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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따뜻한 손이 사람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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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듣는 이의 가슴을 적실 수 있는 곡이며, 가장 좋은 강의는 웃기는 강의가 아니라 청중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는 강의이다. 이와 같이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좋은 관계란 필요에 의해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가 얼마만큼의 공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깊이는 달라질 것이다.

매일경제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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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에 따라 만나는 관계는 보이지 않는 그 주고받음의 균형이 깨어질 때 점점 멀어질 수 있다. 이 말은 냉정한 세상 당연한 이치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 즉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깊이가 깊은 사이는 다른 사이보다 확연히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말이다.

공감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찌 보면 공감이란 측은지심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도 있다. 측은지심은 맹자의 사단설(四端說) 가운데서 나오는 말로, 《맹자》 〈공손추편(公孫丑篇)〉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즉 인간으로서 느끼는 당연한 마음, 남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측은지심, 공감 이러한 말은 굳이 가진 사람이 또는 지위가 높은 사람만이 아랫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있다. 기쁠 때 함께 웃어주고 슬플 때 옆에서 어깨를 기대어주는 것이 바로 공감이며 측은지심인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사업을 크게 하고 있던 건설사 대표가 진행 중인 사업이 계속 지연되어 힘들어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겉으로는 늘 웃고 있었지만, 공사비를 여기저기에서 빌려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되지 않으면 부도날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고 부도가 나면 그간 도와주지 않고 관망만 하던 관련업계의 사람들은 이익을 보려고 그때서야 덤벼들 기세라는 말까지 무성하기만 했다. 그야 말로 듣기만 해도 그가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닐듯하다. 그 때문인지 매일 저녁이면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인지 그는 술자리를 자주 만들었었다.

이럴 때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여러 목적과 이유로 곁에 있는 사람들은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고비를 맞고 있는 그의 마음이 어떠할까를 생각하는, 친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를 향한 마음과 말은 어떠해야 할까? 가식적인 말이 아닌 따뜻한 말과 손으로 전해오는 체온이 그에게는 지금 가장 필요한 선물이 될 수 있다.

좋을 때만 옆에서 웃고 함께하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풍파와 고비를 넘기는 동안, 믿어주고 같이 울어도 주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친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지식과 지혜는 다른 것이다. 단지 돈이 많다고 해서, 세상을 오래 살았다고만 해서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즉 돈이 많은 사람들, 세상 경험이 많으신 팔순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조건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얼마나 주위에 자신과의 공감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이 세상은 더 행복하게 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혹 주위에 인생의 풍파를 맞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 건네는 따스한 손길이 그를 살릴 수 도 있고, 평생 친구의 인연으로 갈수도 있을 것이다.

측은지심. 4차 혁명시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공감, 측은지심을 생각해보자. 남을 돕는 일이 곧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임을 명심하자.

[최경규 행복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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