴스’로 불리는 허위조작정보 문제를 사건 초기부터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 엄단 방침을 표명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 없이 선제적으로 문제가 되는 정보를 삭제 조치한다거나 검찰이 명예훼손 사건을 고소·고발도 없이 인지해 수사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장관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허위조작정보 사범 발생 초기 단계부터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체계를 구축하여 배후에 숨은 제작·유포 주도자들까지 추적 규명하고, 허위성이 명백하고 중대한 사안은 고소·고발 전이라도 수사에 적극 착수하는 등 엄정 대처하도록 검찰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허위조작정보를 제작·유포하는 것은 형법상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되는 명백한 범죄라고 규정했다. 허위조작정보란 객관적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을 의미하며, 실수에 의한 오보나 근거 있는 의혹 제기, 의견 표명 등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기준도 제시했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는 적극 보장되어야 하지만 진실을 가리는 허위조작정보의 제작·유포는 오히려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교란해 민주주의 공론의 장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허위성이 확인돼 유죄가 확정된 기존 사례도 보도자료에 적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방북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허위 내용을 인터넷TV로 방송했다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받은 사례,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 게시판에 “세월호 내 단원고 학생들, 여교사들이 죽음 직전 성행위를 하였다”는 등의 허위글을 게시해 징역 1년의 실형을 받은 사례 등이 열거됐다.

박 장관은 지금까지 허위성이 확인돼 처벌된 사례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경찰 등 유관기관에 제공하고, 인터넷 모니터링과 삭제 요청을 진행할 방침이다. 또 정보통신망법에 허위조작정보 등에 대한 삭제 요청권을 규정하는 제도 개선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선 우려를 제기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현행법상에서 어떤 조항을 근거로 문제가 되는 정보를 선제적으로 삭제 조치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며 “재판에 넘겨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자체 판단해 삭제한다는 건 위험한 조치”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이러한 흐름이 있어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함께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반대했는데, 정권을 잡은 다음에 이렇게 거꾸로 하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성명을 내고 “법무부의 이번 대책은 표현의 자유 후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면서 “법무부의 기준에 따라 사회적 해악이 분명한 허위조작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검찰 내에서는 사인 간 명예훼손을 검찰이 인지수사할 경우 형사법적 개입이 과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다. 한 검찰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정치적인 사건들을 명예훼손으로 처리하다 보니 당사자들의 문제에 검찰이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는데, 검찰이 인지수사까지 나서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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