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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마음속 거울 봤을 때 부끄럽지 않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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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행자 때 하루는 책을 보며 공부를 하고 있는데 큰스님께서 제 옆에 앉으시더니 공책에 '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 년 동안 탐한 물건은 하루아침의 티끌(三日修心千載寶 百年貪物一朝塵)'이라는 글을 써 주셨습니다. 그러고는 자상하게 뜻을 설명해 주셨어요. 그때 큰스님 표정과 말씀이 아직도 제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성철 스님(사진) 제자 중 한 명인 원암 스님이 큰스님에 대해 이렇게 추억했다. 성철 큰스님 입적 25주기를 맞아 생전 스님을 가까이에서 모셨던 사람들 추억을 담은 책이 출간됐다. 책에는 성철 스님 상좌를 지낸 스님 16명과 재가자 20명 인터뷰가 실려 있다. 책 출간을 주도한 원택 스님(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해인사 백련암 주지)은 "이 책은 후배와 후학들이 선지식을 눈앞에 보고도 만나지 못하는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펴내게 됐다"고 말하면서 "스님의 간단한 말씀이나 한 올의 가르침도 놓치지 않는 수행자들이 끊임없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출간 이유를 설명했다.

책에는 지근거리에서 큰스님을 모셨던 스님과 일반인 제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 맏상좌였던 천제 스님을 비롯해 원융·원타·원택·원영·원행·원암 스님 등 성철 스님 정신을 이어받아 수행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는 스님들의 회상이 눈길을 끈다.

원택 스님은 성철 스님의 지적인 풍모를 기억한다. "큰스님은 청정한 계행과 깊은 선적 깨달음은 물론 독서의 폭도 광활했습니다. 불교 학술 서적은 물론 과학 기하학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책들을 숙독하시고 사자후를 날리셨습니다. 한국 불교 수행사에 귀감이 되는 선지식이 되신 것은 그와 같은 정진의 결과였습니다."

원타 스님은 성철 큰스님이 모든 대중을 똑같이 평등하게 대한 분이었다고 회상한다. "스님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사람을 만나는 데 지위 고하를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대통령이나 대기업 총수의 청이 와도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삼천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만나서 똑같이 대접하셨습니다."

김택근 작가는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라(不欺自心)고 했던 스님 말씀이 좌우명이 됐다"고 기억한다. "마음속에 있는 거울에 자기 자신을 비추어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나'를 만들라는 벼락같은 가르침"이었다고 말한다.

책은 이달 24일부터 해인사 백련암에서 열리는 추모법회와 27일 열리는 추모재 때 대중에게 무료로 법보시를 할 예정이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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