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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기자수첩] 경영난에 허덕이는 '미래유산'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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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황희정 기자]

"월세도 내기 힘들지. 요즘 누가 헌책방을 와."

최근 서울 중구 을지로6가 헌책방거리에서 만난 한 중고서점 주인은 자조 섞인 말투로 경영난을 토로했다.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면 언제 어디서든 책을 주문할 수 있는 시대에 소규모 오프라인 중고서점의 경영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헌책방뿐만 아니라 모든 자영업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인터넷 발달로 손님이 없는 건데 나라에서 어떻게 할 수 있겠냐는 그의 푸념에선 어떠한 기대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1960년대 평화시장 인근 청계천을 따라 100여곳의 중고서점이 들어서며 형성된 헌책방거리에는 현재 20곳도 안되는 서점이 운영 중이다. 2013년 서울시로부터 시민생활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됐지만 이에 따른 직접적인 혜택은 없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수리비, 홍보물 제작 지원 등 '최소한'의 맞춤형 지원만 제공한다.

서울시는 지난 5~6일 '청계천 헌책방거리 책 축제'를 열 예정이었다. 침체된 헌책방거리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2015년부터 개최해왔다. 하지만 태풍 '콩레이' 북상으로 다음달로 연기됐는데 비용문제로 인해 기존 이틀 진행에서 11월2일 하루로 축소됐다. 이 축제는 각 헌책방에서 총 1200권을 받아 위탁판매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하루 만에 책을 팔아야 하다 보니 판매 권수도 조절될 예정이다.

축제를 앞두고 방문한 헌책방거리에선 행사 안내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헌책방 주인들도 축제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이날 만난 헌책방 주인은 축제로 인해 '반짝 관심'이 쏠리긴 하지만 이내 발길이 끊긴다고 설명했다. 언론에서도 축제 때나 학기 초에 잠깐 관심을 가질 뿐이라면서도 그렇게라도 언급돼 조금이라도 더 팔리는 게 어디냐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씁쓸함마저 읽혔다.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 미래세대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헌책방 운영자들은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 모습이다. 사양산업이 되면서 이에 따른 매출 감소는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 가치를 인정하고 되살리기 위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면 실질적인 혜택이 필요하다. 실속 없이 '미래유산'이란 번지르르한 이름만 내세운다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밖에 없다.

머니투데이



황희정 기자 hhj260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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