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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中 진출 20년 만에 매출 40배 '껑충'…농심은 어떻게 '대륙'을 사로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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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의 중국 사업이 올해로 만 20년을 맞았다. 1999년 독자사업 첫해 매출 700만달러(약 79억원)로 시작한 농심 중국법인은 올 상반기 약 1억3000만달러(약 1470억원)를 기록, 연말까지 2억8000만달러(약 3160억원)의 최대 실적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누적매출도 상반기를 기점으로 20억달러(약 2조2600억원)를 넘어섰다. 농심은 외국기업이 쉽게 성공하기 힘든 중국시장에서 20년 이상 꾸준히 성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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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신라면의 새로운 광고모델로 발탁된 배우 하정우. 농심 제공.


농심은 1996년 상하이에 생산공장을 가동하면서 중국에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대만의 한 회사와 합작형태로 진출했으나, 장기적이고 주도적인 중국사업을 위해 1998년 지분을 인수하고 1999년부터 독자노선의 길을 걸었다. 동시에 청도공장(1998년), 심양공장(2000년) 등을 가동하며 중국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농심 조인현 중국법인장은 “1990년대말 중국시장은 저가라면이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었고, 소비자들도 한국식품에 큰 관심이 없어 마트에 제품 입점조차 되지 않는 등 초창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장기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제품과 판매에 대한 확고한 전략이 필요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농심은 세계 최대 시장 중국에서 성공을 위해 한국의 매운맛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광고나 마케팅은 중국 현지 문화와 트렌드를 우선으로 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했다.

‘우리 브랜드를 중국에 그대로 심는다’는 전략 아래 농심은 한국을 대표하는 신라면과 너구리 등을 시장에 내놓았다. 현지화 된 제품과는 달리 한국의 얼큰한 맛은 물론 제품의 규격, 디자인, 브랜드까지 그대로 시장에 선보였다. 중국라면과 유사한 제품을 출시하면 단기적인 매출을 가져올진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농심의 브랜드가 사라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신라면은 중국사업의 대표주자로 주요 대형마트와 편의점, 타오바오 등 온-오프라인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2018년 중국 인민망이 발표한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명품’에도 선정됐다.

중국은 그릇에 면과 스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데워먹는 포면(包面) 문화가 보편적인데, 농심은 한국의 라면 조리법으로 중국 라면업체들과 정면승부를 펼쳤다. 낯선 식문화에 많은 소비자들이 외면했지만, 농심은 ‘라면은 끓여 먹어야 맛있다’는 구호 아래 곳곳에서 시식행사를 벌였다. 중국 현지 유명 라면업체들도 끓여먹는 라면 신제품을 지속 출시할 만큼 한국식 라면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농심은 시중 저가 제품과 차별화되는 ‘고급 이미지’를 고수했다. 현지 제품과 차별화되는 맛과 품질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이후 개방정책에 따라 중국인들의 소득수준도 함께 올라가면서 한국의 신라면을 찾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어났다.

농심 관계자는 “중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이 중국인들이 신라면을 찾는 가장 큰 이유”라며 “신라면의 빨간색 포장과 매울 辛자 디자인을 두고 중국인들도 종종 자국 제품이라고 여길 만큼 신라면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설명했다.

농심은 상하이, 칭다오 등 동부 해안 대도시에서 충칭, 시안 등 서부 내륙도시로 영업망을 지속 확대 중이다. 커지는 온라인 시장에도 적극 진출하는 등 중국시장 공략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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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결승전에서 이세돌9단과 중국의 커제9단이 대국을 펼치고 있다. 농심 제공.


중국 현지 문화와 트렌드를 따른 농심의 대표적인 마케팅은 ‘신라면배 바둑대회(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신라면배는 농심의 중국사업 20년과 궤를 같이한다. 1999년 창설 이후 지금까지 중국 인기스포츠인 바둑을 통해 ‘辛라면을 각인시킨 辛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심은 중국 진출 당시 바둑에 대한 열기가 높기로 유명한 중국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인지도와 신라면 브랜드를 동시에 부각시키고자 했다. 1999년 7월, (재)한국기원과 함께 국가대항전인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을 창설했다. 기업의 제품명을 대회 타이틀로 내세우기는 세계기전 중 신라면배가 처음이었다.

제1회 대회는 한국의 조훈현, 이창호, 중국의 마샤오춘, 창하오, 일본의 요다노리모토 등 세계 정상급 기사들이 참가해 바둑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농심으로선 바둑대회 목적이 중국시장 공략에 있는 만큼 중국에서 마케팅과 홍보를 최대한 집중했다. 대국장 인테리어를 비롯해 팜플렛, 제품전시, 기념품, 시식행사 등 농심과 신라면을 알리는 전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현지 소비자들은 대국 관전을 위해 대국장이나 TV 앞에 모여들었고, 이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신라면 소비로 이어졌다.

중국이 처음 우승했던 제9회 대회는 현지 700여개 언론사를 통해 집중 보도됨으로써 수백억 원에 해당하는 마케팅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매년 중국에서 치러지는 결승대회는 중국 CCTV, 상해TV, 인민일보 등 다수의 중국 언론사에서 보도할 정도로 관심이 크다.

조인현 중국법인장은 “언론보도와 입소문 등의 광고효과로 특약점과 대형마트 입점 등 유통망 확대를 가져온 덕분에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며 “신라면배가 사업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유창혁 사무총장은 “신라면배는 세계기전 가운데 유일하게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가대항전이어서 선발된 기사들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중국 위기협회(圍棋協會) 창하오 부주석은 “중국 내 50여 개 기전 중 ‘한-중-일 바둑 삼국지’로 불리는 신라면배가 가장 인기가 많고 관전열기 또한 뜨겁다”고 강조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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