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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특파원칼럼]셀럽의 엇갈린 정치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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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가 휩쓸고 간 워싱턴에서 최근 떠오르는 화제는 래퍼 카니예 웨스트와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대결이다.

경향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인 웨스트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쓰여진 빨간 모자를 쓰고 백악관을 찾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형제”라고 부르며 브로맨스를 자랑했다. 그는 “이 모자를 쓰면 슈퍼맨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빨간 모자의 힘을 묘사했고, “트럼프는 영웅의 여정을 밟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는 노예제를 금지한 수정헌법 13조 무용론도 폈다.

그보다 며칠 전인 6일 스위프트는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자신의 고향인 테네시주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상·하원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민주당 필 브레드슨 상원의원 후보의 상대인 공화당 마샤 블랜번 후보를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블랙번의 의회 투표 기록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는 남녀동등임금법에 반대했고, 여성폭력방지 법안에도 반대했다. 그는 업주들이 동성 커플에 대한 서비스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의 팔로어들에게 유권자 등록을 하라고 종용했다.

40대 흑인 남성 웨스트와 20대 백인 여성 스위프트의 엇갈린 선택은 둘의 악연과 맞물려 중간선거 최고의 대결로 화제가 되고 있다. 둘의 악연은 2009년 MTV 비디오뮤직어워드(VMA)에서 시작됐다. 웨스트는 신인 스위프트가 최고 여성 가수 비디오상을 받자 시상식 무대로 올라가 마이크를 빼앗고 “비욘세 최고”를 외쳤다. 이후 두 사람은 신곡에 상대를 ‘디스’하는 내용을 꾸준히 담아왔다.

두 사람의 변화도 흥미롭다. 시카고 출신인 웨스트는 저소득 흑인들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등 흑인 인권 증진을 강조해왔다. 2005년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향해 “흑인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발언이나 정책에는 유독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다. 심지어 지난 5월에는 “노예제가 400년 지속됐으면 선택”이라며 노예제를 흑인의 책임으로 돌렸다가 비난에 휩싸였다.

반면 스위프트는 비정치적 연예인이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알트라이트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자신을 ‘아리아족 여신’으로 묘사하며 인종주의적 의제 고취에 활용할 때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침묵하지 않겠다며 셀러브리티(셀럽) 영향력의 정치적 활용을 시작했다. “나는 피부 색깔과 성에 상관없이 모든 미국인들의 고귀함을 위해 싸울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투표하지 않겠다.”

둘의 정치적 행동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스위프트의 정치참여는 호응을 얻고 있다. 그의 유권자 등록 종용 후 이틀 만에 미국 전역에서 16만6000명이 추가로 유권자 등록을 했고, 그중 6만2000명 이상이 테네시주에 거주하고 있다. 신규 등록자의 42%가 스위프트의 팬층인 18~24세의 젊은 유권자들이다. 반면 웨스트는 논란은 일으켰지만 팬들을 트럼프 편에 서게 하지는 못할 듯하다. CNN에 출연한 흑인 패널들은 오히려 웨스트를 “관심병자” “흑인이 글을 못 읽을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비난한다. 친트럼프 채널인 폭스뉴스가 흑인 보수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치켜세울 뿐이다.

식상하지만 이들이 주는 교훈은 있다. 둘의 사례는 셀럽들의 정치참여가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지를 묻게 한다. 셀럽들의 정치참여가 권력자의 병풍 역할에 그치거나 권력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냉소적 반응을 받기 십상이다. 웨스트가 그 사례다. 더불어 셀럽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소신 표명은 환영이지만, 그들을 좋아하는 것과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좇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도 이 기회에 한번 더 생각해보자.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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