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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 (토)

[매경포럼] 꽃보다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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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부부 교사를 하다가 몇 해 전 정년퇴직한 외삼촌 부부는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매월 받는 공무원연금이 부부 합산해 500만원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예금 금리를 2%라고 가정하면 30억원을 통장에 넣어둔 것과 같은 효과다. 외삼촌 부부가 '최상의 노후'를 보내고 계시니 나로선 흡족하다. 30여 년 교직에서 열정을 불태운 만큼 응당 받아야 할 대우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문제는 국민 대다수가 이렇게 넉넉한 노후를 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하긴 하지만 일반인과의 연금 격차가 너무 크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공무원연금 수령 최고액은 월 720만원으로 국민연금 최고액(204만원)의 3.5배를 넘었다. 용돈 수준의 국민연금을 받으며 '고단한 노후'를 보내는 보통 사람들 입장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공무원이 민간인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연금만이 아니다. 철밥통 '고용 보장', 더 이상 박봉이 아닌 '높은 보수', 여유로운 근무 여건 등 엄청난 혜택을 누린다. 금요일 오후 4시에 퇴근하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도 일부 중앙부처에서만 시행돼 민간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처럼 공무원과 민간의 격차가 점점 커지니 '대한민국은 공무원을 위한, 공무원의 나라'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공무원 삶의 안정성은 세종시의 높은 출산율에서도 나타난다. 온 나라가 저출산 몸살을 앓고 있지만 세종시는 3년 연속 전국 최고 출산율을 기록 중이다. 높은 출산율은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 94%, 야간 보육 서비스, 자유로운 출산휴가 등 아이를 키울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출산 절벽이 심각한데 공무원이라도 많이 낳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열악한 보육, 고용 때문에 출산을 망설이는 일반인들로선 씁쓸할 수밖에 없다. 젊은 청춘들이 생산적이고 도전적인 일자리 대신 공무원에 매달리는 것도 '월등한 혜택' 때문일 것이다.

과연 공무원들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큼 국민에게 특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나.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무사안일, 복지부동, 탁상행정 '3종 세트'는 공무원을 설명하는 수식어로 굳어진 지 오래다. 점심시간이면 대부분의 국가 행정서비스가 중단돼 급한 업무를 보러 갔다가 헛걸음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초·중·고 학부모 행사나 교사 면담도 교사 퇴근시간 이전에 모두 끝이 난다. 기업인들은 인허가권을 쥔 공무원들의 고무줄 규제에 애를 먹기 일쑤다.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지만 공무원이 되고 나면 '서비스 제공자'라기보다는 '규제 집행자'로 군림하려고 한다.

대국민 서비스 질을 높이고 구조조정과 인력 재배치를 통해 공무원 조직의 효율을 높여도 시원치 않은데 정부는 올해부터 2022년까지 5년간 17만4000명의 공무원을 추가로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정부 기조에 편승해 각 부처마다 공무원 숫자 늘리기에 혈안이 돼 있다. 지난 2년간 각 부처는 9만명 이상 증원을 요구했고 이 중 2만3000명 이상 정원이 늘었다. 특히 고용지원금을 집행하고 기업을 관리감독하는 고용노동부에는 1300명이 충원됐다. 공공 부문의 비대화는 규제 확대, 기업의 경제활동 옥죄기라는 악순환을 낳게 마련이다.

지금도 공시족이 연간 25만명에 이르고 서울 노량진 등 공시학원이 초호황을 누리는 등 고용 시장은 왜곡돼 있다. 공무원 증원은 공시 낭인만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17만명을 늘릴 경우 이들이 30년간 받아갈 급여는 327조원, 연금은 9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공무원연금은 매년 2조원씩 적자여서 세금으로 메우고 있는데 증원으로 인한 적자폭 확대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공무원으로 일자리를 늘린 그리스·아르헨티나의 경제 파탄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2016년 전체 일자리 중 공공 부문이 26%에 달한 아르헨티나는 위기가 닥치자 정부 부처를 절반으로 감축하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성난 공무원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반발하고 있다. '공무원 천국'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는 경고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일본에서는 민간 기업들이 채용을 늘리면서 공무원 인기가 뚝 떨어졌다고 한다. 우리도 공무원 숫자를 늘릴 게 아니라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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