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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독립국가 존속 위해 가스ㆍ석유 개발 올인… 동티모르에 햇볕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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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사업비에도 가스관 추진... 일자리ㆍ추가 투자 창출에 전력

한국일보

아지우 페레이라(왼쪽) 동티모르 국무장관과 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이 지난 3월6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해양경계선 확정서에 서명한 후 악수하고 있다. 뒤에서 바라보는 인물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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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신생 약소ㆍ독립국 동티모르가 ‘그레이터 선 라이즈(더 큰 해돋이)’에 국운을 걸었다. ‘그레이터 선 라이즈’란 동티모르 남쪽 티모르해에 있는 선라이즈ㆍ트루바두르 두 가스광구를 통틀어 가리키는 명칭이다. 지난 3월 호주와의 해양경계 설정 합의로 개발의 길이 열렸다. 동티모르 정부는 ‘그레이터 선 라이즈’ 개발이 국가의 존속을 결정할 핵심 수입원으로 믿고 있지만, 사업성을 둘러싼 논란은 만만치 않다.

동티모르 정부는 지난 1일 이 광구의 사업권을 확보한 4개 업체 중 하나인 코노코필립스사(社)가 쥐고 있던 30% 지분을 인수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는 동티모르 정부가 광구의 가스 채취파이프를 동티모르 남부로 유치하기 위한 조치였다. 동티모르 정부는 이 가스의 정제시설도 남부 해안에 구축, 광구개발에 따른 이익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13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동티모르 광구 개발을 믿고 진행하는 동티모르 정부의 대규모 개발사업은 이뿐만이 아니다. 북부 수도 딜리에서 남부 해안을 잇는 고속도로 30㎞ 건설에는 중국 관영기업 중국해외공정(COVEC)이 참여했고 해안도시 수아이 인근 공항 건설에는 인도네시아 자본이 들어 왔다.

동티모르 정부의 이런 행보는 모험에 가깝다. 실제 기존 ‘그레이터 선 라이즈’ 광구의 사업권을 쥔 코노코필립스ㆍ우드사이드ㆍ로열더치쉘ㆍ 오사카가스 등 4개 기업은 호주로 가스를 연결하는 것을 선호해 왔다. 동티모르에 정제시설을 설치하면 71억달러(약 8조원)가 추가로 들기 때문이다. 동티모르는 3월 해양경계 설정 합의에 따라 자국으로 가스관이 연결되면 70%, 호주로 연결되면 80% 수익을 가져가게 돼 있다.

아직 탐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그레이터 선 라이즈’ 광구에 동티모르가 ‘올 인’하는 건 자국 내에 일자리를 만들고, 추가 투자를 창출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동티모르는 현재 심각한 상황이다. 석유ㆍ가스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 개혁작업을 벌여왔지만 미래 먹거리인 농업ㆍ관광업 등 분야는 아직 제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게다가 정부 예산 대부분을 책임졌던 바유-운단 가스전은 이르면 2022년 무렵 고갈된다. 정부가 막대한 사업비를 투자하면서 새로운 가스전에 모험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티모르 정부의 절박한 행보에 대한 외부 평가는 냉정하다. 인접 강대국인 호주 언론은 고속도로 사업에 중국 자본이 들어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사업의 수익성을 의심하고 있다. 실제 동티모르 정부의 대규모 투자로 얻게 되는 수익 혜택이 대다수 주민에게 돌아갈지도 불확실하다. 공항이 건설 중인 수아이 인근 주민들은 삶의 터전인 토지를 내놨지만 약속한 직업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한 인근 마을의 주앙 구스망 촌장은 WSJ에 “개발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을 버려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동티모르 관료들은 가스정제 시설이 동티모르 경제의 도약을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하고 있다. 가스정제 시설을 동티모르로 끌어오기로 한 건 귀중한 국부를 호주ㆍ인도네시아ㆍ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입김에서 배제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를 감독한 에디 모니스는 “우리는 자선사업이나 보조에 더 이상 의존하고 싶지 않다. (독립 국가로서) 존중을 받을 권리를 원한다” 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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