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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염불 대신 잿밥에 관심 두는 한국당 [한컷속 여의도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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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최근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인선을 마무리하면서 인적쇄신의 칼을 빼들었습니다. 조강특위는 연말까지 253명의 한국당 당협위원장 인선 작업을 벌입니다. 누구에게 당협위원장을 맡기느냐에 따라 한국당의 반성 및 쇄신의 정도를 엿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내년 2월로 예정된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이전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의 7개월 간의 쇄신 작업 성패를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한국당 인적쇄신의 칼자루를 쥐게 된 전원책 변호사의 칼 끝은 어디로 향할까요. 전 변호사는 조강특위 외부위원직을 수락하기 전 비대위로부터 자신을 비롯한 외부위원 3명 인선 및 3명의 당연직 내부위원들의 회의 제척 등 당협위원장 인선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 사무총장도 “조강특위 기본 원칙은 공정과 변화”라며 “외부 인사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국민들 눈높이에 맞춘 조강특위의 활동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국당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6·13 지방선거 참패에 있습니다. 제1 야당이 ‘궤멸’이라는 극단적 평가를 받게 된 주된 요인은 2017년 5월 대선 패배 이후 수권정당, 보수정당으로서 별다른 반성과 혁신을 보여주지 못한 지리멸렬함에 있습니다. 전 변호사도 지난 11일 조강특위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둔한 칼이 예리함을 감추고 있다’(둔도장예·鈍刀藏銳)는 말을 매일 새기고 산다”며 계파와 상관없는 강도 높은 구태 정치인 퇴출을 예고했습니다.

세계일보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앞두고 기자간담회를 위해 당 사무총장인 김용태 조강특위 위원장(왼쪽)과 전원책 위원(오른쪽) 등과 이동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하지만 ‘소문 난 잔칫집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당의 인적 쇄신 의지는 무뎌 보입니다. 조강특위 출범 전 한국당의 ‘웰빙정당’ ‘온실 속 화초’ 이미지를 일소하겠다고 벼르던 전 변호사는 조금씩 그 비판 톤을 낮추고 있습니다. 복당파 좌장으로 꼽히는 김무성 의원에 대한 평가가 대표적입니다. 전 변호사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공화주의를 말하는 사람은 공부를 좀 해야 한다”고 김 의원을 우회 비판하더니 사흘 뒤엔 “대선주자급으로 논의되는 분들은 당의 중요한 자산이다. 김무성 의원도 그중 한 분이다. 그런 분들에게 함부로 칼을 들이대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당 지도부도 인적청산 대상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분위기입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12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한 자리에서 ‘김무성·홍준표 전 대표에게 (전당대회) 불출마를 권유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당내에 이런저런 분위기가 있다고 이야기한 적은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7일 다른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결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홍 전 대표에게)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며 “그 분의 현재 위치가 일종의 평당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한국당 비대위는 현재로서는 인적쇄신보다는 보수대통합에 더 관심이 있는 눈치입니다. 김 비대위원장은 15일 비대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보수야권이) 협력해서 국정을 바로 잡는 게 중요하지 않느냐는 맥락에서 이런저런 분을 접촉해보려고 애쓰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 변호사가 조강특위의 역할 중 하나로 제시했던, 총선 이전 ‘보수 단일대오’의 필요성이나 김 사무총장이 공식화한 ‘보수대통합’ 작업과 같은 맥락입니다.

‘단일대오’와 ‘대통합’ ‘빅텐트’ 등 수사는 다르지만 모두 2020년 총선 이전 보수진영이 뭉쳐야 집권여당의 폭주를 견제할 수 있다고 하소연합니다. 한국당 전당대회에 황교안 전 총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태호 전 경남지사 및 무소속 원희룡 제주지사, 바른미래당 유승민 전 공동대표 등 당 안팎의 차기 대권주자급 인사들이 총출동해야 보수정당의 목소리를 키우고, 총선 및 대선 승리 등 보수정당의 부활도 꾀할 수 있다는 논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당의 보수통합론은 아직은 섣부른 느낌입니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어떠한 반성이나 구태 정치인 물갈이 등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한국당이 보수통합을 이야기한다면 누구나 정치공학적인 ‘꼼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국당 연대 혹은 통합 대상으로 거론된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대표가 곧바로 “어떤 기준으로 쇄신할 것인지 지침도 하나 없이 통합만 이야기하고 있다”며 “막말로 웃기는 이야기”라고 일축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쇄신은 인적청산이 8할입니다. 박상병 인하대 교수는 지난 8월말 한국당 의원 연찬회에서 “인적혁신이 없는 좌표 설정은 추상이고 좌표설정이 없는 인적쇄신은 허구”라고 일갈한 바 있습니다. 당 개혁을 ‘100’이라고 한다면 ‘80’은 사람을 바꿔야 하고, 나머지 ‘20’은 새로운 가치 제시에 있다는 조언이었습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국당 비대위 관계자는 “보수대통합은 사실 한국당이 주도권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문재인 정권 심판론이 나올 경우 유권자가 떠올리는 정당은 보수 야당, 그것도 한국당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당이 별다른 가치 정립이나 인적청산 없이 전당대회를 치르더라도 반여 성향의 유권자는 결국 자신들을 선택할 것이라는 안이함과 오만함이 느껴졌습니다.

한국당이 추진 중인 집단지도체제에 대해서도 쓴소리는 나옵니다. ‘보수책사’로 꼽히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최근 KBS라디오에 출연해 “자기들도 마땅히 국민에게 신뢰를 얻을 만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집단지도체제를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런다고 국민이 쳐다보겠습니까”라며 한국당이 쇄신의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오는 24일은 한국당 김병준 비대위 체제가 100일째 되는 날입니다. 김병준 위원장은 지난 7월18일 비대위원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보수대통합과 관련해 “한국당이 제대로 서게 되면 흡입력을 가지면서 보수가 통합이 되든지 연대가 되든지 할 것”이라며 인위적인 정계개편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김 비대위원장의 최근 언행이 초심과 부합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는 15일 보수통합이 필요한 이유로 가치보다는 정부 견제를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 전의가 언론에 왜곡돼 전달된 것일까요? 아니면 ‘적당히 고비를 넘기는 게 체질화한 집단’(윤 전 장관)의 정치논리에 휩싸여 그의 초심이 변한 것일까요? 이유야 어떻든간에 최근 한국당 지도부가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보수통합론은 보수정당의 쇄신은커녕 국민 눈높이와도 동떨어진 의제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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