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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 (토)

[World & Now] 종전선언,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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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종전선언은 원래 평화협정의 첫 장이다.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면서 평화체제 형태를 규정하는 게 평화협정이기 때문이다.

두 개를 분리하는 아이디어는 11년 전 처음 등장했다. 2007년 10·4 남북 공동선언문에 '3자 또는 4자 정상이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모호한 합의인 데다 동력도 부족해 흐지부지됐다. 당시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과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사후에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내부 혼선도 빚었다.

남북 정상은 지난 4월 판문점선언에서 올해 종전을 선언하자고 전격 합의했다.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에서 분리한 뒤 미·북 협상의 입구, 또는 디딤돌로 삼기로 두 사람은 의견 일치를 봤다. 이후 상황은 모두가 잘 아는 대로다. 미국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미흡한 상태에서 종전선언을 수용하기를 꺼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종전선언의 무게를 낮추는 데 주력했다.

지난달 방미 때는 미국 내 보수 여론을 향해 "종전선언은 되돌릴 수 있다"고 설득했고, 이번 유럽 순방 직전에는 "종전선언은 시기 문제일 뿐"이라며 기정사실화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지난 7일 평양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핵리스트 선(先)제출을 거부하면서 "종전선언이 이뤄진다면 비핵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는 요미우리신문 보도가 나왔다.

폼페이오 장관은 영변 핵시설 폐기 외에 핵 프로그램의 일부 신고 등 다양한 제안을 던졌으나 김 위원장의 태도는 완강했다는 얘기다. 앞서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들은 미국의 종전선언 수용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쪽에 대체로 손을 들어줬다. 앤드루 여 미국 가톨릭대 교수는 협상 상대로서 북한을 여간해선 깨기 힘든 '단단한 호두'에 비유했다. 미국이 호두에 실금부터 내려면 남북이 함께 요구하는 종전선언을 수용하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으로 보였다. 하지만 양측 기싸움이 여전히 팽팽해 종전선언 성사 여부는 11월 중간선거 이후 미·북 정상회담 즈음에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종전선언 이후의 혼선을 막기 위한 실무적 논의가 한미 간에 충분히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휴전관리체제가 종전관리체제로 전환되면 유엔사 지위, 전시작전권 소재, 나아가 주한미군 문제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특보는 종전선언과 별개로 한미 양국이 안보동맹과 주한미군의 현상 유지를 재확인하는 공동선언을 하자고 제안했다. 안전 장치를 만들어 두자는 아이디어다.

[신헌철 워싱턴 특파원 honzul@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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