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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단독]"유통기한? 늘리면 되지!"···어느 미용회사의 ‘기막힌’ 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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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약, 샴푸 등을 미용실에 공급하는 미용전문회사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판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회사 측은 “실수였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사용해도 인체에 크게 해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관련 정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유통기한 늘려놓고 “인체에 무해”

서울 광진·성동구 일대에서 ㄱ미용전문회사의 판매 대리점을 운영하던 유관형씨(44)는 지난해 12월 염색약 등을 납품하던 업체와 거래가 끊겼다. 이 업체는 제품 본체와 포장 박스에 찍힌 유통기한 날짜가 다르다며 반품했다. 반품한 제품 본체에는 2014년에 제조됐다는 의미의 14C03이라는 고유번호가 각인됐다. 그런데 제품을 포장한 박스에는 ‘2016.6.12’이라는 제조일자가 찍혔다.

안산·시흥시 일대에서 유씨와 같은 회사 대리점을 운영하는 황용민씨(40)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난해 6월 ㄱ사로부터 받은 염색약 본체와 포장 박스의 제조일자가 2년 정도 차이가 났다. 회사에 항의했지만 “반품하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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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형씨가 ㄱ회사로부터 받은 유통기한 위·변조 제품/유관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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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사의 유통기한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7월 황씨는 ㄱ사 직원으로부터 “사장님에게 제일 먼저 알려드린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70% 할인해서 팔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해당 문자는 이후 유씨에게도 전송됐다. 유통기한이 지나 반품하겠다고 하면 “그래서 70% 할인해주지 않았느냐. 싫으면 반품하라”는 식이었다.

이에 대해 ㄱ사는 “잘못은 맞지만 고의는 아니다”는 입장을 냈다. 경향신문과 만난 이 회사 관계자는 “반품된 제품을 재포장 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한 것 같다”며 “제품본체와 포장 상자의 유통기한이 상이한 것은 전체의 3%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떤 조치를 취했느냐는 질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관계자는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모아 반품 신청을 하면 받아 줄 수는 있다”면서도 “이미 미용실에 팔린 제품을 리콜하거나 일일이 방문해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미용실에서 사용됐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하면서도 “점주들이 잘 확인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70% 할인해서 판매한 것에 대해 “유통기한이 지나도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며 “싸게 사서 쓰라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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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황용민씨가 ㄱ회사 직원으로부터 받은 문자 내용/황용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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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ㄱ사가 유통하는 샴푸 중에는 2017년 의약외품에서 화장품으로 전환된 제품이 있다. 식약처는 미리 만들어 둔 용기를 한꺼번에 폐기하면 환경오염이 될 수 있다며 한시적으로 기존 용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5월 화장품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의약외품이었던 양모제, 탈모샴푸 등이 화장품으로 변경되면서 내린 조치다. 단, 내용물은 새로 생산된 것이어야 하고 새 유통기한 등을 표시한 ‘오버 라벨링(정정표기)’을 하도록 했다식약처는 미리 만들어둔 제품 용기는 정정표기만 해서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업체들이 보통 6개월에서 1년치 정도의 용기 여유분을 미리 생산한다”며 “이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 혼재해서 사용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ㄱ사는 2015년 의약외품으로 출고했던 샴푸를 회수해 유통기한을 2020년으로 정정표기해 재출고했다. 해당 제품의 유통기한은 2018년 5월까지였다. ㄱ사 관계자는 “샴푸는 제조업체가 생산한 것을 용기에 담아 판매만 했다”며 “제조업체에 문의해 보니 ‘2020년까지는 사용해도 좋다’고 해서 정정표기했다”고 주장했다. 또 “무상으로 샴푸를 대리점에 배포했고, 미용실에서 고객에게 사용해보고 피드백을 받으려는 의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조업체 측은 “올해 2월 ‘유통기한 연장은 법적 문제가 있다’고 통보했다”며 증거 자료를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ㄱ사는 총 3종류의 샴푸 7960개에 대해 유통기한 연장을 문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가 시작된 후에야 ㄱ사는 해당 샴푸의 출고를 금지했다. 하지만 이미 팔려 나간 제품은 여전히 미용실에서 판매중이다.

소비자들은 정정표기된 제품이 기존 용기에 ‘새 제품을 담은 것인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에 정정표기만 한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식약처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화장품은 사후 관리 시스템”이라며 “신고가 들어오거나 상시검사를 통해 적발한다”고 말했다.

ㄱ사 관계자는 “먹는 제품이 아닌 미용제품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사용해도 인체에 큰 문제가 없다”며 “인체에 유해했다면 회사가 망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리점주들은 “제품 사용 후 발생하는 고객 불만을 대리점이 듣기 때문”이라며 “유통구조 상 본사에 항의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ㄱ사는 6개월 동안 유통기한을 속이고도 적발되지 않았다. 대리점은 문제를 알았지만 생계를 이유로 내부고발을 꺼렸다.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 몫이 됐다.

■‘갑질’ 가능한 폐쇄적 유통구조…소비자도 피해자로

미용전문회사가 생산한 제품은 폐쇄적인 구조로 유통된다. 회사는 각 지역에서 자사 제품을 유통할 대리점들과 계약을 맺고, 대리점은 미용실에 해당 회사 제품을 독점적으로 공급한다. 제품 가격 하락을 막기위해 인터넷 판매는 엄격하게 금지된다.

유통구조가 폐쇄적이다보니 제품을 공급하는 미용전문회사는 ‘갑’이 된다. 거제도·통영 일대에서 미용전문회사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모씨(35)는 “본사에서 대리점을 자르는 것은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 회사의 대리점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며 “갑자기 월 1000만원어치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 계약해지 사유였다”고 말했다.

‘갑질’을 당해도 대리점은 항의할 수 없다. 한 대리점주는 “고객들이 이름이 알려져 있는 회사의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명 회사 제품을 미용실에 공급할 수 있느냐가 대리점 성공을 좌우한다”며 “결국 갑질을 견디며 대리점을 운영하거나 이 업계를 완전히 떠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대리점주들은 공통적으로 ‘3대 갑질’ 회사를 지목했다. 한 회사는 전년도 대비 매입액이 무조건 높아야 했다. 예를 들어, 전년도에 대리점이 회사로부터 1000만원어치를 매입했다면 올해는 1100만원 어치를 매입해야 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부족한 액수만큼의 제품이 강제로 배달되거나 계약 해지를 당하는 식이다.

다른 두 회사는 대리점이 매월 정해진 액수만큼 물건을 매입해야 한다. 시장상황에 따라 매입액을 줄이면 계약 해지 사유가 된다. 3개 회사는 미용업계를 선도하는 업체들로 후발 회사들이 벤치마킹하고 있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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