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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 (토)

[기자 24시] 경제 정책의 한없는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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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유류세 인하.'

정부가 고유가에 대비해 이 같은 구상을 밝혔을 때 두 가지 이유로 놀랐다.

첫째는 유류세 인하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커지기도 전에 정부가 먼저 이 카드를 꺼냈다는 점이다.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 등 '재정규율'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 정책은 엉뚱한 곳만 배를 불릴 수 있다. 인하분이 소비자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공급·유통망 업체들 '호주머니'로 들어갈 위험성이 있다.

둘째는 환급금 확대 등 다른 '섬세한 처방'들이 누락됐다는 점이다. 화물 수송으로 먹고사는 업종에 맞춤형으로 유류세 환급금 상한선을 키우는 게 고유가에 대처하는 정부의 선행 조치였다. 이를 건너뛰고 보편적 세율 인하라는 '쉬운' 선택을 한 대목에서 '인기영합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노동정책은 이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시장 혼란마저 야기했다.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인상 유혹은 역대 어느 정부에도 있었다. 그러나 시장 상황을 무시한 무리한 인상폭은 고용주·근로자 모두에게 '기회의 상실'을 초래한다는 게 1938년부터 최저임금제를 시행해 온 미국의 경험칙이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업황 개선 등 미래희망 대신 '현상유지'라는 압박이 옥죄어온다. 새 일자리를 만들기보다 기존 일자리를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으로 대체하는 현장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근로자 역시 고용주에 맞설 임금 협상력(Bargaining power)이 위축된다. 저숙련 근로자일수록 고용주가 내민 저임금 '이면계약'에 서명을 하고 일자리를 지키는 무기력한 사례가 늘 수 있다.

이런 부작용을 무시하고 2년 연속 두 자릿수로 무리한 인상을 결행한 정부 태도를 보면 가벼움을 넘어 무지(無知)가 감지된다.

지난해 단행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도 그렇다. 미·중 간 무역전쟁으로 지금 중국에서는 외국 기업의 '탈출 러시'가 이뤄지고 있다. 보복 관세를 피해 한국으로 공장을 옮기려는 외투 기업은 선진국과 역행하는 법인세·최저임금 대목을 읽자마자 투자 검토보고서를 쓰레기통에 던질 것이다. 경제 정책은 국민과 기업에 다양한 '미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많은 경제 정책에서 미래에 대한 이런 '엄중한 인식'이 빠져 있다는 느낌이다.

[산업부 = 이재철 기자 humming@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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